필리핀 총선, ‘부패 비리’ 정치인 대거 당선
과거 뇌물수수 등 ‘부패 비리’의 대명사로 여겨지던 필리핀의 옛 정치인들이 지난 13일 선거에서 대거 당선돼 필리핀 정가 안팎에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
현지 매체들과 외신은 14일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부인 이멜다 여사와 뇌물수수 논란 속에 중도 퇴진한 조지프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 등 비리 정치인들이 무더기 당선됐다고 전했다.
특히 베니그노 아키노 대통령의 부패척결 1호로 지목됐던 글로리아 아로요 하원 의원 후보도 압승, 재선의 영예를 안았다.
올해 83세인 이멜다 후보는 마르코스의 고향인 일로코스 노르테 주(州)에서 그가 생전에 창설한 KBL당 후보로 출마, 88%의 높은 득표율로 당선됐다.
현직 하원 의원인 이멜다 여사는 마르코스 대통령 재임 당시 부정축재와 사치 논란에 휩싸였지만 마르코스 가문에 우호적인 지역정서에 힘입어 다시 하원 뱃지를 달았다.
재임 당시 뇌물수수 혐의로 임기를 절반도 채우지 못한 채 불명예 퇴진한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도 마닐라 시장에 당당히 당선됐다.
종신형을 선고받은 비리 전력에도 영화배우 출신의 높은 인기와 빈곤층을 집중 공략한 선거전략의 결과였다.
공교롭게도 그에게 패배한 알프레도 림 현직 마닐라 시장은 에스트라다가 대통령으로 재직할 당시 내무장관을 지낸 인물로 그와는 절친한 동료 사이였다.
뇌물수수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에스트라다를 사면해준 글로리아 아로요(66) 전 대통령도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중부 팜팡가 주(州)에서 하원 의원 후보로 당선됐다.
국가복권기금 3억6600만 달러를 약취한 혐의를 받은 아로요는 출국금지 조치와 함께 수개월간 구금되기도 했지만 개인적인 인기와 정치적 탄압의 희생자임을 내세워 재선에 성공했다.
관측통들은 이들 정치인의 과거 범죄 전력과 관련해 `부패비리 전시장’으로 혹평하면서 일부 정치가문이 판세를 독식하는 필리핀 정치의 현주소라고 분석했다.
이들 관측통은 부패 정치인들이 정치역량에 좌우되는 상원 선거 대신 개인적인 인기와 출신지역 등에 당락이 결정되는 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대거 출마한 점도 무더기 당선 결과를 낳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필리핀의 한 인권 운동가는 “우리가 범죄를 너무 빨리 잊고 쉽게 용서하는 것같다”면서 돈과 권력을 가진 인사들이 선거 유세에 나서는 상황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