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시상황, “종파갈등이 정쟁 부추겨”

1일(현지시간)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시내에 배치된 장갑차의 모습. 바그다드 시내에는 이 같은 장갑차와 탱크가 곳곳에 배치돼 전시 상황을 방불케 한다. <사진=연합뉴스>

시내 곳곳에 완전무장 군인·탱크·장갑차…총성 끊이지 않아

외국 출장자들 경호 없인 한발짝도 못움직여…경호비용 상상초월

“바그다드는 33년째 전쟁 상태입니다.”

지난달 31일(이하 현지시간)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에서 만난 현지 주민 하미드 알 누리(52·가명)씨는 수도 바그다드가 여전히 전시 상황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 발발 이후 1990년 걸프전, 2003년 이라크 전쟁으로 이어지는 굴곡의 역사가 이 한 마디에 담겨 있는 듯했다.

‘한-이라크 경제협력포럼’에 참가하는 한국 경제사절단 일행은 공항에서 육중한 방탄차에 몸을 싣고 차량 행렬 앞뒤와 중간중간에 완전무장한 경찰 5∼6명을 태운 경호 차량을 대동한 채 시내 숙소로 향했다.

바그다드에서는 외국인의 경우 경호원을 대동하지 않고서는 거의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치안이 악화돼 있다. 심지어 경호업체 계약서 사본이 없이는 여권 발급조차 불가능할 정도다.

경호 비용은 무지막지하다. 공항에서 호텔 이동시 미화 2000달러, 하루 시내 이동 경호가 3000달러에 달해 2박3일 출장을 다녀올 경우 7000달러(한화 약 760만원) 가량의 경호비용을 울며 겨자먹기로 지불해야 한다.

공항에서 바그다드 시내를 잇는 도로는 일명 ‘죽음의 도로’다.

한때 공항을 이용하는 미군과 요인들을 노린 테러가 잦아 붙여진 이름이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도로 양옆에는 로켓포 등 각종 화기 공격을 막기 위한 3m 높이의 방호벽(T-Wall)이 세워져 ‘황량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2010년 8월 미군 전투병력이 완전히 철수한 이후 점차 이 도로에서 테러 발생 빈도가 낮아져 미군이 2011년 말 완전 철수에 앞서 담장을 모두 제거했다.

그러나 공항에서 바그다드 시내 특별경계구역인 그린존 안의 호텔까지 이어지는 20㎞ 구간에 사절단 일행은 10개 가까이 되는 검문소를 거쳐야 했다.

특히 검문소마다 완전 무장한 군인, 간간이 보이는 탱크와 장갑차는 실제 전시 상황을 방불케 했다.

시내로 진입해 그린존에 접근할수록 검문소의 수는 많아졌다.

검문소마다 경호 차량을 대동하지 않은 일반 차량이 검사를 위해 보닛과 트렁크를 열고 길게 늘어져 서 있었다.

바그다드 시내에 설치된 수백 개에 달하는 검문소가 엄청난 교통체증을 유발한다는 누리씨의 말이 떠올랐다.

그린존 입구의 3중, 4중으로 돼 있는 검문소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상대적으로 한산했다.

그린존에는 총리실 집무실을 비롯한 정부 주요 관청과, 미국 대사관 등 외국 공관이 자리를 잡고 있다.

특별 허가증 없이는 출입할 수 없고 자정 이후부터 다음 날 새벽 6시까지는 검문소 자체를 통과할 수 없다.

전시 상황을 실감케 하는 것은 시내 곳곳의 검문소뿐만이 아니다.

하루가 멀다고 이어지는 각종 폭탄 테러와 총격은 바그다드의 치안을 위협하는 가장 큰 불안 요소다.

실제 사절단이 바그다드에 도착한 31일에도 바그다드 북부와 서부에서 폭탄 테러로 경찰과 군인 등 4명이 숨졌다.

이라크 국가투자위원회(NIC)의 한 관계자는 2일 “그린존 인근에서도 사절단이 도착한 첫날밤 자정께 15분간 이어지는 기관단총 소리가 들렸다”고 전했다.

기자 역시 도착 이튿날인 1일 새벽 5시가 조금 넘어 수 분간 이어지는 총성에 잠을 설쳐야 했다.

최근 바그다드 시내에서 벌어지는 폭력 사태의 주요 공격 대상은 이라크 군경과 시아파 주민들이다.

이라크에서는 수만 명의 희생자를 낸 2006∼2007년을 정점으로 점차 폭력과 테러 사건이 감소하는 추세다.

포럼에 참가한 노강호 SK에너지 상무는 “2009년부터 업무상 두 달에 한 번 꼴로 이라크를 방문한다”면서 “곳곳에서 각종 테러가 지속하지만 치안 상태가 점차 개선되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2011년 말 미군 완전 철수 이후 시아파와 수니파 간 갈등이 다시 심화하면서 테러가 빈발해 사상자가 속출하는 등 치안 상태는 여전히 불안하다.

특히 알카에다 세력이 지난해 7월 빼앗긴 영토 수복을 위한 새로운 공격에 나서겠다고 선포한 이후 각종 테러와 총격 등 폭력 사태가 더욱 잦아진 양상이다.

그나마 미군 철수 이후 현재까지 외국 공관이나 기업을 겨냥한 테러는 한 건도 발생하지 않은 것은 다행스런 부분이다.

현지 전문가들은 시아-수니 사이의 종파 갈등을 이라크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인 동시에 각종 폭력 사태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주이라크 한국 대사관의 주중철 공사는 “과거에는 정쟁이 종파 갈등을 유발한 측면이 있지만 최근 들어서는 종파 갈등에서 정쟁이 비롯되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라크 일반 국민 사이에도 실제 종파 갈등이 심각한지는 의문이다.

“일반인들은 시아-수니 가족 간 결혼도 하고 잘 지낸다”면서 “문제는 알카에다와 같은 극단주의 세력과 국민의 안전은 권력 유지에만 급급해 종파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권”이라는 누리씨의 말이 바그다드에서 머무는 내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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