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대진재 2주년··· 끝나지 않은 악몽
‘완전무장’ 불구 불안 엄습…현지 작업자들 ‘사투’ 벌여
적(敵)은 아직 온전한 실체조차 손에 잡히지 않는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자위할 수 있을 뿐 언제 끝날지, 어떻게 끝날지 알 수 없는 처절한 전쟁이다.
일본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사고 2주년을 맞아 6일 외신기자단 일원으로 현장을 취재한 기자는 매일 약 3천명이 방사능과 사투를 벌이는 현지 상황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원래 축구대표팀 훈련캠프였다가 동일본 대지진 후 원전 베이스캠프로 바뀐 후쿠시마 J빌리지에서 원전 운영사가 제공한 버스를 타고 북쪽으로 20km를 가니 원전 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옥외임에도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이 흰색 특수 방호복과 화생방 훈련 때 쓰는 전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영화 같은 현실이었다.
기자들도 방호복과 마스크에 등산용 양말처럼 두꺼운 특수 양말 2켤레와 비닐 덧신, 외과수술용 고무장갑 3겹을 착용하고서야 원전 단지를 오갈 수 있었다.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장갑과 덧신을 바꿔 착용토록 했고, 수시로 방사성 물질 피폭량을 측정했다.
완전무장을 한 뒤 방사성 물질의 ‘원천’인 핵연료봉을 제거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인 원자로 제4호기에 다가갔다. 건물 외벽에 흉하게 삐져나온 철근들이 2년 전 수소폭발 당시 상황을 그대로 담고 있었지만 사고 원자로 1∼4호기 중 유일하게 핵연료가 녹아내리지 않은 덕에 가장 먼저 손을 쓸 수 있었다.
작업자들은 오는 11월 연료봉 반출 개시를 목표로 필요한 부대 시설을 세우는데 여념이 없었다. 기자들은 반출될 연료봉을 보관할 저장 수조도 둘러봤다.
그러나 이곳에서 예측 및 통제가 가능한 영역은 거기까지였다.
1∼3호기의 상황은 2년이 흐른 지금 ‘관리중’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언정 ‘진전’을 이야기하긴 어려웠다. 작년 12월 부로 원자로 온도를 100℃ 이하로 냉각시킴으로써 방사성 물질 배출 수준을 크게 낮췄다고 도쿄전력은 발표했지만 현장은 여전히 매우 위험했다.
기자가 탄 버스가 3호기 근처를 지나갈 때 원전 직원은 “방사성 물질 수치가 너무 높아 빨리 통과해야 한다”고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 순간 버스 내부의 방사선 선량계에서 ‘삐익∼’하는 소리가 났다. 1천μ㏜(마이크로시버트)를 넘었다는 경고였다. 선량계에 찍힌 숫자는 1천70. 평상시 도쿄의 2만배에 달하는 엄청난 양이었다. 기자는 반사적으로 마스크 끈을 조여맸다.
3호기의 경우 방사능 수치가 인간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탓에 위성항법장치(GPS)를 활용한 원격 조종으로 파괴된 건물 잔해를 제거하고 있었다. 원전 관계자는 1, 2호기 주변의 방사능 수치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전했다.
핵연료봉 제거작업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는 4호기와 달리 방사성 물질의 배출원인 핵연료봉이 녹아내린 1~3호기는 아직 원전 내부의 정확한 상황조차 파악이 안 됐다.
“녹아내린 1∼3호기의 연료봉을 제거하고, 원자로를 폐기하기까지는 30∼40년이 더 걸릴 것”이라고 다카하시 다카시(高橋毅) 소장은 전했다.
또 하나 뾰족한 대책이 없는 문제는 오염수 처리다.
취재진은 원전에 쌓인 높이 11m, 직경 12m의 오염수 보관 탱크가 늘어선 곳을 찾았다. 건물 밖에서 지하수가 유입되면서 하루 평균 400t씩 나오는 오염수를 처리할 공간이 넉넉지 않다. 현재 900대 이상의 저장탱크가 설치돼 있지만 이미 전체 저장 가능량(총 32만t)의 70% 이상이 차버렸다.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은 탱크를 더 만든다는 복안이지만 부지가 마땅치 않다. 오염수를 정화한 뒤 바다로 배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지만 현지 어민들의 반대가 강하다.
오염수에서 세슘 등 방사성 물질을 제거할 수 있는 ‘다핵종 제거 설비’를 시험적으로 가동하고 있지만 모든 종류의 방사성 물질을 없앨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한계가 있다.
원자로 주변 취재를 마친 뒤 원전의 지휘소 역할을 하는 긴급통제실을 방문했다. 규모 7의 지진을 견딜 수 있게 설계된 면진(免震) 중요동에 위치한 긴급통제실에서는 다카하시 소장을 중심으로 원전 각 부문별 책임자가 원형으로 둘러앉은 채 상시 ‘회의 모드’를 유지하고 있었다.
도쿄의 도쿄전력 본부 상황실과 원전 곳곳의 실시간 상황을 보여주는 대형 스크린이 설치돼 있었고, 다카하시 소장 자리 앞에는 본부 책임자에게 현장 상황을 직보할 수 있는 붉은색 직통 전화기가 놓여 있었다.
이어진 다카하시 소장의 기자회견. 2011년 말부터 현장의 총사령탑 역할을 하고 있는 그는 세계 각국 출신 취재진에게 “죄송하고 고맙다”는 말로 회견을 시작했다.
오후 4시께 마지막 전신(全身) 피폭량 검사를 마치고 인근 이와키역으로 떠나는 길에서야 잠깐 ‘아쉬움’이 밀려왔다. 언제까지 이곳을 지켜야 할지 모르는 다카하시 소장에게 기자회견 뒤 짧은 박수라도 쳐 줬어야 했다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