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20일] 서구의 亞 최후식민지 마카오 중국 품으로

2010 박찬호, 갑작스레 도일(渡日)…오릭스 입단

지난 1994년 LA다저스에 입단한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동양인 최다승(124승) 투수라는 대기록의 주인공이자 아시아 야구의 자존심으로 17년간 메이저리그 무대를 누볐다.

그런 박찬호에게 해마다 12월20일은 새 구단에 입단하는 날인가.?2010년 12월20일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에 새 둥지를 틀더니 2011년 12월20일 한국의 한화에 입단하지 않는가. 박찬호는 작년 이맘때 몇몇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지만 당시 오릭스가 가장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냈고, 부인 박리혜씨가 재일교포 3세라는 점도 결심의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꼭 1년 뒤인 2011년 12월20일 박찬호는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공식 입단 환영식을 갖고 한화맨으로 거듭났다. 이 자리에서 한화는 박찬호와 연봉 2400만원에 계약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애초 박찬호 몫으로 책정해뒀던 1년간 총 6억원(연봉 4억원+옵션 2억원)은 박찬호의 뜻에 따라 국내 유소년 및 아마야구 발전을 위해 기부하기로 했다.
1999 마카오, 442년 만에 중국 품으로

20일(현지시각) 마카오 반환 12주년을 기념하며 중화인민공화국 군인들이 마카오에서 오성기를 게양하고 있다. <사진=신화사>

1999년 12월20일 0시 마카오의 한 외항 광장.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과 조르제 삼파이유 포르투갈 대통령이 나란히?지켜보는 가운데 야외 행사장에 게시된 포르투갈 국기가 내려지고 중국 오성홍기가 게양됐다.

식민지 마카오의 주권이 1999년 12월20일 442년 만에 중국으로 되돌아가는 순간이다. 명나라 말엽부터 계속돼 온 포르투갈의 마카오 식민통치는 이날 종식됐다.

중국은 1국 2체제 방식으로 ‘마카오 차이나’를 외쳤고, 유럽의 마지막 아시아 식민지였던 마카오를 되찾은 중국을 보면서 아시아 사람들은 만감이 교차했다. 마카오는 본토와의 일국양제(一國兩制) 합의에 따라 50년간 자치권을 행사하게 됐다. 중국은 이날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다.

1993 유엔총회, ‘세계 언론자유의 날’(5월3일) 지정

유엔은 유네스코의 추천을 받아 1993년 12월20일 유엔 총회에서 매년 5월3일을 ‘세계 언론자유의 날’로 지정했다고 선포했다. 세계각국에서?언론의 독립성이 위협받고 있으며, 많은 저널리스트들이 일반인들에게 뉴스를 전달하기 위해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생명마저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위해서다.

1987 필리핀 도나파즈號 침몰

1987년 크리스마스를 5일 앞둔 밤 필리핀 마닐라 남쪽 150km 해상을 지나던 여객선 ‘도나파즈’ 승객들은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선원들은 맥주를 즐길 정도로 기상 상태가 좋았고 파도도 잠잠했다. 그런데 마닐라 도착 5시간30분을 남겨둔 오후 10시30분쯤 평화롭던 도나파즈호는 지옥의 불길에 휩싸인다.

8800배럴의 가솔린을 싣고 가던 유조선 벡터호와 충돌한 것이다. 충돌 직후 벡터호의 가솔린에 붙은 불은 곧바로 도나파즈로 옮겨 붙었다. 승객들이 피할 곳이 없었다. 불 붙은 휘발유가 바다를 뒤덮어 바다로 뛰어들 수도 없었고, 불길을 피해 뛰어든 바다에는 상어 떼가 기다리고 있었다.

도나파즈는 충돌 2시간 만에 공포에 울부짖는 승객들을 태운채 바다로 침몰했고, 다시 2시간 뒤 유조선 벡터호도 침몰했다. 4000여명이?숨졌다.
1977 이란 대지진, 800명 사망

1977년 이날 이란 남동부에서 진도 5.8의?지진이 일어나 800여명이 사망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1997년에는 진도 7.1의 초강진으로 사망자가 2만62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단층지대인 이란에서는 대형 지진이 자주 발생해 지금까지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1971- 줄피카르 부토 파키스탄 대통령 취임

‘파키스탄의 케네디가(家)’로 불리는 부토 가문에서 1971년 12월20일 대통령이 났다. 줄피카르 알리 부토(1928~1979)가 13년간의 군정(軍政)에 마침표를 찍고 민간인 출신 대통령에 취임한 것이다.

그의 재임기간 음양이 교차한다. 경제파탄과 동파키스탄의 방글라데시 분리 독립 자초가 대표적인 실정으로 꼽히고 있다. 군정 종식과 민주주의의 기틀 마련은 업적으로 평가된다.
1960 베트남 민족해방전선 결성

1960년 12월20일 베트남민족해방전선(National Liberation Front, NLF)이 결성돼 비(非)공산주의자인 구엔 후 토가 의장으로 추대됐다. NLF의 군사조직인 베트콩은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1955~75) 줄기차게 게릴라 활동을 전개했다.

미군은 공산주의 확산을 막는다는 명분 아래 전쟁을 일으켰으나 생경한 게릴라전에 따른 피해와 남의 나라의 내전에 개입했다는 도덕적 정당성의 결여에 따른 국론분열로 곤경에 몰린 끝에 1973년 휴전협정 조인 뒤 철수했다.

1975년 4월 30일 북베트남과 NLF의 총공세 앞에 남베트남 정권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면서 베트남전쟁은 마침내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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