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승 “일제 아시아 침략 책임 내년 유엔 제출”

서승 리츠메이칸대 특임교수 “獨처럼 日은 국가의 과거 범죄 배상해야”

1971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유학생이던 서승은 소위 ‘재일교포학생학원침투간첩단사건’에 연루돼 보안사에 끌려와 고문을 받던 중 기름을 끼얹고 전신화상을 입었다. 1심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고 2심에서 무기징역을 받은 뒤 1988년 징역 20년으로 감형돼 1990년 투옥 19년 만에 석방됐다. <사진=민경찬 기자>

최근 위안부 피해 할머니에 대한 일본의 사죄 요구가 정부 차원에서 다시 제기되고 있다. 이른바 ‘재일동포간첩단사건’으로 한국 감옥에서 19년을 보낸 서승 교수는 “일본이 식민지 지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관련 학회를 조직한다고 했다.?서 교수는 현재 일본 리츠메이칸 대학 특임교수로 재직중이다.

지난 달 <서승의 동아시아 평화기행> 출간을 기념해 광주에서 출판기념회를 열기 위해 한국을 찾은 서 교수를 AsiaN이 만났다. 서울 종로의 한 식당과 다방을 오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서 교수는 커피숍이나 카페라는 말 대신 다방이라는 표현을 썼다. 정감어린 말이었다.

-요즘 근황은.
“올 초 리츠메이칸(立命館) 대학에서 정년퇴임했는데 앞으로 5년간 특임교수로 재직하게 됐다. 지금은 ‘비교인권법’과 ‘동아시아를 배운다’ 등 두 과목을 강의한다. ‘비교인권법’은 중대한 국가 폭력을 경험한 동아시아 인권을 비교하는 과목이고, ‘동아시아를 배운다’에서는 한국의 법과 정치를 가르친다. 제주도에 학생들 데려와서 제주 4.3사건과 강정해군기지에 대해 현장학습도 한다.”

20대 중반 전신 화상을 입은 서 교수는 고단했던 인생사가 얼굴과 몸 곳곳에 새겨져 있다.그러나 이러한 화상의 흔적은 환갑이 훌쩍 넘은 서 교수에게 주름 하나 없는 팽팽한 얼굴로 만들어주는 아이러니를 창조했다. 19년 감옥생활 이후 잃어버린 20년을 다시 살고 있는 것일까. 서 교수는 틈틈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강의 외에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올해만 이미 5권의 책을 냈고, 20년 전 시작된 동아시아 평화운동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일본에서 우리나라 문제를 연구하는 센터를 설립했는데.
“2005년에 리츠메이칸대학에 코리아연구센터를 설립하고 한국과 한반도, 동아시아 등을 연구하고 있다. 한국사람 20명 정도를 포함해 일본인도 10명 정도가 있고 캐나다 교수 등도 포함됐다. 기본적으로는 한 달에 한 번씩 세미나를 연다. 시민을 위한 공개강좌도 하고, 지난해까지 한국영화제도 열었다”

-교토에서 열리는 ‘한국영화제’는 어떤 의미인가?
“코리아연구센터의 인지도도 높이고 한국도 알린다. 교토 시민을 위한 문화포럼 기능도 한다. 지난 5년간 문소리, 최민식, 안성기, 김혜수, 설경구 등 연기파 배우들이 와서 영화상영과 배우의 토크쇼, 심포지엄 등을 개최하고 책으로도 발간한다.”

-강의와 연구 외에도 활동이 많다.
“인권운동을 한다. 그 중에서도 동아시아에서의 국가테러리즘을 경험한 나라들, 즉 일본 제국에 지배당했던 한국, 대만, 오키나와 등 지역 사람들을 모아서 심포지엄을 열고 있다.”

야스쿠니신사 있는 한 한일관계개선 불가능

-일본에 대해서는 야스쿠니신사 반대 투쟁을 한다.
“일본이 아시아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책임지지 않았다. 지금의 일본은 군국주의 시대와 비교해 연속성과 단절성을 모두 갖고 있다. 그 문제의 핵심에 일본 야스쿠니신사가 있다. 일본은 천황을 위한다며 아시아를 침략하고 전쟁에서 죽은 사람을 위해 신사를 지었다. 전쟁을 독려하고 신격화하고 있다. 조선인도 2만 명 이상이 합사돼 있는데 인격권 침해다. 일본은 아시아침략을 대동아 성전, 민족해방전쟁이라고까지 얘기한다. 야스쿠니신사가 있는 한 일본은 아시아와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없다.”

-일본이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나.
“2차 세계대전 후 유엔헌장에서는 일본과 독일을 적국(敵國)으로 규정했다. 나치가 유태인에 대해 저지른 범죄에 대해 국민적인 애도를 하고 범죄자 처벌과 피해자 보상을 했듯 일본도 국가권력이 과거에 저지른 범죄에 대해 평가를 해야 한다. 그러나 사과는 커녕 한일합병이 합법적이었다고 얘기한다. 과거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 인정 안한다고 문제가 묻어지는 것이 아니다. 행위자에 대해 응분의 책임을 지는 것이 정의인데 일본은 그런 것이 없다.”

한·중·일·대만 학자, 日 식민지 지배책임 연구학회 조직

서 교수는 동아시아에 있어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 책임을 연구하는 학회를 조직하기로 했다. 한국과 일본, 중국, 대만 학자들이 참여할 예정이다. 일본 학자들도 관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내년 3월에는 식민지 지배 책임에 관한 내용으로 유엔에 문서를 제출한다고 했다. 서 교수는 우리가 통상 인식하는 ‘동아시아’에 대해서도 일본의 관점이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동아시아’라는 명칭이 일본의 개념인가?
“나의 화두는 ‘동아시아가 무엇인가’이다. 막연하게는 지리적인 개념이지만, 그리스에서 볼 때 터키 쪽은 소아시아이고, 가까운 순서대로 중동, 극동, 요동, 이렇게 명칭이 붙여졌다. 유럽에 의해 아시아 지역에 안겨진 타자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동아시아는 일본인들이 만든 개념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한 신문 여론조사에서 아시아 범위를 ‘중국과 일본, 한반도 정도로 생각한다’는 응답이 절반 정도였고, 그 외에 ‘동남아시아를 포함한다’는 응답도 있었지만, 남아시아나 중동은 아시아라는 인식이 없었다. 일본은 자신들이 지배했던 지역을 대동아권으로 묶어서 아시아라고 불렀다.”

서 교수는 이렇게 일본 중심으로 편성된 아시아를 아시아 모든 사람들을 위한 아시아로 만드는 것이 시대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것이 야스쿠니신사 반대 운동, 냉전과 국가폭력 반대 운동 등을 펼치고 있는 이유이다. 이 문제를 중심으로 역사인권평화선언운동도 했다.

한국 정치비용 너무 많이 지불···과거 청산해야 민주주의 발전

서 교수는 한국과 일본을 자주 오간다. 우리나라는 내년에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중대한 전환을 앞두고 있다. 분단국가이면서도 2000년대 들어 좌파와 우파로 나뉘어 내부에서 이념대립을 하고 있는데, 한국 정치 역사 속 직접적인 피해를 경험한 서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정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한국정치의 다이내믹이 나름대로의 의미는 있겠지만 정치가 발전해 나가는 데 있어서 너무나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식민지시대와 냉전시대, 독재시대의 유산을 많이 가지고 오늘날까지 와 있다. 정치와 무관해 보이지만 과거 청산의 문제는 민주주의와 직결된 것이다.”

“아시아 평화에 일본이 가장 위협” DJ 분석에 공감

-한국 정치인 중 손꼽을 만한 사람이 있다면.
“정치인 중에서는 故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한다. 2007년에 리츠메이칸 대학에 오셨는데 멀리서 보는 것과 다른 면모가 있었다. 일본의 대중문화를 개방했고 일본 미디어에서 인기 있었던 대통령이자 대일(對日) 유화적인 분이었다. 그런데 독대했을 때 ‘동아시아 평화에 가장 큰 위협이자 장애요인이 어딘지 아냐’고 물으시더라. 모르겠다고 했더니 ‘일본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큰 평화의 위협’이라며 노골적으로 얘기했다. 정확하게 분석했다.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굴곡 많은 인생을 사셨다.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지금까지 내 인생은 조용하지 않은 편이었다. 어린 시절과 감옥시절, 석방 후 퇴임까지 등 3기로 나눌 수 있고 지금은 인생 4기에 접어들었다. 꿈을 말하기엔 나이가 많지만 앞으로 ‘동아시아가 무엇인가’라는 책을 써보고 싶고, 동아시아 식민지책임학회를 발전시켜서 진실화해위원회랑 접목시키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좀 더 차분하게 살았으면 싶다.”

-좌우명은 무엇인가.
“의롭지 못한 승리보다 의로운 패배를 하라. 패배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사실 인생에서 계속 승리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패배하는 것은 인생의 일상사다.”

꿈을 말하기엔 나이가 많다던 서 승 교수. 꿈을 말하지 않기에는 그의 뜻과 가슴에 품은 열정이 컸다. 생과 사의 순간을 수없이 반복했을 그의 인생에서 승패의 구분은 무의미했을 것이다. 이제는 의롭게 승리하는 세상이 그에게 찾아오길 바란다.


<서승 교수는 누구?>

서승 일본 리츠메이칸대 특임교수. <사진=민경찬 기자>

국가폭력에 희생된 대한민국 근대역사의 산증인?

1945년 우리나라가 일본에서 해방된 그 해,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서승은 일본에서 도쿄교육대학을 마친 뒤 자신의 뿌리인 한국을 알고자 한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서울대 사회학과 대학원에 다니던 1971년,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보안사에 끌려간다. 소위 ‘재일교포학생 학원침투 간첩단사건’에 연루됐다. 갖은 고문을 당하고 잠시 감시관이 자리를 비운 사이 극단적인 생각을 실행하게 됐다. 난로의 경유를 온몸에 뿌리고 불을 붙여 분신자살을 시도했지만 목숨은 부지한 채 사형과 무기징역을 잇따라 선고 받고 19년 감옥 생활을 하게 된다. 그것이 서승의 한국생활이었다. 1990년 석방된 뒤 미국 버클리대학으로 건너가 객원연구원을 지냈고, 아메리카 대륙과 유럽 등 세상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1998년 리츠메이칸 대학 법학부 교수로 임명된 그는 동아시아 인권 운동을 비롯해 야스쿠니신사 반대 운동, 국가폭력 반대 운동 등 활발한 시민운동을 펼쳐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