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이야기 담긴 곳’…서울 最古 ‘보성문구사’ 사실 분 없나요?


혜화초교앞 45년?역사 보성문구사 급매로 나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문방구로 알려진 혜화동 보성문구사가 ‘급매’로 나왔습니다. 얼마 전 학부모 친구들을 만나 들은 이야기가?떠올랐습니다. “요즘 초등학교는 웬만한 미술도구나 필기구는 학교에서 지원해 부모들이 신경 쓸 일이?별로 없어.”

인터넷에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학습준비물 무상지원제도’ 시행 이후 많은 문방구들이 사라졌습니다. 학습준비물 무상지원제도는 초등학생에게 기본 학용품과 색종이, 고무찰흙 등 수업 준비물을 학교가 무상으로 지급하는 제도로 1998년부터 시행됐네요. 아이들을 챙기기 힘든 맞벌이 부부들을 위해?생긴 제도겠지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문방구 수는 1999년 2만6986개에서 2009년 1만7893개로 10년간 34% 감소했습니다.

급기야 김형태 서울시 교육위원과 학습준비물 생산유통인협회는 11일 ‘학습준비물 무상지원제도의 문제점과 해결방안’?보고서를 내고 “학습준비물 지원제도로 문방구와?관련 업계가 고사 위기에 처했다”며 “현행 일괄 전자입찰방식 대신 바우처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보성문구사 주인 할아버지(75)는 ?”이제 쉴 때가 돼서?내놓았다”고 말합니다.

“여기는?과학고, 동성중고, 혜화초 등 학교가?많아서?장사가 어렵지는 않아요. 문구용품이 꼭 학생들만 쓰는 것도 아니고요. 너무 오래 해서 이제 좀 쉬려고 내놓았어요. 그런데?찾는 사람이 많지?않네.”

할아버지는 1968년 경신고 앞에서 문구점을 시작해 옛 보성고(현 종로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를 거쳐 25년 전부터?이곳 혜화초교 앞에서 문구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45년을 이어온 셈이죠.

‘학습준비물 무상지원제도’ 시행 후 문방구 30% 사라져

“실례지만?얼마에 내놓으셨어요?”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가 50만원이에요. 거기다 물건값 2000만원과?권리금 2000만원 생각하고 있어요.”

할아버지는 복사기, 코팅기, 슬러시 기계 등을 보여주며 이런 것으로 버는 부수입도 짭짤하다고 넌지시 이야기합니다.

“복사, 코팅 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아요. 복사 A4 한장에 100원, 코팅은 A4가 1000원입니다. 여름에 슬러시는 아이들 최고 인기 간식이에요.”

할아버지는?다른 업종보다 문구사를 이어갈 주인이 나타나길 바랍니다.

“여기가 나름 유명세를 탄 곳이잖아요. 방송도 나가고. 간판은 제가 보성고 앞에서?문구사 할 때 붓글씨로 쓴 건데, 잡지사에서 나와 찍어가기도 하고 그랬어요. 다른 건 몰라도 그건?계속 가져갔으면 좋겠어요. 뭐 다른 업종을 해야겠다면 할 수 없지만요.”

주인 할아버지는?”문구들은 어디 사라지는?것도 아니고 오래됐다고 쉽게 변하는 게 아니라서 관리도?어렵지 않다”며 “큰 돈은 아니지만?어지간한 직장인이 받는?월급 정도는 벌 수 있다”고?말합니다. 가게가 잘 안나가 하시는 홍보성 멘트(?) 같기도 합니다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죠.

“우리 때는 좋아서 했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당장의 달콤한 것만 찾는 것 같아요.”

할아버지는 자유당 시절 한전에서 근무하다 군 제대 후 문구사와 서점을 열었습니다. 서점은 중간에 잘 안돼 접고 문구점만 계속 해 오고 계신 거지요.

“문구사만 해서 집도 구입하고 4층 상가 건물도 샀어요. 남매 교육도 다 시켰고요. 이슬비에 옷 젖는다고 성실하게 무슨 일이든 오래하면 다 살게 되는 법이지요”

간송 전형필 선생이?설립한 보성고와 인연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개점 당시 경신고, 보성고 배지, 단추, 마크 등 교복 관련 악세서리들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습니다.

“간혹 이 앞을 지나가다 들르는?사람들이 있어요. 50대 중년들인데,?’아저씨?잘 안다’며 반갑다고?인사를 해요. 경신고, 보성고 출신들이죠. 당시 배지를 구입해 가기도 하고요.”

보성고와 관련된 일화도 들려줍니다.

“당시 보성고 교장이 전성우 현 간송미술관 주인이죠.?보성고가?전성우씨 부친인 전형필 선생이 세운 학교잖아요.?지금도 그 분이 이사장일 거예요.?보성고가 현재?송파구에 있는데,?저 위 종로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과 과학고 자리에 있었죠. 정부시설을?짓게 되니?충분히 보상하고 송파에 좋은 자리를 주겠다 약속해?현재 방이동 목 좋은 곳으로 가게 됐죠.”

나오는 길,?존함을?묻는 질문에 “에이, 뭘 그런 걸 물어봐. 내 이야기도 안 냈으면 좋겠는데…”?그럽니다.

오랜 장소에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꼬마는 ‘아폴로’를 몰래 훔쳐도 봤을테고, 어떤 중학생은 그곳에서 짝사랑의 설렘을 갖고 예쁜 편지지를 골랐겠지요. 할아버지가 떠나면 그 이야기의 절반이 사라지겠죠. 그러나?문구사라도 계속되면 절반은 남을 겁니다.?오가며 그 친근한 ‘보성문구사’를?오래오래 보길 희망합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