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8일] 스리랑카 대통령 눈 앗아간 폭탄테러

2010년 쟈스민 혁명

아라비안 자스민. <사진 출처=http://www.flmnh.ufl.edu>

쟈스민은 튀니지의 국화(國花)다. 2010년 12월18일 시작된 튀니지 시민혁명을 ‘쟈스민 혁명’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혁명은 중동 민주화 운동으로 번졌다. 북 아프리카와 중동 민주화 운동의 직접적인 원인은 지독한 물가상승과 독재정권들. 튀니지의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이집트의 무바라크, 리비아의 카다피,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등이 그들이다.

중동 민주화 운동은 2011년말 현재 바레인과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알제리, 모리타니, 수단, 예멘까지 번진 상황이다.

대통령이 물러난 뒤 집권한 군부에도 여전히 대항하고 있는 이집트 국민들을 볼 때 여전히 혁명은 계속되고 있다.

아프리카와 중동 사람들 사이에서는 수십 년 간 권좌를 지켜온 ‘독재자’와 나토군을 앞세우고 입성한 ‘서구 제국주의’가 묘하게 교차되고 있다. 아프리카와 흑인들의 완전한 독립에 평생을 바쳐온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과 카다피가 절친한 이유이기도 하다.

2006년 말레이시아 남부에 폭우로 큰 인명 피해

 

2006년 12월18일부터 1월 중순까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남부지방에 폭우가 쏟아져 사망과 실종, 이재민 등 엄청난 규모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위키피디아는 이기간 중 말레이시아에서만 118명이 사망하고 4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북쪽 끝에 위치한 아체주는 해안에 있는 6개 마을이 물에 잠겼으며, 북부 수마트라 주로 가는 도로들도 끊겼다. 말레이시아도 조호르 등 4개주의 강과 댐이 범람해 마을과 가옥이 물에 잠겼으며 전력 공급과 철도 운행이 중단됐다.

 

당시 폭우는 이에 앞서 필리핀과 베트남을 휩쓸고 남쪽으로 내려온 태풍 우토르(Utor)의 영향인 것으로 분석됐다. 특이하게도 당시 홍수 뒤 거의 한 달 뒤인 이듬해 1월13일 또 한 차례의 큰 홍수가 말레이시아를 덮쳤다.

1999년 스리랑카 자살폭탄

‘스리랑카 폭탄테러’라는 키워드로 뉴스 검색을 해보면 놀라운 수치가 나온다. 지난 1991년부터 2008년 10월6일까지 한국의 <연합뉴스>에 보도된 기사는 82건이다. 중복되거나 다른 지역의 뉴스도 많지만, 이 지역에서는 잊을만하면 끔직한 폭탄테러 뉴스를 제공한다. 어느 해에는 폭탄테러로 매달 수백 명이 희생되기도 했다.

지난 1999년 12월18일 스리랑카 행정 수도인 콜롬보에서 발생한 폭탄테러도 그 중 하나였다. 이 폭발로 이 나라 쿠마라퉁가(Chandrika Kumaratunga) 대통령이 오른쪽 눈을 잃었고, 자폭한 범인은 하반신만 남았다.

여성으로서 한 달 전 재선에 성공한 쿠마라퉁가 대통령이 이날 연설하는 도중 스리랑카 북부에서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반군 ‘타밀 엘람 해방 호랑이(LTTE)’ 소속(추정)의 한 여장 남자가 갑자기 허리춤에 감춰뒀던 폭탄을 터뜨렸다.

대통령은 거기에서 불과 몇 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 6년 전 1993년 당시 대통령도 이 같은 자살테러로 목숨을 잃었다. 이 나라 총리를 지낸 쿠마라퉁가 대통령의 친 아버지도 꼭 40년 전 피살됐고, 1988년에는 남편마저 피살됐다. 그 뒤 2000년 10월에도 한 차례 자살폭탄 테러를 당했지만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불교계 싱할라족이 다수인데 스리랑카 정부가 소수 타밀족(힌두교계)을 차별하는 정책을 펼쳐왔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타밀계를 공유하는 인도가 당연히 개입해 있다. 잔인함과 반(反)인륜성을 보면 스리랑카 정부군이나 반군이나 똑같다. 자살폭탄은 일본 사무라이의 할복(割腹) 장면을 연상케 한다. 둘 다 섬나라라서 그런 걸까.

 

1956년 일본 유엔 가입

1940년 독일 및 이탈리아와 3국 동맹을 맺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과 싸운 일본은 1945년 8월15일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했다. 종전 후 미군이 점령한 일본은 1947년 5월3일 전쟁을 거부하는 ‘평화헌법’을 공포했다.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 및 비(非)공산권 49개국과 강화조약을 체결했다.

1952년 4월 주권을 회복함과 동시에 미일안보조약을 체결, 미국과의 유대를 굳혔다. 남북으로 갈린 한국이 한국전쟁을 치르고 있는 동안 일어난 일이다. 그 뒤 1956년 12월 유엔에 가입했다. 전범 국가로서 패전 10년만에 유엔에 가입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과의 강력한 동맹 때문이었다.

그 뿐 아니다. 일본은 유엔 이사회격인 안보리 상임이사국까지 노리고 있다. 일본이 2006년 유엔 사무총장직에 도전한 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자국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한 한국의 지지 문제를 연계하려 했던 사실이 위키리크스가 최근 공개한 미국 외교전문에서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