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과 한국, 나누고 바꾸고 섞다
아세안화합한마당 참관기…지구촌의 으뜸, “아시아가 보인다”
아둔하게도, 시상식이 다 끝나고 나서야 참가팀 모두가 상을 받았고, 참가자는 물론 아세안(ASEAN) 10개국의 외교관들과 방청객들조차 상의 이름과 격에 대해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난 10월27일 토요일 오후 서울 광장동 악스코리아에서 열린 ‘제4회 아세안화합한마당(Brovo ASEAN in Korea 2012)’ 얘기다.
아마추어가 아니네?
한-아세안센터(사무총장 정해문)가 주최한 이날 아세안 화합한마당은 국내 거주 아세안 사람들을 대상으로 각 지역의 전통음악과 무용, 대중가요 경연대회를 벌이는 행사였다. 지난 2009년 한-아세안센터 설립 이래 아세안 국민과 한국 국민의 교류 활성화를 위해 매년 개최, 올해로 4회째를 맞았다.
올해는 10개국 출신의 59개 팀(161명)이 참가, 열띤 경쟁을 펼쳤고 본선에 10개 팀(34명)이 진출했다. 이날 행사는 10개 팀의 결승전이었던 셈이다.
부슬부슬 가을비가 내려 ‘사람이 많이 왔을까’ 하는 의구심을 안고 행사장에 들어갔는데, 각국에서 응원 온 대사관 직원들과 유학생들, 본선 진출팀원들을 응원하러 온 친지들이 악스코리아 2000석을 거의 다 채웠다. ‘보이 프렌드’라는 한국 아이돌 그룹의 축하 공연도 있었기 때문에 소녀팬들의 날카로운 환호와 함성도 들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 일하는 아세안국가 출신 직장인들이나 유학생들이 선보이는 무대라서 공연의 완성도 보다는 풋풋한 아마추어들의 향연을 기대했는데, 기자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거침없는 어우러짐
참가번호 1번 캄보디아의 ‘쿠얼라봇크마에 의정부’ 팀이 크메르 고전무용인 ‘라카온 카올’ 중 원숭이가 등장하는 궁중무 ‘스와(Sva)’를 선보였다. 황금빛 무대의상에 섬세한 몸짓연기, 장엄한 마무리가 돋보였다.
참가번호 2번 베트남 출신 남성 참가자는 베트남의 전통악기 ‘단보우’로 <꿍 딴 다앗 느억(Cung Dan Dat Nuo)>을 연주했다. 단보우는 한국의 가야금과 아쟁 소리가 합쳐진 듯한 악기로, 환상적인 울림과 아주 미묘한 떨림 소리를 다양하게 냈다. 마치 아주 세세한 감정까지 묘사하는 듯이.
3번 버마 출신 ‘틴쪄’는 1인 창작무용인 <미얀마 춤의 아름다움(The Beauty of Myanmar Dance)>을 선보였다. 예쁘게 화장을 하고 여성들의 전통춤을 춰 여자인 줄 알았는데, 남자였다. 틴쪄는 자신을 ‘춤 연구가’라고 소개했다.
4번째 출연자는 브루나이에서 온 ‘나빌라 빈티 하지 압둘라만’은 히잡을 두른 채 임재범의 <너를 위해>를 열창했다. 풍부한 성량과 브루나이 특유의 바이브레이션이 노래의 색다른 맛을 선사했다.
아시아를 녹인 인도네시아의 ‘냐이’들
참가번호 5번 인도네시아에서 온 10명의 여성들로 이뤄진 ‘더 인도네시안 냐이스’가 전통 춤 <렝강 냐이스(Lengang Nyais)>를 선보였다. ‘냐이’는 자바 남부 바다의 여왕으로 알려진 인도네시아의 전설적인 요정이다. 잘은 모르지만, 안무와 표정 연기 등이 아마추어 수준이 아니었고, 특히 교태 섞인 웃음과 함성은 청중들의 애간장을 녹였다. 이 팀이 대상을 받은 건 우연이 아니었다.
참가번호 6번의 라오스팀은 3명의 훈남들. 잘 생긴 라오스 청년들이 조그만 북 같이 생긴 악기를 들고 라오스 전통무용인 <씨앙 꽁 싸 롱 싸이(Sieng Kong Sa Long Xay)>를 선보이자, 객석에서는 환호성이 자주 터졌다. 주로 젊은 여성들의 환호였다.
참가번호 7번 싱가포르에서 온 ‘시아 레이 아이린’은 한국의 국민가수 조용필 노래인데 최근 여자가수 박정현이 불러 새롭게 사랑받고 있는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를 열창했다. 나중에 부상으로 여행상품권을 받은 이 아가씨, 사회자가 “어느 나라 여행하고 싶냐”고 묻자 “올 여름 방학 때 고향엘 못 다녀왔어요”라며 고국 싱가포르에 다녀오겠다고 답해 청중들이 크게 웃었다.
미래의 지구촌 예술가들
참가번호 8번 말레이시아 출신의 ‘타트릭스’팀은 말레이시아와 전통 무용인 <요게&자핀(Joget&Zapin)>을 선보였다. 말레이시아 전통 춤은 유럽 전통 춤의 영향을 받았는지, 폴카 리듬의 경쾌한 안무가 많다.
참가번호 9번 필리핀에서 온 ‘샤다이아모르 레가스피 솔리둠’은 거의 성악가 수준의 가수였다. <사 카부키란(Sa Kabukiran)>이라는 필리핀 가곡을 열창했는데, 엄청난 성량과 아름다운 두성은 관객을 매료시켰다. 나중에 상을 탄 소감과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필리핀 음악을 지구촌에 알리는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포부와 포스, 모두 세계 정상급이다. 몇 년 뒤 안드레아 보첼리와 함께 공연하는 그녀를 볼 수도 있다.
참가번호 10번 마지막 팀은 태국 팀인데 국적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3개 다국적 젊은이들로 구성된 아세안 드림팀이다. 팀 이름도 ‘아트 스피릿’으로, 창작 퍼포먼스 <아세안 인 코리아(ASEAN in Korea)>를 선보였다. 여러 음악을 즐기던 젊은이들이 마지막에 한국의 아리랑에 맞춰 노래하고 춤춘다는 설정인데, 좀 작위적이긴 했지만 한국인이 보면 나름 감동적이다. 무용과 음악이 흐르는 동안 무대 한켠에서 그림을 그려 마지막에 펼쳐 보이는 퍼포먼스에서 젊은 예술혼도 볼 수 있었다.
나누고 바꾸고 섞자
동반 1인이 함께 해도 된다는 한-아세안센터의 초대를 받고 울산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베트남 청년 하이 레두이와 함께 이날 행사에 참여했다. 가끔은 휴일도 없이 일하는 레두이는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아세안 국가들의 전통문화를 돌아볼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의 아이돌그룹 ‘보이 프렌드’의 공연 땐 1층 앞부분의 중딩팬들 때문에 나머지는 조용히 있어야 했다. 너무 시끄러웠으니까. 아이돌이 원래 마뜩찮은 건 아니지만, 이 ‘남자 친구’들이 이날 행사의 의미를 알고 함께 했다고 보기 어려워 아쉬웠다. K-Pop을 좋아하는 외국인들도 표정이 그다지 밝지 않았다.
행사가 다 끝나고 레두이와 헤어진 뒤 지하철 역 앞에서 캄보디아 유학생들을 만났다. 지뢰를 제거하는 캄보디아 평화운동가 아키라가 만해상 수상을 위해 방한했을 때 통역 자원봉사를 해줬던 노엄 쇽비차이(고려대학원)와 위라윈(경희대) 이외에도 처음 보는 캄보디아 대학생들이 대거 행사에 참석했던 것이다.
이런 행사 자주했으면 좋겠다. 상품도 많이 필요 없고, 밥을 줄 필요도 없다. 기관이나 기업들은 그저 일정이 없는 장소를 빌려주면 족하다. 토요일이면 유학생들 뿐 아니라 직장생활 하는 아세안들도 많이 참석할 수 있을 것이다. 나누고 바꾸고 섞다 보면 더 좋은 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