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리운전 기사의 삶

가끔 대리운전을 이용할 때가 있습니다. 잠재적 대리운전 기사로서 궁금한 게 많습니다. 어떻게 대리운전 기사가 될 수 있는지, 한 달 수입은 얼마나 되는지, 힘들지는 않는지 등등.

2일 밤 회사 회식 후?대리운전을 불렀습니다. “여기 서울 명륜동 혜화초등학교 앞입니다. 도착지는 안양 인덕원역이고요. 요금이 얼마죠?” “2만2000원입니다. 괜찮나요?” “네 불러주세요.”

5분 뒤 대리운전 기사가 왔습니다. “인덕원역은 한번도 안 가 봤는데, 어떻게 가면 될까요?” 대리운전을 한지 채 한 달이 안되는 기사가 왔습니다. “그래요? 제가 알려드리죠.”

기자에게 대리 운전 기사나 택시 운전기사는 사회의 한 면을 알려주는 좋은 취재원이기도 합니다.

“말투도 그렇고 인덕원역도 모르는 것 보니 한국 분은 아니신 것 같은데, 조선족 분이세요?”
“아, 아닌데요. 전라도 완도입니다. 경상도에서 오래 살다보니 전라도, 경상도 사투리가 조금씩 섞여 조금 특이합니다. 어떤 분은 중국 사람 아니냐고 묻기도 합디다.”
“완도요? 김 양식 많이 하는?”
“네”
“어떻게 대리운전을 하게 됐나요?”
“완도에서 김양식을 했는데, 김값이 뚝 떨어져서 장래가 없더라고요. 4년 전 서울에 올라와 이런 일 저런 일 하다가 지금은 낮에는 중국집에서 배달일 하고 저녁에는 대리운전해요.”

대리운전 기사를 하기 위해서는 대리운전 업체에 가입을 합니다. 선수금으로 10만원 정도를 미리 냅니다.?그리고 대리운전 정보 프로그램을 다운받습니다. 정보 프로그램은 월 1만5000원. 물론 보험도 가입해야 합니다. 보험금은 매월 7만원 정도. 보험은?가입한 업체가 지정해 주는 보험사에 들어야 합니다. 대리운전 오더가 떨어지면 수익의 20%는 업체 몫입니다. 대리운전 정보프로그램에 2~3개 가입하고 보험금 내면 월 10만원은 기본적으로 빠져 나갑니다. 참,?대리 운전 기사들에겐 우리에게 익숙한 번호를 가진 업체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정보 프로그램에 의해 지역적으로 여러 번호를 공유하기 때문이랍니다.

“20%를 업체에서 떼어 가고 운전 보험도 지정해 준 곳에서 한다면 좀 문제가 있네요.”
“그래도 이 일 하려면 어쩔 수 없죠. 그냥 하는 거죠.”
“김 양식하는 것보다 나아요?”
“뭐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김양식은 사양업종이에요. 요즘은 완도에서도 전복 양식을 많이 해요.”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중국집에서 배달을?해서 120만원,?오후 9시부터 새벽 2시까지 대리운전을 해서 번 돈이 130만원 쯤 될 것 같답니다. 경제 상황이 안 좋다 보니 대리운전 기사 공급은 늘고?손님은 줄어 하루 세 건도 못하고 들어갈 때도 있습니다. 외진 곳에 갔다가 연결이 안 돼 고생할 때도 있고요.

“김 양식을 하셨으면, 김에 대해서 잘 아시겠네요. 무슨 김 주로 사 드세요?”
“광천김이요. 그게 조미김 가운데 그래도 맛있어요.”

마트에 가 보면 파래를 강조하는 김들이 많은데, 파래김이 좋은 김은 아니냐고 물어봤습니다.

“파래김이 적당히 섞인 게 맛있는 김입니다. 옛날에는 파래김은 값도 쳐 주지 않았죠. 검은빛의 윤택이 나는 김을 최고로 칩니다.”

기사의 나이는 43세. 미혼이었습니다. 흘깃 살펴보니 잘 생긴 얼굴이어서, 왜 안 갔냐고 했더니 “잘 생기면 뭐하나, 직업이 보잘 것 없는데”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하고 싶은데 쉽지 않아요. 보잘 것 없잖아요? 서울에 고향 친구도 많지 않다보니 일 끝나고 나서는 중국집 동료들과 술 마시는 게 낙이었습니다. 일 끝나고 할 일이 없으니까 술만 먹게 되더라고요. 그러지 말아야겠다 싶어 대리운전을 시작하게 됐어요. 돈도 좀 모아야 될 것 같고.”

어느덧 집 근처입니다. 기사의 집은 서울 양재동. “인덕원에서 강북까지 한건 뛰고 강북에서 양재로 이어지는 손님을 만나면 오늘 하루는 행복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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