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 칼럼] 무토 마사토시 주한 일본대사께

무토 대사님

연말을 맞아 사람들 발걸음이 빨라지고, 보름 남짓 남은 신묘년을 마무리하려는 마음이 분주하기만 합니다. 그동안 한일 양국의 우호 발전을 위해 애쓰시는 대사께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아직 얼굴 한번 뵌 적 없는 대사께 이렇게 공개적으로 글 전달 하는 것을 널리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이 글이 실타래처럼 얽히고설켜 있는 한일관계를 풀어가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대사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듯 14일에는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강제위안부 할머니들의 1000번째 ‘수요집회’가 열립니다. 1992년 1월8일 첫 집회가 열린 후 어언 20년이 되었습니다. 대사께서 한국대사관 참사관으로 부임하기 1년여쯤 전이지요.

당시 대부분 60대이던 할머니들은 어느새 팔순을 넘기고 죽음을 눈앞에 두고 계십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두 번 이상 변하는 세월 속에 초기 234명이던 대한민국 등록 일본군 강제위안부는 이제 64명만이 생존해 있습니다.

할머니들은 그동안? 명절에도 쉬지 않고 일본대사관 앞에 나와 “일본 정부는 진정으로 사과하고, 배상하라”는 플래카드와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분들은 고베지진과 올해 대지진 때는 피해일본인들을 위한 추모집회도? 열었습니다.

대사님,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14일 일본군 강제위안부 할머니들과 서울시민들은 일본대사관 앞에 평화비를 건립할 예정입니다. 평화비는 수요집회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약 120㎝의 크기로 일본군 성노예로 희생당한 피해자들의 당시 모습을 묘사한 것이지요.

대사님께선 이에 대해 일본 정부를 대신해? 지난달 25일 박석환 외교부 1차관을 만나 한국정부가 일본대사관 앞의 평화비 건립을 막아달라고 요청하셨더군요. 앞서 후지무라 오사무 관방장관도 지난 8일 도쿄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일본군 강제위안부들의 평화비 설치를 중단시켜달라고 한국정부에 요청했으니, 대사님의 요청 또한 이해 못할 바도 아닙니다.

일본정부를 대변하는 대사님 입장에선 대사관 앞에 일본군국주의의 치부를 드러내는 위령비 설치가 못마땅한 것은 당연하겠지요. 그래서 ‘공관모독’이란 표현도 나온 것이겠구요. 일본정부는 평화비 설치가 한일 외교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거라고 여기는 듯합니다.

무토 대사님, 일본정부의 입장이 모두 잘못됐다고 주장하지는 않겠습니다. 우리 동양사람들만큼 역지사지란 말을 어려서부터 몸에 익혀온 사람도 드물 것이란 사실은 대사님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이번 평화비 설치문제에 대한 일본의 입장은 좀처럼 이해되지 않습니다.

한일외교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이번 평화비 설치가 아니라, 일본군 강제위안부 문제에 대해 법적, 도덕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 일본정부에 있다는 게 우리들의 솔직한 생각입니다. 일본정부가 평화비를 보고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면, 이야말로 스스로의 잘못을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싶습니다.

당장 눈에 거슬린다고 하여 평화비 설치를 반대할 것이 아니라, 나약한 할머니들이 왜? 1000번에 걸쳐 대사관 앞 시위를 줄기차게 이어오는지를 곰곰이 생각하며 그들의 눈물과 한을 위로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무토 마사토시 대사님

금년 봄 대사님을 찾아간 성남의 한 학교 학생들과의 인터뷰 중 이런 대목이 눈에 띄더군요. “청소년들의 바람직한 모습은 어떤 것이냐”는 물음과 이어진 “여러 나라를 다니며 외교활동을 할 때 가장 보람 느낀 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였습니다.

“청소년은 청소년에 맞게,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명랑하고 기운이 넘치는 귀여운 모습이 좋습니다. 어린이들은 다음 세대를 이끌어 나가야 하는 사람이니까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외교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는 40년간 해온 한일관계가 많이 바뀌고 좋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한일관계가 좋아질 수 있도록 이어지는 것이 제가 제일 하고 싶은 일입니다.”

무토 대사님, 14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이 ‘명랑하고 기운 넘치게 귀여웠어야 할’ 나이에 어디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대사님께서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지난 40여년간?한일관계가 좋아진 것은 대사님 같은 분들의 전문성과 헌신성 덕택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2% 부족한 것도 숨길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것은 그동안 두나라가 문제의 본질은 덮어둔 채, ‘립서비스’와 ‘미봉책’만 앞세운 탓이 크다고 봅니다.

이번 문제 역시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일본대사관 앞 평화비 설치가 진짜 문제라고 여긴다면 왜 그런지 할머니들과 흉금을 터놓고 얘기하는 게 더 나은 해법이 아닐까 합니다. 대사님 말씀처럼 일본은 우리와 가까운 이웃나라이고 서로 이해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평화비 건립문제는 바로 한일관계의 미래에 대한 또 하나의 리트머스시험지가 되고 있습니다.

한국에 귀화한 50대 일본여성이 제게 한 말을 대사님께 소개하는 걸로 제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위안부문제를 푸실 수 있는 분은 일본천황뿐입니다. 그분은 인격자이셔서 이 문제를 충분히 해결하실 분입니다. 다만, 주변에서 이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주는 분이 없는 게 안타깝지요.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는 관료나 외교관이 어느 때보다 일본에는 필요하지요.”

긴 글 끝까지 읽어주신 점 깊이 감사드립니다.

 

2011년 12월13일

이상기 AsiaN 발행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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