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식 칼럼] 젖 먹은 힘으로 묵은 해 고통 털어내길
아시아엔은 오는 11월11일 창간 3돌을 맞습니다. 그동안 독자들께서 보내주신 성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시아엔은 창간 1년만에 네이버와 검색제휴를 맺었습니다. 하지만 제휴 이전 기사는 검색되지 않고 있어, 그 이전 발행된 아시아엔 콘텐츠 가운데 일부를 다시 내기로 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좋은 정보가 되길 바랍니다. 이동식 박사는 지난 4월10일 별세했습니다. 이 글은 그의 유고인 셈입니다.<편집자>
2011년 연말을 맞아 사람들 마음과 발걸음이 바쁘기만 하다. 지난 1년간 계획한 대로, 뜻한 대로 이룬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불만이 더 많을 것이다. 최근 젊은이, 노인 할 것 없이 데모대에 끼어 있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사람들은 왜 데모를 하는 걸까?? 정치적 목적도 있지만, 근원적으로는 화(火)가 꽉 차있기 때문이다. 화가 표출되어 나타나는 게 바로 데모다. 일종의 화병, 울화병의 또다른 표출인 것이다. 그런데 데모는 화가 나 있어도 힘이 없으면 하지 못하는 법이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연말에 사람들이 봉사활동 대신 데모현장에 나타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러면 데모의 주원인인 화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정신적 고통을 받아들이고 이것과 하나가 되면 이겨낼 수 있다. 늘 웃는 낯의 김수환 추기경이 좋은 본보기다. 추기경은 생전 “내탓이오”를 외치며 모든 걸 자신의 잘못이라고 인정하고 화를 풀었다. 화를 속으로 받아들이니 화 대신 웃는 낯이 나타난 것이다. 이에 반해 역시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던 어떤 분은 화난 얼굴을 달고 살았다. 왜 그랬을까? 자라면서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화를 해결하지 못해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 하버드대 교수를 지낸 故 에릭 에릭슨은 인간의 성장과정을 설명하면서 “’베이식 트러스트(Basic Trust)’ 즉 기본적인 신뢰가 없으면 정신장애가 생긴다”고 했다. 베이식 트러스트란 바로 어머니 사랑에 대한 믿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갖지 못하고 있으니 불안하고, 화가 생기는 것이다. 정신과의사 프로이트도 “만 두살까지 어머니의 확고한 사랑을 받으면 평생 무슨 일이든 잘 헤쳐나간다”고 했다. ‘젖 먹은 힘’이라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게 바로 이것이다.
젖 먹은 힘이 튼튼하면 병도 잘 안 걸리는 법이다. 죽을 것 같은 고통이 닥쳐와도 버티고 넘겨야 극복이 가능하다. 고통은 그것을 참고 견녀낸 사람이라야 거기에서 멀리 달아날 수 있다. 지금 아무리 좋은 환경에 있는 사람도 해결 안된 과거 감정 속에 빠져 스스로 억압하는 사람을 흔히 보게 된다. 고통을 애써 외면하면 현재 자신의 있는 그대로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자신을 직면하지 못하니 고통을 늘 달고 다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고통은 잠시 잊혀질 뿐, 유령처럼 다시 찾아오기 마련이다. 과거의 쓰라린 경험과 기억, 즉 고통에 정면으로 맞서 솔직하고 온전히 이를 받아들일 때 고통은 비로소 우리를 떠나게 된다.
최근 고교생이 어머니를 살해한 후 반년 이상 태연하게 지내다 발각된 사건은 충격이다. 그 학생은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도 죄책감도 별로 느끼지 않은 듯하다. 상당수 가정에서의 갈등은 모친과의 갈등을 풀지 못하는데 원인이 있다. 그 학생은 어머니의 따스한 사랑 대신 지나친 기대와 끊임없는 간섭을 참지 못해 끔찍한 일을 벌인 것이다. 엄마와 자식간의 소통이 제대로 안되면 가정의 비극을 초래하듯이 사회나 국가 역시 마찬가지다.
이웃과 이웃사이, 정부와 국민 사이의 소통이 되지 않거나, 소통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생기는 고통을 감내할 의지와 노력이 없이는 더 큰 불행이 언제나 우리 곁을 어슬렁거린다. 젖 먹던 힘을 이제 남과 소통하는데 한번 써보자. 소통하면서 생기는 고통을 어릴 적 엄마한테 받은 사랑으로 한번 견뎌보자. 2011년 세모, 세상은 훨씬 웃음으로 꽉 찬 그런 곳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