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희의 생각나눔] 정치인을 위한 변명
6년간 정치학을 배우고, 현실정치에 입문한 지 4년 반이 지나고 있는 지금, ‘정치인’이라는 직업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한국사회에서 정치인은 연예인과 앞뒤를 다투며 도마 위에 자주 오르곤 한다. 사람들은 정치인을 이야기할 때 경멸적인 어조를 숨기지 않는다. 정치를 하는 사람이건 아닌 사람이건, 또는 정치에 관심이 있든 없든 정치인은 늘 거짓을 이야기하고 말과 행동, 생각이 일치하지 않는, 하여 결코 존경받지 못할 종족이라는 데에 동의하는 듯하다.
정말 정치인들은 모두 부패하고 파렴치한 인간들일까? 아니면 원래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정치인이 되고 나면 필연적으로 변하는 걸까?
독일의 학자이자 현역 정치인인 헤르만 셰어가 쓴 ‘정치인을 위한 변명’에 따르면 현실적으로 이는 정치인의 문제라기보다 정치시스템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정당은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일치에 대한 강박으로 정치인 개개인의 의사를 억압하고, 줄서기를 강요한다.
매스컴은 음모, 기회주의, 적대감 등이 정치계에만 있는 양 비난하고, 정치인을 무차별적으로 폄하하기 바쁘다.
유권자들은 신뢰하지 않는 당과 정치인들을 계속 뽑아주면서 그들이 바뀌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사람들이 모여 만든 모든 종류의 조직에서 흉한 권력싸움이 벌어지지만, 오직 정치판의 싸움만이 늘 공개되며 잘 팔리는 언론 상품이 된다. 세상 사람들 중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으나,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그런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에겐 보편적인 인간적 기준마저 허용하지 않는다.
대중에게 접근하려는 모든 시도를 표를 노린 걸로만 보면 모든 정치적 대화는 불가능해지지만 언론과 대중은 그 점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치인들을 악의적으로 해석하기에 바쁘다.
당론을 따르면 소신이 없다고 비난하면서도 막상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죽어라 하고 외면한다. 엘리트보다는 서민의 대변자를 원하면서도 정치인들의 ‘무식’을 탓하면서 그들이 엘리트답게 행동해주기를 바란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든 책임을 정치인들에게만 묻는 것은 다소 부당하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사람을 정치적 인간과 사적 인간으로 나누었다. 정치적 인간이란 공동체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이다. 사적 인간은 오직 자기 자신의 문제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이다. 가능한 한 많은 정치적 인간, 그리고 가능한 한 적은 사적 인간.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 공동체의 이상이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완전히 반대가 됐다. 정치인의 위신은 이미 처참하게 땅에 떨어졌다. 사회에 널리 퍼진 정치인에 대한 부정적 의견은 유권자들로 하여금 긍정적 정치인을 멀리하게 만든다. 그들이 정치인들에 대해 무심해질수록, 사회의 운명에 무심해지는 정치인들도 더욱 많아진다.
결국 정치인들이 정치적 행위를 함에 있어 단순히 직업인으로서 자신들의 정치생명을 연장하는 데에만 급급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정치인 없는 새로운 정치’는 불가능하다. 정치에 대한 고민만큼 ‘정치인’에 대한 활발한 토론과 정확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올바른 정치인과 정치의 탄생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좀더 마음을 열고 ‘정치인’을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