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간 기획·출간된 문화사학자 ‘신정일의 신 택리지’에 얽힌 사연

최근 수십 년간 휴전선 이남 방방곡곡을 답사한 결과물인 <신 택리지> 10권을 펴낸 신정일 문화사학자가 9월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쑥스러운 부탁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드립니다. 출판환경이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구입해 주시거나 도서관이나 관공서에 구입해서 비치하도록 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저자는 이 책이 나오기까지의 오랜 세월, 여러 사연을 솔직 담백하게 기술했다. <아시아엔>은 신정일 저자의 페이스북 글을 독자들과 공유한다. <편집자> 

<신 택리지> 10권 중 산과 강의 풍수를 완간하고 펴놓으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2002년 8월, <한강 역사문화 탐사> 책이 발간된 뒤, 한겨레신문의 허미경 기자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인터뷰 마무리를 하며 허 기자가 내게 물었습니다. “신정일 선생님, 앞으로 우리나라를 더 많이 걷고 난 뒤 정말로 쓰고 싶은 책이 어떤 책입니까?” 나는 90년대 초부터 마음에 두었던 말을 주저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북한까지 다 답사한 뒤에 이중환의 <택리지>를 다시 써보고 싶습니다.“

토요일에 책에 대한 기사가 나간 뒤, 그 다음 주 월요일부터 며칠 사이 나는 수십여 군데 유수의 출판사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택리지>를 계약하자는 전화였습니다. 나는 다 거절했습니다. “아직 우리나라를 다 돌아다보지 못했을 뿐더러 북한은 한 번도 가보지 않았으니, 다음에 쓰겠다.”

당시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택리지를 써달라고 했을까?’를 생각해보니, 여러 가지가 떠올랐습니다. 인문지리지는 대략 50년 단위에 한번은 쓰여져야 하는데, 조선시대 이중환의 <택리지>가 발간된 지, 250여년이라는 세월 속에 단 한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택리지는 오랜 시간의 답사를 거쳐야 나오는 책일뿐더러 온갖 지식들, 문학 역사, 철학(文史哲) 즉 인문학이 총 망라되어야 하는데, 현대 학문에서 그렇게 공부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2003년 1월 ‘휴머니스트’의 이재민 편집자가 김학원 대표와 함께 기획안을 만들어 가지고 전주로 찾아와서 계약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며칠간 만 말미를 달라고 한 뒤 그날 저녁 일산에 계신 김지하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선생님, 모 출판사에서 <택리지>를 계약하자는데 어떻게 해야지요?” 김지하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형, 계약하고 써요. 그리고 차근차근 수정하면 되니까?” 그렇게 해서 계약을 한 책이 <다시 쓰는 택리지>였습니다.

그뒤 2003년에는 기적처럼, 행운처럼 북한의 백두산 묘향산 구월산 그리고 평양 일대를 답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이 처음 나오고서 모든 언론으로부터 호평을 받았고, 2004년 4월 간행물윤리위원회 추천도서가 되었습니다.

이 책의 추천사를 서울대 국사학과에서 정년퇴직하고 한림대 한림과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계시던 한영우 선생님이 썼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을 구석구석 밟아 보고, 그 땅의 자연과 물산과 그 땅에 심어 놓은 조상의 문화를 직접 체험하면서 죽도록 이 땅을 사랑해 본 일이 있는가. 2백년 전의 이중환은 불우한 가운데서 그런 일을 했고, <택리지>라는 명저를 냈다. 150년 전의 김정호도 이 땅의 아름다움과 문화를 대동여지도로 그려냈다. 그런데, 바로 지금 또 하나의 ’21세기 택리지’가 나타났다. 세월이 변하고 국토가 변하고, 문화가 바뀐 이 시점에서 당연히 ‘택리지’는 다시 쓰여져야 할 것이고, 그 일을 신정일이라는 문화사학자가 일구어냈다. 비록 분단의 북쪽은 밟아 보지 못했으나 이 책은 왜 우리가 죽도록 이 땅을 사랑해야 하는지를 뜨거운 가슴으로 말하고 있다. 귀중한 현장 사진과 더불어 옛날과 지금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면서 땅과 사람의 대화를 그려낸다.”

그리고 어느 날 느닷없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김근태입니다. 택리지 감명 깊게 잘 읽었습니다.” 5공화국 시절 온갖 고문을 받고 <남영동>을 쓰신 김근태 선생님이 출판사에 내 전화번호를 물어서 전화를 주셨고, 그리고 며칠 뒤 이광재(전 국회의원)씨한테 똑같은 전화를 받았습니다. 학연, 혈연, 지연이 없이 혼자 공부한 나에게 무한한 힘을 주었습니다.

그 책이 다섯 권으로 완결된 뒤 2006년에는 ‘KBS TV 책을 말하다’에 선정되어 전국으로 방영되었습니다. 그 뒤 미진해서 10권으로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아프니까 청춘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펴낸 쌤앤파커스의 박시형 전 대표가 이 책을 출간해주기로 하였고, 현 대표인 이원주, 최세현 대표, 신상미 책임편집자의 노고로 <신정일의 신 택리지> 10권이 22년의 세월 속에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 책을 펴내 주신 출판사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신 택리지>에 많은 분이 서평을 해주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금, 김정호 선생을 닮은 사내가 있다.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산을 오르기 시작한 그가 다음은 강 길을 걷더니, 이제는 아예 우리나라 전 국토를 이 잡듯 뒤지며 걷고 또 걷는다. 나는 그를 보며 ‘저 사내 틀림없이 김정호 귀신이 씌었지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저럴 수 있단 말인가’ 하고 생각한다. 현대판 김정호, 그가 바로 신정일이다”._김용택 (시인)

“신정일 선생은 촌놈 같기도 하고 동학군 같기도 하여 어수룩해 보인다. 그런데 이 ‘촌놈’의 얘기가 왜 이렇게 재미있는지 절로 무릎을 치게 한다. 신정일은 무당처럼 답사를 한다. 이렇게 혼이 실리고 신명 나는 답사의 궤적을 따라가 볼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행운이다.”_이정만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신정일의 책은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이 땅 구석구석을 누구보다도 많이 걸었던 그의 발이 쓴 국토 교과서라고 생각한다.“_이덕일 (역사학자)

“<택리지>의 현장정신을 계승한 신정일 저자는 40년 넘게 전국의 산천을 답사한 전문가이다. 아마 이중환보다 더 다녔으면 다녔지 못 다닌 것 같지가 않다. 우리나라 방방곡곡 안 가본 산천이 없다.”_조용헌(강호동양학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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