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우 칼럼] 이종섭 호주대사 임명 무엇이 문제인가?

속담에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 끈을 고쳐 매지 말라”(李下不整冠)는 경구가 있다. 중국 한(漢)나라 때 지어진 악부시(樂府詩)의 군자행(君子行)에도 “오이 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않으며(瓜田不納履) 오얏나무 아래서 관을 고쳐 쓰지 않는다(李下不整冠)”는 구절(句節)이 있다. 개인의 사생활이나 공직자의 공무수행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도리를 경계하는 격언이다.

이종섭 호주대사 임명은 누가 보아도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는 격으로 여러 가지 오해를 살 만하여 개운하지 않고 찜찜하다. 필자는 작년 여름 해병대 채모 상병 사망 사건으로 항명이니 외압이다 시끄러울 때도 별 관심을 갖지 않아 사건의 진상을 잘 몰랐다. 그런데 그 사건 피의자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에서 주된 피의자로 출국금지 까지 받은 상태에서 수사를 받던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호주대사로 임명됐다는 보도를 보고 깜짝 놀랐다.

최근 신문들을 다시 뒤져 보았다. 신문보도와 뉴스를 토대로 사건 내용과 이종섭 전 장관이 호주대사에 임명된 경위와 문제점을 차례로 짚어 본다.

작년 7월 집중호우로 발생한 실종자 수색 작업 중 해병대 채모 상병이 순직하였다. 이를 수사한 해병대 수사단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등 8명에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가 인정되어 경찰에 이첩하겠다고 보고서를 작성, 국방부에 보고했다. 국방부장관 이종섭은 이를 승인하고 하루만에 번복하여 경찰로의 이첩을 보류하라고 지시한 것이 외압이라는 것이다. 박정훈 전 수사단장은 장관의 명령을 어기고 사건을 경찰에 이첩 했는데 이것이 항명이라는 것이다.

결국 순직사건은 사고원인 조사는 뒷전으로 밀리고 항명이냐 외압이냐의 논란이 커졌고 정치적 이슈로 번지게 되어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다. 항명이냐 외압이냐를 둘러싸고 국방부와 수사단장이 서로 싸우다가 결국 국방부장관과 수사단장이 모두 자리에서 물러났다.

박정훈 전 수사단장측은 당시 임성근 사단장에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한 것에 대하여 윤석열 대통령이 진노하여 장관이 지시를 번복했다고 주장하였다.

국방부측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하고 다시 짚어봐야겠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으나 어느 쪽 말이 진실인지 수사에서 밝혀질 일이다.

이종섭 전 장관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공용서류 무효 등 혐의로 고발당하여 공수처에서 수사를 받게 된 것이다. 공수처에서는 금년 1월 이 전 장관에 대하여 출국금지 하고 지난달 국방부와 해병대를 압수수색하면서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3월 4일 이 전 장관을 호주대사로 임명하였다. 대통령실은 3월 6일 공수처의 수사 상황은 독립적 수사기관인 공수처에 자료제출을 요구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었기 때문에 우리로선 공수처가 이 전 장관에 대하여 출국금지를 했는지 여부를 알 길이 없었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법에 대한 상식이 없는 일반 국민들이라도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이 전 장관은 직업외교관이 아닌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이 작용하는 특임공관장이다. 이에 대통령의 특임공관장 임명은 대통령실의 검증에 좌우 된다. 이 전 장관이 출국금지되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대통령실의 주장은 검증 부실의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3월 7일에는 이 전 장관이 공수처에 출석하여 4시간 동안 피의자 신문을 받았다. 이것도 보통 피의자가 여럿인 경우 실무를 담당한 부하직원을 먼저 조사하고 최고 책임자는 마지막에 조사하는 원칙을 깨고 제일 상급자를 먼저 조사하여 특혜수사라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법무부는 그 다음날인 3월 8일 출국금지 심사위원회를 열어 논의한 후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해제 이유는 출석 조사가 이루어졌고 본인이 수사절차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하고, 공수처도 이에 동의하여 출국금지를 유지할 명분이 없어 출국금지를 해제했다고 발표하였다. 외무부 당국자도 호주가 방산수출 등에서 비중이 커지고 있어 군사 분야 전문가인 이종섭 전 장관이 적임자라고 판단해서 호주대사로 임명했다고 한다.

정부 관계자는 호주 정부는 이 전 장관이 공수처에서 수사받는 상황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대사 부임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이 대사는 야당 의원들이 인천공항까지 가서 출국을 막기 위하여 진을 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3월 10일 저녁 비행기로 호주로 떠나 대사로 부임했다.

신문보도에 의하면 이는 단순히 이 전 장관만의 문제가 아니다. 당시 보고 선상에 있던 임종득 전 국가안보실 제2차장은 해병대 수사단이 기록을 경찰에 이첩한 직후 김계환 해병대사령관과 통화한 사실이 밝혀져 외압 관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신범철 국방부 전 차관도 김 사령관에게 장관지시를 따르라고 종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고 한다.

임종득 전 차장은 경북 영주·영양·봉화에, 신범철 전 차관은 충남 천안갑에 각각 여당의 단수공천을 받고 국회의원 에비후보에 등록했다. 의혹이 해소 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사로 임명하고, 여당 후보로 결정한 것이 과연 타당한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야당이 가만히 있을 리 있겠는가.? 민주당은 연일 대통령이 법죄자를 도피시켰다고 맹공을 퍼붓고 있다. 대통령이 외압의 몸통이라고 주장하고 호주대사가 아니라 도피 대사라고 공개적으로 조롱하고 있다.

민주당과 시민단체가 법무부장관과 대통령을 직권남용과 범인 도피 은닉죄 등으로 고발하는가 하면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외교부장관과 법무부장관에 대하여 탄핵을 발의할 계획이라고 엄포를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고발당하여 처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이로 인하여 민심이 이탈하여 정부와 여당에 등을 돌릴까 걱정이고 두려운 것이다.

나는 이번 사태를 보면서 정부에서 너무 성급하게 무리수를 두었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속뜻은 잘 모르지만 국민 눈높이 에서 봤을 때 선거를 한달 정도 남겨놓고 꼭 이렇게 해야 할 긴급한 사정이라도 있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꼭 이종섭이 필요하다면 선거가 끝난 후에 하던지 수사가 마무리되어 혐의를 벗은 후에 할 수는 없었을까? 문재인 전 대통령이 조국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하면서 청문회에서 밝혀진 범죄혐의로 여론이 들끓고 있음에도 ”범죄혐의가 있다고 해서 장관 임명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쁜 선례가 될 것 같아 그대로 임명한다”고 공언하고 기어이 장관 임명을 강행하여 비난 받은 것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이번 이종섭 전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이 문 전 대통령의 조국에 대한 장관 임명과 무엇이 다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구태여 범죄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 말고 적임자가 정말 없었단 말인가?

수습할 길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도 이 대사가 앞으로도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이며 필요하면 언제든지 오겠다고 약속했다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이 대사 스스로 하루라도 빨리 귀국하여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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