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순 커피]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커피들

튀르키예의 제즈베

커피가 인류에게 얼마나 소중한 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을 보면 알 수 있다. 등재 명칭에 ‘커피’가 포함된 것이 5점이고, 커피와 관련이 있는 장소와 물품 등이 15점에 달한다. 모두 20점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커피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다. 2022년 등재 기준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167개국의 1157점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인류가 힘을 합쳐 보전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서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자산이다.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인류의 삶과 영감의 원천이라는 점에서, 여기에 등재된 ‘커피의 가치’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2022년 11월 우리나라의 탈춤이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선정됐을 때, 커피애호가들은 하나 더 좋은 소식을 접했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자잔주에 카울라니 커피가 나는 밭의 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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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의 커피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오른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카울라니 커피 원두 재배 지식 및 풍습’(Knowledge and practices related to cultivating Khawlani coffee beans)이 인류가 보존할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인 것으로 인정을 받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커피 생산량은 매우 적다. 중동뉴스매체 자우야(ZAWYA)에 따르면 2022년 생산량이 300톤 정도이다. 세계 최대 생산국인 브라질이 300만 톤, 콜롬비아 75만 톤, 중국 11만 톤, 필리핀 7만 톤인 점과 비교하면 분량으로 내세울 것은 사실 없다. 그러나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사우디 정부는 국부펀드를 투입해 커피회사(Saudi Coffee)를 설립하고 앞으로 10년 동안 3억 200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석유 의존을 줄이고 경제를 다각화하기 위한 조치이다. 사우디 정부의 1차 목표는 연간 커피생산량을 2500톤으로 늘리는 것이다.

사우디 커피열매를 건조하는 카울란 부족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 반도 중에서 가장 큰 아라비아반도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국토면적이 한반도의 10배에 달한다. 사막이 대부분이지만 남쪽, 예멘과 접한 곳은 커피나무를 키울 수 있다. 카울라니 커피는 남부 산악지역인 자잔(Jazan), 알바하(Al Bahah), 아세르(Aseer)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가파른 산악경사지에 2500여 개의 작은 커피농장들이 퍼져 있다.

사우디의 13개 주 가운데 홍해에 접한 자잔주의 카울란 족이 커피농사를 짓는다. 국토가 예멘과 나누는 바람에 국가가 갈렸을 뿐 같은 핏줄이다. 예멘에 사는 카울란 족이 생산하면 예멘 커피, 사우디에 사는 카울란 족이 재배하면 사우디 커피가 된다. 카울란 족은 기원전부터 자잔주 일대에 살면서 독특한 고대 문화를 계승하고 있다. 아랍어가 아니라 셈족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이들은 고산지대를 계단형으로 만들어 농사를 짓는 기술이 뛰어나다. 계단형 논밭에 커피나무를 번식시키고 재배하는 문화와 지식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한 것이다.

커피 재배지가 세계유산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쿠바의 시에라 마에스트라(Sierra Maestra)의 작은 언덕이 ‘쿠바 남동부 최초 커피 재배지 고고 경관’(Archaeological Landscape of the First Coffee Plantations in the South-East of Cuba)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되면서 부터이다. 이곳은 19세기 카리브 해의 섬들과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경제-사회적 역사에 대해 많은 실마리를 제공한다. 특히 커피 재배 농장의 유적들은 거친 토양을 개척하여 커피를 경작한 선구적이며 독특한 농법을 보여 준다.

이어 2011년에는 콜롬비아의 안데스 산맥 서부와 중앙 구릉에 있는 18개의 도시 지역을 포함한 6곳의 농경지가 ‘콜롬비아 커피 문화경관’(Coffee Cultural Landscape of Colombia)으로 세계유산에 올랐다. 칼다스(Caldas), 킨디오(Quindio), 리사랄다(Risaralda), 바예델카우카(Valle del Cauca) 등 4개 주에 걸쳐 있는 지역으로 2만 4000여개의 소규모 커피농장들이 펼쳐져 있다. 정글을 이루는 숲과 험준한 산악 환경에 조성된 작은 커피 밭을 일궈온 100년 전통의 문화와 지식이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이곳에서는 지금도 밧줄을 타고 계곡을 내려가 커피를 수확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커피를 생산하는 나라만이 세계문화유산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16세기 커피 음용 문화를 간직한 ‘튀르키예식 커피 문화와 전통’(Turkish coffee culture and tradition)이 2013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500여년간 이어지고 있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커피추출방법으로 꼽히는 제즈베를 즐기는 문화와 관혼상제에 커피가 활용되는 전통이 문화뿐 아니라 예술적인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5년에는 아랍에미리트연합국,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카타르 등 4개국의 커피문화가 ‘너그러움의 상징, 아랍커피’(Arabic coffee, a symbol of generosity)라는 명칭으로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올랐다. 아랍에서 커피는 곧 ‘환대’를 의미한다. 커피를 나눠 마시는 것을 마음 속 너그러움을 표현하는 의식으로 받아들인다. 모임의 공간에서 공동체의 지도자인 셰이크(sheikh)나 어른들이 직접 아랍커피를 추출해 나누면서 상대를 배려하는 평화스러운 풍습을 젊은 세대에 전하는 것을 유네스코는 인류가 지켜야 할 유산으로 평가했다.

명칭에 ‘커피’가 들어있지 않지만, 커피와 관련 있는 15점의 세계유산들도 사연이 이채롭다. 자메이카의 ‘블루 앤 존 크로우산’(Blue and John Crow Mountains, 2015년)은 삼림지대로 자연경관이 뛰어나고 다양한 생물종의 서식지로 유명하다. 식민지 시대에 탈출한 노예들의 피난처였다는 점에서 세계유산에 올랐는데, 당시 노예들은 커피 밭에 끌려가 혹독한 일을 겪어야 했다. 세계적 명성을 지닌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커피가 이 산맥의 중턱에 펼쳐져 있다.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슈파이허슈타트와 칠레하우스가 있는 콘토어하우스 지구’(Speicherstadt and Kontorhaus District with Chilehaus, 2015년)는 20세기 표현주의 건축 양식인 콘토어하우스 건물들이 밀집해 있다. 이곳의 저장 창고들은 한쪽면은 물가에 닿고 다른 쪽은 육지의 도로를 접하고 있어 배에서 물건을 내리고 싣는데 편리했다. 이들 창고에 주로 저장하였던 무역 품목이 커피와 차, 향신료 등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출현한 국제양식의 대표적 건축물로서 산업화 시대를 상징하는 네덜란드의 판넬레 공장(Van Nelle Factory, 2014년)도 커피와 차를 가공했던 곳이다.

코스타리카의 소달구지

코스타리카의 ‘목동과 소달구지 전통’(Oxherding and oxcart traditions, 2008년)은 특히 커피애호가들의 사랑을 받는다. 살이 없는 바퀴를 단 소달구지 카레타(carreta)는 19세기 중엽부터 계곡에서 산을 넘어 태평양 연안까지 커피콩을 운반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지금도 카레타를 유일한 운반수단으로 여기는 오지의 커피 밭이 있다.
이란의 ‘구연 극예술, 나칼리’(Naqqāli, Iranian dramatic story-telling, 2011년)는 페르시아 제국부터 전해졌는데, ‘나칼’이라고 불리는 인물이 운문 또는 산문의 형태로 설화나 민족 서사시 등을 연기하듯 구술하며, 몸동작이나 악기 연주를 동반하기도 한다. 이란에서 가장 오래된 연극으로서, 주로 커피하우스나 유목민들의 텐트 등에서 이루어졌다. 1527년 초기 식민도시로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이 600여채 남아 있는 베네수엘라의 코로 항구(Coro and its Port, 1993년)도 커피 밭에 끌려갔던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그들의 피땀이 서린 커피 생두를 서구로 실어 나르던 곳이다.

이 밖에도 칠레의 ‘움베르스톤과 산타 라우라 초석 작업장’(2005), 튀르키예의 ‘대중 이야기꾼 메다흐의 기예’(2008)와 ‘전통적인 소흐베트 모임’(2010), 우간다의 ‘르웬조리 국립공원’(1994), 파푸아뉴기니의 ‘쿠크 초기 농경지’(2008), 에티오피아의 ‘콘소 문화경관’(2011)과 ‘하라르 요새타운, 주골’(2006), 쿠바의 ‘비날레스 계곡’(1999)과 ‘시엔푸에고스 역사지구’(2005), 멕시코의 ‘모렐리아 역사지구’(1991), 바하마의 ‘파쿠하슨의 일지’(2009) 등이 있다.

한국도 커피분야에서 미래의 세계유산을 키워갈 수 있다. 비닐하우스에서 생산하는 ‘K커피’는 세계적으로 희귀하다. 1990년대부터 비닐하우스 커피를 재배했으니, 그 역사도 사반세기를 넘었다. 커피가 세계적으로 232조원에 달하는 거대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세계인의 음료로 급성장한 커피를 문화적으로 더 빛냄으로써 국가와 겨레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다. K커피를 K컬처에서 빼놓을 수 없다. 우리의 문화 속에서 가치를 담은 K커피를 발굴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장기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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