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만년에 잘 살면 인생 성공한 거라오”
노년을 혼자 방에서만 지내다가 요양원으로 옮겨 인생을 마감한 분이 있다. 목수이자 가죽세공 기술도 가지고 있던 그가 헛되이 살다 가는게 안타까웠다.
공대를 졸업하고 건설회사에서 근무하던 아는 사람이 어느 날 회사를 그만두고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에 그가 집을 나가 노숙자가 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을지로 지하철역 입구에서 그를 보았다는 소식을 듣고 형이 찾아가자 그는 소리 없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면 외로움의 노예가 되고, 절망 속에서 나태하고 게으른 존재가 될 수 있다. 실패하거나 늙었다고 절망하지 말고 나도 뭔가 할 수 있다고 마음을 리모델링을 해서 새로운 나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실버타운의 식당에서 305호에 사는 80대 노인과 밥을 먹으면서 얘기를 나누었다. 항상 생글생글 웃는 작달막한 노인이었다. 미국에서 50여년 살다가 연어가 태어난 곳으로 와서 알을 낳고 삶을 마감하듯이 고향인 한국으로 죽으러 돌아왔다고 했다. 평생 약을 연구하면서 미국에서 교수생활을 해왔다고 한다. 내가 실버타운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느냐고 물었다.
“20만원 정도 하는 중고 키보드를 사서 트롯까지 여러 장르의 곡을 연습하고 있어요. 반주는 기타 코드를 이용하구요. 작곡까지 공부하고 싶은데 작곡을 배우려면 춘천의 음악대학까지 가야 할 것 같아요.”
팔십 넘은 나이에도 공부에 대한 의욕이 대단하다. 그가 덧붙였다.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키보드와 컴퓨터를 나란히 배치했어요. 음악연습이 끝나면 다음에는 한국의 속담을 영어로 소개하는 글을 써요. 오후에 산책할 때 큰 봉지를 들고 해변의 쓰레기를 주우면 좋을 것 같아요.”
살 줄 아는 사람은 시간을 정지시키는 것 같다.
부장판사를 하다가 퇴직한 친구가 있다. 수십년 검은 법복 속에 갇혀 있다 보니 마음도 굳어있는 것 같았다.
그가 퇴직 무렵 앞으로는 반바지를 입고 거리를 다니다 짬뽕을 사 먹고 옷에 국물자국도 낼 수 있는 자연인으로 돌아와야 하지 않느냐고 내가 조언을 한 적이 있다.
그는 그렇게 했다가 데리고 있던 부하 판사들이라도 보면 어떻게 하느냐면서 체면이 손상되는 걸 두려워했다. 그러던 그가 어느 순간 변신했다. 그는 오카리나를 배우기 시작했다. 소리가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옷장 속을 득음바위로 삼아 연습한다고 했다. 워낙 집념이 강한 친구라 그의 연주는 금세 궤도에 올랐다. 그는 오카리나 연주단을 조직했다. 얼마 후 그는 노숙자들이 모인 거리에서 연주를 했다. 실버극장이나 내가 있는 실버타운에 와서도 공연했다. 오라는 곳은 언제 어디라도 가겠다고 했다. 삐에로 같은 동그란 모자를 쓰고 화사한 색깔의 쟈켓을 입고 손으로 발로 박자를 맞추며 무대 위에서 몸을 흔들며 연주하는 그의 모습은 근엄한 재판장과는 전혀 다른 변신이었다.
법원장을 하다가 퇴직한 또 다른 친구가 있다. 그는 색소폰을 배우고 드럼을 배우고 활쏘기를 배웠다. 그러다가 봉사쪽으로 방향을 돌리는 것 같았다. 그는 무료급식소로 가서 배달을 맡았다. 몸이 아파 도시락을 가지러 오기 힘든 쪽방촌이나 고시원의 장애인이나 노인들에게 직접 전해줬다. 그는 가난이 가득 들어찬 창문도 없는 한 평의 쪽방이나 고시원 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잔한 모습을 내게 얘기해 주었다. 한번은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가난한 아이의 성적을 살펴 봤더니 평점 4.5만점에 4.3이더라구. 그래서 얼굴 한번 보지 않고 몰래 2천만원을 송금했지.”
그는 판사에서 천사로 승진한 것 같았다. 어제는 오랫만에 서울로 올라와 그 친구와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물었다.
“요새도 도시락 배달하냐?”
“늙었는지 높은 지역에 있는 달동네 쪽방으로 배달하기 힘들어. 요즈음은 무료급식소 안에서 밥과 국을 퍼주고 있어.”
“변호사 일은?”
“동네 변호사 일을 하고 있어. 자잘구레한 서류 그냥 써주는 대서방 역할을 하고 있어.”
그렇게들 노년을 리모델링 해서 사는 것도 멋지고 품위있게 늙어가는 것은 아닐까.
판사에서 천사로…….멋진 승진 진정으로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