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 칼럼] 수해 관련 해병대 사단장·행복청장 누가 비호하나
대통령실이 지난달 발생한 수해 관련 책임자들에 대한 문책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태도를 보여 의구심이 커지는 모양새다. 호우 실종자 수색과정에서 발생한 해병대 사병 사망사고 책임자 축소 논란에 관여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고, 오송 지하차도 참사 책임으로 해임이 건의된 이상래 행복청장에 대해서도 열흘이 지나도록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정치권에선 이런 의혹의 중심에 윤석열 대통령의 뜻이 작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경북 예천에서 호우 실종자를 찾다 순직한 고 채수근 상병 사건의 ‘책임 축소’ 논란은 대통령실 개입 의혹으로 비화하는 양상이다. 이 사건은 당초 해병대 수사단장이 조사결과를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해 결재를 받았던 것이 갑자기 뒤집힌 게 발단이었다. 사고 책임자로 임성근 사단장 등 해병대 1사단 8명에게 과실치사 등의 혐의를 적용해 경찰에 이첩하기로 했으나 돌연 이 장관이 보류지시를 내린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 대통령실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해병대 수사단장은 사령부 지시에 따라 장관 결재를 마친 지난달 30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에 자료를 제출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인 31일 이 장관으로부터 경찰 이첩 보류 지시가 내려왔고, 당초 예정됐던 언론브리핑도 취소됐다. 이 장관은 전날 조사결과를 보고받고는 “수고했다”는 말까지 하며 격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안팎에선 이 장관이 하루 만에 자신이 결재한 수사 결과를 사실상 뭉개는 쪽으로 태도를 바꾼데는 대통령실의 압박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가 나온다. 특히 군내 수사를 총괄하는 국방부 법무관리실에서 임성근 사단장 등의 혐의를 삭제하라고 암시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사단장까지 사법처리 대상에 포함될 경우 사태가 지나치게 확대될 가능성을 대통령실이 우려하지 않았겠느냐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달 수해 사태 때 우크라이나 방문 등으로 윤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컸던 것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려운 대목이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와 관련해 이상래 행복청장 해임 건의가 오리무중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앞서 지난달 31일 한덕수 국무총리는 윤 대통령에게 지하차도 참사 책임을 물어 이 청장에 대한 인사조치를 건의했다. 그러나 당시 보고를 받은 윤 대통령은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의아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한 총리의 건의는 국무조정실의 대규모 감찰에 따른 것으로 대통령으로서는 즉시 수용하는 게 마땅하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여태껏 후속 조치가 없다는 건 윤 대통령이 해임 건의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비쳐진다.
이와 관련해 이 청장이 오송 지하차도 참사 전날 서울에서 대통령실 국토교통비서관실 관계자들과 만나 만찬을 가진 사실이 새로 드러났다. 당시 충북도에는 재난 대응 최고등급이 발령됐고, “미호천교 임시 제방이 무너질 것 같다”는 신고가 들어올 만큼 강물 범람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이런 시기에 근무지를 벗어난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대통령실로서도 당시 이 청장과 저녁을 함께 한 사람들이 대통령실 비서관 등 직원들이라는 점에서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정치권에선 이 청장이 윤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후배인데다 지난 대선 때 윤석열 캠프에서 활약한 인연이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이 청장은 대학 동기인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도 막역한 사이로 대통령직인수위에서 원 장관과 함께 기획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이 청장은 참사 후에도 아무 제약없이 정상적으로 출근해 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윤 대통령은 주요 사건에서 실무직에만 책임을 묻고 윗선의 관리감독 책임에는 관대한 모습을 보였다. 이번 해병대 1사단장과 행복청장의 경우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될 거라는 우려가 높다. 채 상병 사건을 조사하다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된 해병대 수사단장은 9일 “윤 대통령의 엄정하고 철저하게 수사하라는 지시를 적극 따랐을뿐”이라고 항변했다. 직위를 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책임을 묻는 투명하고 신속한 조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