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 칼럼] 공수처가 달라졌다

공수처 현판과 김진욱 처장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최근 윤석열 정부에 불리한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어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감사원 직권남용 수사에 이어 해병대 수사 외압 사건, 김학의 성접대 무혐의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동시다발적으로 칼날을 겨누고 있다. 공수처 안팎에선 내년 1월 김진욱 공수처장의 임기만료를 앞두고 성과를 내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여권에서도 이런 기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가장 주목되는 건 공수처의 이례적인 감사원 압수수색이다.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에 대한 감사원의 ‘표적감사’ 의혹이 주요 수사 대상인데, 투입된 인력은 검사∙수사관 등 40여 명으로 공수처 수사인력의 3분의 2를 넘을 정도로 대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 내부에서는 그간 검찰의 압수수색이 영장을 제시하고 자료를 제출받는 게 일반적이었다는 점에서 전격적인 압수수색에 술렁이고 있다고 한다. 수사 대상자도 10여명에 달해 최재해 감사원장과 유병호 사무총장은 물론이고 국장, 과장까지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압수수색 영장에는 감사원이 지난해 6월 실시한 ‘서해공무원 피살사건’이 포함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감사원이 서해 사건 감사를 ‘상시 공직감찰’로 분류해 실시했는데 위법 소지가 있다고 공수처가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감사위원회에서 주요 감사계획을 사전에 의결한다’는 감사원법을 위반한 직권남용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지난해 10월 감사 결과를 토대로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등 20명에 대해 검찰 수사를 요청했고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공수처는 해병대 사병 수사 외압 사건에서도 발빠르게 수사에 나서는 모습이다. 공수처는 지난 8일 숨진 해병대 채모 상병의 사망 원인 수사과정에서 외압 의혹을 제기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을 고발인 신분으로 조사했다. 박 전 단장이 국방부 관련자들을 공수처에 고발한지 2주만에 신속하게 이뤄졌다. 이 사건은 윤석열 대통령의 수사 외압 의혹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건이어서 공수처 수사가 어디까지 진행될지 관심이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을 무혐의처분했던 검찰을 겨냥한 수사도 눈길을 끈다. 공수처는 지난 5일 서울중앙지검에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 김 전 차관 사건의 과거 수사기록을 확보했는데, 검찰을 정조준한 것으로 해석된다. 박근혜 정권 때 김 전 차관을 대놓고 봐준 검사들을 처벌한다는 차원에서도 ‘검찰 카르텔’ 해체라는 공수처의 존재 이유에 부합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수처는 2021년 ‘살아있는 권력’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온 검찰을 보완하기 위해 출범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비판이 많았다. 특히 윤석열 정부 들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눈치를 본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공수처의 행보는 다양한 해석을 낳는다. 법조계에선 김진욱 공수처장의 임기만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공수처가 유의미한 결과를 거두려 하는 것이란 관측이 많다. 이와 관련해 공수처 내부에서도 “이젠 제대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공수처가 여러 정치적 사건의 수사에서 제대로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고질적인 인력과 자원 부족이 한계다. 현재 처장 등을 제외하고 실질적으로 수사할 수 있는 검사는 19명으로 정원(25명)에 크게 모자란다.

김진욱 처장 후임을 놓고도 상당한 난관이 예상된다. 정부여당의 공수처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고려할 때 윤 대통령이 정권에 우호적인 인사를 임명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공수처의 향후 움직임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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