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 칼럼] 이재명 대표가 사는 길
더불어민주당 ‘공천 파동’을 보는 이재명 대표의 시각은 낙관적이다. 탈당자 속출에 “입당도 자유, 탈당도 자유”라고 한 것은 “나갈 테면 나가라”는 말이나 진배없다. 바짓가랑이라도 잡아야 할 판에 소금을 끼얹는 것은 공천을 책임진 당 대표의 자세가 아니다. 가뜩이나 위태로운 ‘이재명 리더십’에 생채기만 커질 뿐이다.
이 대표는 머잖아 반전의 시간이 올 걸로 굳게 믿는 듯하다. 공천 잡음을 빨리 봉합하고 ‘정권심판론’에 매진하면 떨어진 지지율을 만회할 것으로 내다본다고 한다. 당장은 시끄럽지만 국민이 쇄신 의지를 평가해줄 거라는 기대도 하는 모양이다. 다분히 주관적이고 안이한 생각이다.
강력한 상대와 맞서려면 내부의 단합은 필수조건이다. 친명과 비명이 갈라서고, ‘명문대전’으로 상처투성이가 된 몸으로 얼마나 힘을 쓸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공정성 시비로 떠들썩한 공천을 쇄신으로 봐달라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지금은 정권심판론보다 야당심판론을 더 걱정해야 할 때 아닌가.
유혈이 낭자한 민주당 공천을 보면 이 대표의 정무적 감각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회의적이다. 원래 공천이라는 게 요란스럽기 마련이지만 이번처럼 말많고 탈많은 공천은 본 적이 드물다. 전가의 보도처럼 ‘시스템공천’을 강조하는데 하위 20% 평가에 왜 비명계가 많이 포함됐는지, 문제의 여론조사 업체는 왜 포함됐는지, ‘밀실 공천’ 얘기는 왜 나오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애초 공천의 방향과 목표, 전략이 있기는 했는지 의구심이 든다.
이 대표 판단력이 흐려진 것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압승으로 인한 과도한 자신감일 것이다. 정권심판론이 워낙 강고하니 공천은 통과의례 정도로 여긴 듯싶다. 물갈이만 많이 하면 과정이 다소 거칠어도 여론의 호응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 과정에서 잠재적 경쟁자와 반대자를 쳐내고 내사람을 심어도 별 문제 없다고 여겼을 수 있다. 총선 승리를 기정사실화하고 당권과 대선 도전까지 염두에 둔 구상일 것이다.
이 대표가 착각하는 게 있다. 아무리 자기 사람을 많이 심어 의원을 만든다 해도 시한부라는 점이다. 지금의 친명계 상당수는 얼마 전까지 친문계였고, 그 전에는 친노세력이었다. 이 대표의 정치적 위상이 약해지면 친명이 와해되는 건 순식간이다. 총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하면 이재명 죽이기에 가장 앞장 설 사람들이 ‘친명 호소인’들일지 모른다. 그러니 비명, 친문 솎아내고 민주당을 ‘이재명 사당화’하겠다는 생각은 얄팍한 계산에 불과하다.
진보 지지층은 명분을 중시한다. 보수 진영은 결집력이 강해 웬만한 흠결에도 지지를 철회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가치와 대의를 우선시하는 진보 진영은 지지정당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다고 여기면 종종 지지를 철회하곤 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에 대한 불만으로 적잖은 지지층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나. 이번에도 그러지 않으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이 대표의 목표는 3년 뒤의 대선이 아니라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총선 승리여야 한다. 총선에서 실패하면 대권은 물거품이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패배의 청구서는 가혹할 수밖에 없다. 지지자들조차 등을 돌리고 돌을 던질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이 대표가 받고 있는 여러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치인 이재명’뿐 아니라 ‘개인 이재명’에게도 상상하고 싶지 않은 광경일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후 주로 자신을 위한 길을 걸어왔다.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보궐선거에 출마해 배지를 달았고, 당 대표에 출마해 당권을 쥐었다. 그에게 씌워진 사법 리스크를 의식한 행동으로 해석됐다. 이젠 자신보다는 당과 지지자들을 위해 행동해야 할때가 됐다. 이 대표의 헌신과 자기희생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검찰에 출두하면서 “국민과 역사가 명한 길을 흔들림 없이 가겠다”고 했다. 이 대표가 총선에서 패배하면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과오로 기록될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민주주의 퇴행을 막지 못하고 되레 돕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재명도 살고 민주주의도 사는 길을 택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