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9번째 날’…나치시대 “양심과 신앙 어떻게 지켜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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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시대, 유럽 신부들의 고난과 박해를 그린 수작
“과연 양심과 신앙, 종교는 무엇?” 날 선 질문을 던져
생지옥 다하우에서 휴가를 받았다. 나치 치하 룩셈부르크가 배경이다. 다하우에서 끔찍한 날을 보낸 장 베르나드 신부의 실화를 기초로 했다. 신부 바라크 2호 487을 영화한 작품. 두 주인공의 열연이 영화의 백미다. 앙리 크레머 신부 역의 울리히 마트데스. 겝하르트 나치 장교로 열연한 오거스트 딜.
울리히는 나치 선전상 괴펠스 역을 실감나게 한 독일의 저명 배우다. 오거스트 역시 1999년 독일 영화제 주인공상 수상에 빛나는 명우다. 영어 불어에도 능통해 청년 마르크스 역을 맡아 망명지인 파리와 런던을 경유하며 3개 국어를 구사했다. 묘하게 정웅인을 닮았다는 말을 듣는다. 나치 시대 배역들을 실감나게 소화했다.
울리히가 분한 크레머 신부는 나치 인종차별에 저항하다 체포됐다. 다하우 수용소로 보내져 수형생활을 한다. 눈을 의심케 하는 잔혹한 장면과 묘사들로 다하우는 그냥 생지옥이다. 1942년 1월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9일간 외출이 주어졌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지옥에서 벗어나면서 영화는 반전한다. 잔혹한 장면 묘사도 자취를 감춘다. 모친 임종조차 지키지 못한 크레머. 그에게 어머니 묘소를 둘러보게… 그것은 구실이었다. 속셈은 따로 있었다.
양심적인 크레머와 게슈타포 부대장 간 갈등이 불꽃 튀기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가톨릭 서품과 직전의 부제까지 마쳐 교리에 밝은 편이다. 크레머는 호주 원주민으로 신을 증명하는 내용의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둘의 대화 도중 부메랑 얘기가 나온다. “부메랑은 철학적인 스포츠게임이죠. 던진 것은 던진 사람에게 돌아온다는…”(크레머)
신학박사 신부와 교리에 밝은 친위대 장교 간 심리전쟁이 눈길을 붙든다. 신부들에게 저지른 끔찍한 만행을 고발하는 장면들도 영화 전편에 흐른다. 신부 수천 명을 가둔 신부 바라크의 아수라 지옥을 생생하게 고발했다. 강제 노역과 동물보다 못한 대우, 온갖 종교적 모욕과 폭력에 시달린 크레머다. 그래도 그는 양심을 지키려, 정신 줄을 놓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쓴다. 양심을 저버린 듯만 해도, 크레머는 죄책감으로 꿈속에도 괴로워했다.
오거스트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종교를 악용하는 뱀 같은 요설이 현란하게 빛을 발한다. 그 결과는 얼마나 무서운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웅변한다. 단순한 인간성의 파탄, 그런 정도는 훌쩍 뛰어넘는 듯하다. 오거스트 역시 룩셈부르크의 대주교를 회유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그 임무를 성공시키지 못하면 강제수용수로 보내겠다는 압박이었다.
그래서 신학적 지식까지 총동원하다시피 크레머를 설득하려 애쓴다. 유다의 논리를 교묘하게 옹호해본다. “유다가 예수의 제자들 중 가장 경건했다. 유다 없이는 그리스도가 존재할 수 없다.” 오거스트는 그에게 “유다가 돼라!”고 거칠게 압박했다. 오거스트가 분한 겝하르트 게슈타포 부대장은 사제 서품 직전의 부제까지 지낸 바 있다. 그래선지 크래머와 논쟁하던 중 한때 고뇌를 슬쩍 내비치기도 한다.
교리와 현실이 얽히고설켜 숨 막히게 돌아가는 장면들이 압권이다. 생지옥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왔건만 도저히 풀 수 없는 난제를…크레머에게 면죄부가 주어진 게 아니었다. 오거스트의 호통을 들은 귀휴 3일째 알아챘다. 나치에 협조하지 않는 소신파 주교를 설득하라는 힘든 임무가 주어졌다.
크레머에게만 힘든 난제가 주어진 게 아니다. 게슈타포 부대장인 오거스트도 기로에 섰다. 크레머가 실해하면 그도 나락에 떨어진다. 친위대 부대장까지 오른 출세 길도 막힌다. 막장인 동부 수용소장으로 쫓겨갈 판이었다.
가톨릭 신학교를 다녔던 오거스트는 신학논쟁으로 설득해보려 했다. 그러나 소신이 굳건한 크레머였다. 설득이 안 먹히자, 신부들의 생명까지 겁박했다. 크레머는 양심과 현실 사이에서 심각하게 갈등한다. 끝없이 자행되는 고문과 모욕, 폭력과 죽음 속에도 잃지 않은 종교적 양심과 신념. 그것을 과연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스포일링을 더하진 않겠다. 두 주인공의 열연은 참으로 돋보였다. 영화 끝무렵, 크레머에게 권총을 빼어든 오거스트의 창백해진 표정. 명연기였다. 뒤통수를 겨눈 피스톨을 뒤로 하고 걸어나오는 크레머 역의 울리히. 수용소에서 굶주린 역을 맡다 보니… 몇끼나 건너뛰고 식단 조절을 했을까?
앞서 크레머의 면담 요청을 거부하던 주교. 그가 영화 후반부에 크레머와 만난다. 두 사람 간 오간 대화 장면도 압권이다. 특히 크레머가 동료 신부들의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을 주교에게 고하는 장면은, 그 대사는 주옥같다. “거기에는 하느님이 존재하시지 않습니다. 그곳에 있는 십자가는 비유의 십자가가 아니라 실제 상황입니다.” 크레머의 두 빰은 영화에서 깊이 패였다.
크레머는 죽음을 무릅쓰고 신념과 양심을 지킬 건가? 동료 신부들 목숨까지 위협하는 악의 유혹에 지고 말 것인가? 2004년 독일에서 제작됐다.
폴커 슐렌도르프 감독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