윔블던테니스 준결승 진출 우크라이나 스비톨리나 “아이와 조국에 승리 바치고파”

세계 1위 이가 시비옹테크를 꺾고 윔블던 4강에 오른 엘리나 스비톨리나. <로이터=연합뉴스>

윔블던 코트에 뜬 별 전쟁의 폐허, 포연 속에 피어난 기적이다. 엘리나 스비톨리나가 12일 윔블던 여자 단식 8강에서 세계 정상급 이가 시비옹테크를 꺾었다. 관중들은 승리를 거머쥔 후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그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작년 10월 딸을 출산한 뒤 올 4월 코트로 복귀, 4개월 만에 윔블던 준결승전에 오른 거다. 조국 우크라이나에는 여전히 포성이 들린다. 세계 76위가 12일 영국 런던의 윔블던 테니스코트에서 세계 1위를 2시간 51분 혈투 끝에 눌렀다.

세트스코어 2대1의 극적인 드라마를 쓰고야 말았다. 4강에 진출한 그가 우승컵까지 거머쥐는 모습을 그려본다. 시비옹테크의 마지막 샷이 네트에 걸리며 승리가 확정되자 별로 떠오른 스비톨리나는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세계 1위를 꺾고, 승리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해서였다. 윔블던 4강은 2019년 이후 4년 만이다. 6년 전, 세계 3위까지 오른 때도 있긴 했다.

프랑스 국적의 테니스 선수 가엘 몽피스와 2021년 7월 결혼해 작년 10월 딸을 낳았다. 출산 후 지난 4월에야 코트로 돌아왔다. 랭킹이 낮아 이번 대회 출전 자격조차 없었다. 특별초청, 와일드카드(wild card)로 코트에 섰다. 극적인 이변의 연속이었다.

스비톨리나는 승승장구했다. 특히 8일 16강에 오르면서 가수 해리 스타일스의 콘서트 티켓을 넘겨주기도 했다. 16강에 오를 일이 없을 것으로 여겨 티켓을 예매해 놓았다. 뜻밖의 선전으로 승리를 낚아채는 바람에 포기했던 거다.

8강까지 극적인 승리를 거머쥐었다. 상대는 세계 최정상급 시비옹테크. 투어 37연승(작년)을 달리고 최근 4년 간 메이저 대회 4차례(프랑스 3회·US오픈 1회)를 제패했다. ‘이가 시대’라는 평가를 받는 확고부동의 세계 1위였다. 그러나 스비톨리나는 악착같았다.

물 샐 틈 없는 수비력으로 공을 받아냈다. 허를 찌르는 기습으로 기적의 승리를 낚았다. “전쟁이 나를 정신적으로 더 강하게 만들었다. 코트 위에서 어려움이 있더라도 더는 재앙처럼 받아들이지 않는다. 살다 보면 더 힘든 일이 있다”(스비톨리나)

승리 소감으로 “정상에 오르고 싶다”고 했다. “아이가 생기고 전쟁을 겪으면서 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더 허비할 시간이 없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작은 행복을 선사할 수 있어 기쁘다”고도 했다. 우크라이나 오데사가 고향이다. ‘흑해의 진주’로 불리며 러시아군 주요 폭격 타깃 중 한 곳이다.

조국을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항의로 러시아나 벨라루스 선수들과는 악수조차 거부했다. 조국의 피해 복구를 위해 모금 운동을 벌여 수십만 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패자 시비옹테크도 멋졌다. “스비톨리나는 당당하고 배짱 있게 했다. 계속 응원하겠다”(시비옹테크)

그는 우크라이나 국기 색을 상징하는 리본을 모자에 달고 코트에 섰다. 스비톨리나는 제시카 페굴라(미국·4위)를 2대1로 누른 마르케타 본드로우쇼바(체코·42위)와 결승을 다툰다. 스비톨리나는 아직 메이저 대회 결승에 오른 적이 한번도 없다. 전쟁의 참화를 겪은 우크라이나를 위해, 그의 승리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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