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인간의 기본값, 사랑의 초기 설정값
열왕기상 1장
“그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라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왕상 1:6)
아도니야는 다윗의 넷째 아들입니다. 아버지가 한 번도 섭섭하게 한 일이 없는 아들입니다. 다윗은 아도니야를 정말 인격적으로 잘 대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아버지에게 서운했습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아버지는 왕위를 자신에게 물려줄 생각이 없어보이는 것입니다. 왕위 계승 서열을 따지면 자신이 1위였습니다. 게다가 평소에 아버지가 자신을 대하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기에 당연히 다음 왕은 자신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생각은 달랐던 것입니다.
상황을 파악한 아도니야의 태도가 돌변합니다. 요압과 아비아달과 모의해서 왕위 계승식을 진행해 버립니다. 이것은 명백한 반역이고 아버지에 대한 무시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반역에 요압이 가담했다는 사실입니다. 요압은 다윗 인생의 밑바닥 시절부터 함께 한 사람입니다. 생사를 넘나드는 고비와 부국강병의 영광의 순간도 같이 누렸습니다. 그는 늘 다윗 곁에 있었습니다.
그게 다 의리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치밀하게 계산된 의리였습니다. 늙은 다윗이 더 이상 자기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계산이 끝난 요압은 아도니야에게 줄을 섭니다.
단 한 번도 밉보인적 없고, 단 한번도 서운하게 한 적이 없어도 배신할 수 있는 게 사람입니다. 죽을 고생을 함께 한 친구는 물론이고 자식도 배신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죽기 직전까지 맛보았던 것은 배신의 쓴 잔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또 어땠습니까?
사람은 그럴 수 있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그러냐?’고 질문하지만, 인간이기에 그럴 수 있습니다. 인간은 에덴동산에서부터 그래왔습니다.
이 가능성을 잊지 말고 살아야겠습니다. 남들과 적당히 선 긋고 거리를 두고 방어적으로 살아야겠다는 게 아닙니다. 나도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언제나 그럴 수 있는 나를 사랑하사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놀라울 뿐입니다. 배신당할 각오까지가 하나님 사랑의 기본 설정값Default이라는 사실이 은혜이고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