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관학교 교육, ‘과학기술’이 무게중심 돼야

육사 해사 공사 등 3군 사관학교 체육대회 <연합뉴스 자료사진>

과거 지배계층을 지칭한 양반은 문반(文班 혹은 東班)과 무반(武班 혹은 西班)을 통칭하는 관직제도에서 유래되었다. 고려 경종 원년(976)에 실시된 전시과(田柴科)에서 문반과 무반을 처음으로 구분했다고 한다. 왕이 주관하는 조회에서 문신은 동쪽, 무신은 서쪽에 위치했기에 동신과 서신이라 일컫기도 하였다. 무반의 등용문인 무과시험에서는 개천에서 용이 나오기가 어려웠다. 무예를 연마하기 위해서는 군마, 병기 등 고가의 자산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관이 되기 위해서는 유복한 집안 출신이거나 혹은 부사관이 아니면 시험준비가 어려웠다. 문과를 준비하던 이순신 장군이 뒤늦게나마 무과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처가의 재력이 한몫을 했다.

오늘날 장교가 될 수 있는 길은 다양하지만, 장교 양성의 기준은 여전히 사관학교이다. 근대식 사관학교의 효시는 1701년 설립된 덴마크의 해군왕립사관학교이다. 포병과 공병 등 과학기술에 특화된 고가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서 설립되었다. 봉건사회가 무너진 후 값비싼 군사교육은 영주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아닌 자격을 갖춘 시민이 입학하는 ‘사관학교’의 역할이었다.

프랑스대혁명 이후 설치된 사관학교 교수진은 퓨리에, 라플라스 등 당대 최고의 과학자 혹은 수학자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나폴레옹시대를 여는데 과학기술로 무장한 프랑스 장교들의 활약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후 영국, 프로이센 등에서도 줄줄이 사관학교가 문을 열게 된다.

오늘날 美 웨스트포인트를 비롯한 서구식 사관학교 교육도 여전히 과학기술에 기반을 둔다. 현대전에서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전쟁에서의 과학기술 의존성은 더 심화될 것이다. 우리나라 육군사관학교도 1980년대 초반까지 고등학교 이과(理科) 출신을 중심으로 입학자를 선발하였다. 당연히 육사교육에서도 수학, 물리, 화학 등이 전통적으로 강조되어왔다.

과학기술과 사관학교의 관계가 이러할진대 오늘날 육사교육의 실태를 바라보면 많은 점이 안타깝다. 철저했던 과학기술 교육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문과 졸업자들의 입학이 허용되었지만, 이과 생도의 수가 절대적으로 많았다. 한편 오늘날 육사에서의 문/이과 생도 수에는 차이가 없다. 일선 고등학교 문/이과 졸업자 비율을 고려한다면 문과 생도를 상당히 많이 선발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문과 생도들이 이과 생도들보다 수학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교수 구성에서도 문제가 많다. 과거 육사에는 군과 사회에 과학기술로 기여한 교수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지금은 공학 교수의 숫자가 인문학 교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일선 대학의 교수 구성비를 고려하면 시대에 역행하고 있다.

과학기술 역차별 현상이 사관생도 수업이수 및 학습태도에서 문제로 불거지고 있다. 생도들이 전공을 정할 때면 외국어학과는 문전성시를 이룬다. 선택과목에서 과학기술은 생도들의 우선적 기피대상이다. 바쁘고 힘든 일과에서 상대적으로 어렵고 학습시간이 많이 요구되는 과학기술을 기피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경향이 과학기술 과목에서 한국전쟁사 등 어렵거나 시간과 노력이 상대적으로 많이 요구되는 타 분야 과목으로 전이되고 있다.

과학기술 교육의 문제가 육사교육 전체를 위협하는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대학교육 경험이 없는 육사교장이 문제를 인지할 때면 전역을 하거나 다른 부대로 떠나야 하기에 손을 쓸 겨를이 없다. 교수의 근간을 구성하는 육사 출신의 현역교수들이다. 이들은 폐쇄적 근무 환경으로 인해 문제에 함구할 수밖에 없다.

육군은 국방의 근간이다. 그러던 육군이 한 때 국방에서 소위 찬밥 신세로 전락한 적이 있었다. 당시 김용우 육군참모총장은 육군의 환골탈태를 위한 돌파구로 과학기술을 제시하였다. 당연한 것이었지만, 당시에는 혁신으로 인식되었던 시절이었다. 육군에서는 엄청난 변화가 시도되었으며, 이후 괄목할만한 성과와 발전이 있었다.

육군이 국가방위의 중심이 되고자 한다면 적을 압도할 수 있는 과학기술에 기반한 군사력을 갖추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육군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육사생도들이 과학기술적 소양을 충분히 갖추는 것은 당연하다. 다행히 최근에 사관학교 졸업자들 가운데 과학기술 특기가 부여된 장교 육성계획이 발표되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육사에서 이공계 대학원 설립이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사관학교의 역사, 설립취지, 미래 전장 등을 고려한다면 사관학교 교육의 무게중심이 과학기술에 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시금 균형을 복원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균형을 잃으면 침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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