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시설 재배치와 ‘군 사기’의 함수관계
위례신도시 대부분 군 주둔지…개발이익 기업과 지자체 ‘독차지’
흔히 군인은 늘 수의를 입고 복무한다고 한다. 전사한 군인에게 수의 대신 군복을 입힌 연유에서 나온 말이다. 평시에도 목숨을 걸고 국토방위의 신성한 사명을 감당하기에 군인 특유의 자부심을 함께 나타낼 때 곧잘 쓰는 표현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유와 평화를 누리는 모든 자들이 군인을 예우해야 하는 이유이다. 군인에 대한 예우는 군인이 부족한 근무환경과 가혹한 교육훈련 등을 이겨낼 수 있는 큰 힘의 원천이다.
한편 대다수 군인들이 모진 여건을 감내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울 수 없는 안타까움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들의 자녀들이다. 특히 군인 자녀이기에 그들이 감당해야 할 큰 짐 가운데 하나가 불비한 교육여건과 잦은 전학일 것이다.
2014년 경기도 파주에 한민고등학교가 개교하였다. ‘군인 자녀의 교육여건 개선을 위하여 설립하는 고등학교의 학생 모집 등에 관한 특례 규정’에 근거해 세워졌다. 당시 군인 자녀가 잦은 전학으로 인해 학교에서 소위 ‘왕따’를 당하면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안타까운 일들이 연이어 발생하였다.
부친이 군인이었던 대학교수들이 군인 자녀에 관한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뒤 한민고 설립을 제안했다고 한다.군인의 복무여건에서 군인가족의 생활환경을 분리할 수 없다. 생활환경에는 주거시설, 소득 등 외형적 자산 외에도 문화, 교육 등에 관한 무형적 자산이 포함된다. 군인가족의 생활환경에 대한 많은 개선이 있었지만, 무형적 생활환경을 생각하면 여전히 안타까운 현실이다. 늦은 감은 있지만 대통령 공약에 군사시설의 타운화 사업이 포함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군인 및 군인가족의 생활환경에 대한 무형적 자산을 고려하지 않은 대표적 부대이전 실패 사례가 위례신도시 사업이다. 금싸라기 위례지구에 주둔했던 육군종합행정학교, 특전사령부, 국군체육부대 등 많은 부대가 충북 영동, 경기 이천, 경북 문경 등으로 이전하였다. 군이 시설이전을 통해 얻은 외형적 자산에 대한 화폐가치는 위례신도시 부지의 화폐가치에 현저히 미치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군인 및 군인가족이 누렸던 교육, 문화 등에 관한 무형적 자산을 화폐가치로 환산하여 반영한 바가 없었다는 점이다. 조삼모사의 전형적 사례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군은 “낡은 시설을 최신 시설로 개선할 수 있었다”며 자화자찬 일색이었다. 공무원의 탁상공론과 군 수뇌부의 군사시설 관련 무지가 합쳐져 낳은 참사나 다름없었다.
이러한 실패사례의 또 다른 결정적 원인으로 기부대양여 사업이 갖는 근본적 한계를 들 수 있다. 이전 부지에서의 시설 소요는 종전 부지에 있는 기존 시설의 기능을 기준으로 한다. 이러한 현행 기준 하에서는 군사시설에 관한 무형적 가치 등의 반영이 원천적으로 어렵다. 철도, 환경, 교정시설 등에서도 기부대양여 사업이 많다. 군사시설이 이들 시설들과 다른 근본적 차이는 군인 및 군인가족이 군사시설에 ‘정주’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군사시설 이전사업에서는 정주여건 보장을 위한 문화, 교육 등의 무형적 가치가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우리 군은 국방개혁이라는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국방개혁에서 군사시설 재배치는 중요한 사업 가운데 하나다. 미국은 BRAC(Base Realignment and Closure, 군기지 재배치 및 폐쇄)을 통해 국방개혁에 필요한 막대한 재원을 조달할 수 있었다. 일본 역시 오키나와 및 홋카이도 지원청 등을 통해 군사시설 재배치 사업을 추진하면서 국가 재정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아울러 군인 및 군인가족들이 누릴 수 있는 생활환경의 무형적 가치까지도 이전사업에 포함할 수 있었다.
새 정부 들어 국방개혁이 실질적인 시작되고 있다. 사실 국방에서 군사시설 분야는 전체 국방비 대비 사업비 비율이 작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국방부는 산림청 다음으로 정부 부처 가운데 가장 많은 부동산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국방개혁 외에도 도심 확장에 따른 부대 이전 소요들이 많아지고 있다. 현행 기부대양여 사업 방식 하에서는 도심 외곽으로 이전해야 하는 군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손해는 군인 및 군인가족들이 떠안게 되고, 반대급부인 이익은 국고에 환수되지만, 위례신도시 사례에서 보듯이 개발업자에게 돌아가는 경우를 배제할 수가 없다.
군인의 복무환경 개선은 군의 사기와 직접 관련이 있다. 특히 군인가족의 생활환경 보장은 부대이전 사업에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군인가족의 안정적 생활환경은 군의 전투력과 불가분의 관계이다.
군사시설 재배치가 국방개혁에 성공적으로 기여하려면 국방부 군사시설기획관실, 국방시설본부, 각군 공병실의 능력만으로는 어림없을 것이다. 비단 미국, 일본 사례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에도 주한미군기지, 군공항이전사업에서의 특별법 제정을 통해 전담조직 및 특별회계를 통한 사업추진의 선례가 있다.
군 특수성을 인정하고, 군인 복무여건 개선을 위해서 관련 법규정 정비, 전담조직 구성이 한시 바삐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군인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당연한 것은 군인은 희생에 걸맞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