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사’ 육사 필수과목에서 제외된 이유

육사 생도들은 졸업과 함께 소위로 임관하고, 전공에 따라 이학사·문학사·공학사 학위와 군사학사 학위 등 총 2개의 학위를 받게 된다. 사진은 육사 수업장면. <육군 블로그>


“사관생도 자기주도적 학습 여건 필요”

얼마 전 육군사관학교 교과과정이 세간의 이슈가 되었다. 그 주인공은 ‘한국전쟁사’라는 과목이다. 지금 육사에서 강의되는 한국전쟁사는 필자가 사관생도 시절 배운 것과는 많은 점에서 달랐다. 아니 ‘발전’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하다. 육사를 대표하는 과목의 위상만큼이나 교수, 수업내용, 수업매체, 강의환경 등이 단연 국내 최고수준이다. 육사에는 한국전쟁사 외에도 군대윤리, 군사영어, 리더십, 북한학, 무기체계, 방호공학 등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춘 과목들이 즐비하다. 아울러 이러한 과목들은 해당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에 의해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2019년 교과과정 개편에서 한국전쟁사가 필수과목에서 제외되고 선택과목이 되었다. 한국전쟁사 외에도 앞서 언급한 과목들도 선택과목이 되었다. 과목의 중요성에 관한 우열을 가릴 수는 없지만, 이들 과목들도 한국전쟁사 만큼이나 중요한 과목들임은 분명하다. 육사는 왜 이러한 과목들을 선택과목으로 지정했을까? 정치적 이유일까? 단언컨대 결코 육사는 그러한 우를 범하지 않았다. 과목의 중요성보다 더 중요한 것을 위한 선택이었을 뿐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당시 필자는 육사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특정 학과의 학과장으로서 방호공학이 선택과목으로 지정되었기에 아쉬움이 없었다면 거짓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과과정 개편의 목적과 취지에 공감하였기에 적극적으로 지지했었다.

사관생도들은 기상에서 취침 때까지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쁜 일과를 소화해야 한다. 점호, 검열, 체육교육, 체력단련, 군사훈련 등이 매일같이 반복된다.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화랑의식 등 각종 행사들도 많다. 이런 가운데 공강이 거의 없는 수업시간 편성은 살인적 수준이다. 중간시험, 기말시험은 기본이며, 수업시간에 치러지는 퀴즈도 있다. 일부 수업은 수업 전에 예습여부를 확인하는 퀴즈도 있다. 이러한 과도한 일정 가운데 미래 우리 군을 이끌어갈 사관생도들에게 AI, 빅데이터 등 새로운 과목을 강의할 수 있는 틈이 있을까? 과거 주입식 교육을 탈피하여 자기주도적인 학습의 구현이 가능할까?

사관생도들이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 필요했다. AI, 빅데이터 등 강의 및 실습이 반드시 필요하거나, 수학 등 대학교육 이수에 필요한 기본과목들만 최소한으로 하여 필수과목으로 지정한 것으로 기억한다. 허락된 시간 내에서 사관생도들은 선택과목을 집중적으로 이수할 수도 있고, 독서 등을 통해 지식의 지경을 넓힐 수도 있었으며, 학점교류가 맺어진 인근 대학교에 가서 대학생들과 함께 육사에 없는 수업을 이수하기도 하였다.

‘기습’은 전투와 전쟁에서의 승리에 큰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이러한 ‘기습’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은 상대를 압도하는 과학기술과 창의적 기획능력 등에 바탕을 둔다. 빛의 속도로 발전하는 과학기술을 이해하기에는 육사에서의 4년은 부족하다. 적이 예상치 못한 시간, 장소, 방법, 수단 등을 창의적으로 기획하고, 그것을 이해하여 담대히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하기 위해서는 독서 등 자기주도성의 중요성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육사의 선택은 사관생도들에게 잡은 고기를 주는 것이 아닌 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교과과정의 취지와 순기능을 숨기고서 육사를 정쟁화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안타깝다. 군의 정치적 중립은 민주사회에서는 중요한 가치임에 틀림없다. 이와 함께 군 외부에서도 군을 정쟁화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될 것이다. 군은 사기를 먹고사는 집단이다. 또한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이다. 그러하기에 군이 우리 국민에게 필요로 하는 것은 무한한 지지와 응원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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