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경건 훈련의 양면성
*디모데전서 4-6장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딤전 4:8)
육체의 연단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디모데전서 4장 8절의 육체의 연단을 체력단련과 같은 육체적 운동으로 읽어도 무방하지만, 바울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당시 헬라 철학의 금욕주의적 훈련이나 유대교인들의 율법 준수와 같은 종교적 훈련입니다. 즉, 신앙생활에 뒤따르는 육체적 수행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주 3회 30분씩 유산소 운동을 하는 것보다 주 3회 30분씩 기도를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령하게 보이는 종교적 수행도 그저 하나의 육체적 연단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기도나 예배, 금식, 정결 예식과 같은 것들이 얼핏 보기에는 굉장히 영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도 경건의 형식에 지나지 않는 육체적 연단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육체의 연단을 하면서도 영적인 경건 훈련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교회에서 제공하는 일련의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나면 더 좋은 신앙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내 신앙이 한 단계 올라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레벨업 시스템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과는 거리가 멉니다.
육체 훈련의 본질은 자기 계발이지만 경건 훈련의 본질은 자기 부인입니다. 육체를 연단하면 발전하고 레벨업 합니다. 그러나 경건 훈련은 발전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아무런 발전 가능성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확인하며, 그런 나를 용납하신 하나님의 구원에 감격하는 것이 경건 훈련의 전부입니다.
육체의 연단이 마일리지를 쌓는 일이라면 경건 훈련은 마일리지 자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작업입니다.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고 예배를 드리고 봉사하며 섬기는 일을 육체의 연단 차원에서 할 수도 있고 경건 훈련으로서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한 때 경건 훈련의 최절정에 올라가 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 자신이 과거에 열정을 쏟았던 것이 경건 훈련이 아니라 육체적 연단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