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산 김일훈 26] 신약 효능 실증 체험하며 사람 살리는 게릴라
눈은 날카로워 하늘의 별을 꿰뜷고 지혜는 태양보다 환하고 자비심은 넓고 깊어 천지를 덮고도 남았지만 운룡은 조선의 운명에 갇힌 육신을 벗어날 수 없었다. 운룡의 기개와 지혜는 지구 위의 전 인류를 먹여 살리기에 충분했으나 나라없는 미개한 땅덩어리에 태어나 적국에 쫓기는 일개 불운한 게릴라의 처지였다.
운룡은 만주를 넘고 백두산, 묘향산 등지, 인간이 없는 깊은 산속을 타고 헤매었다. 한 군데 너무 오래 머물면 일경에 밀고 당하거나 체포될 우려가 크기 때문에 끝없이 옮겨 다녔다. 백두산 정상 부근에 펼쳐져 있는 야생마늘 군락지를 발견한 적도 있었다. 며칠 인가를 발견 못해 음식을 먹지 못했던 운룡은 야생마늘 군락지를 보는 순간 새로운 세계에 온 듯한 인상을 받았다.
우선 급한 김에 마늘을 몇 개 뽑아 대충 씹어 먹으면서 허기를 달래보았다. 쏘는 듯한 매운 마늘즙이 목구멍과 빈 위속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끼며 운룡은 생마늘의 성분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간에 부담을 주는 마늘의 독한 기운이 예리하게 감지되었다. 부싯돌로 불을 피워 산마늘을 익혀 먹으니 단맛이 위를 감싸는 것을 느꼈다.
마늘을 불에 익히면서 공중으로 날아가는 마늘의 유독 성분이 눈에 보였고 익힌 마늘과 생마늘의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세밀히 파악되었다. 운룡은 구운 마늘의 단맛이 위로 넘어가면서 쓰린 위벽의 세포에 영양을 공급하며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것을 읽었다. 지니고 다니던 소금으로 간을 해 먹으면서 운룡은 마늘의 매운 맛이 소금기에 중화되는 것을 관찰했다.
운룡은 훗날 구운 마늘과 죽염을 함께 먹으면 체내의 모든 부패물을 해독하고 영양물을 공급해 세포재생을 촉진시킨다고 강조한 것도 백두산 부근 야생마늘밭에서 경험하며 관찰한 지식이었다.
거문산 중턱의 자연 동굴 안에 잠시 머무는 동안 운룡은 깊고 깊은 산속에 오직 인간이라고는 혼자 있으며 우주와 자연과 생명체에 대해 고요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새삼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세계와 육안에는 보이지 않는 세계가 엄연히 병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백두산 묘향산의 맑고 달콤한 공기는 운룡의 폐속 깊숙이 스며 들었다. 산에는 온갖 약초와 나무가 어우러진 향기와 나무에서 내뿜는 휘발성 정유 성분이 코를 찔렀다. 높은 하늘에는 오색분자가 찬란하게 충만해 있었고 땅에는 감로정이 흘렀다.
일찍이 4~5세 무렵에 할아버지와 교유하던 어른들의 좌중에 끼어들어 서양의 천문학과 의학 서적의 오류를 지적했다가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 묵살당하고 꾸지람을 들은 이래, 자신의 주장과 자기의 심안(心眼)에 보이는 자연의 숨은 원리를 밝혀 말하기를 삼가는 습관을 들인 것이 벌써 몇 해인지 모른다.
필경 자신의 삶 전체를 일관하여 평생토록 그와 같이 말문을 닫은 채 혼자의 삶을 살아야 하리라. 그 사실을 느끼는 순간은 뼈저리게 고독했다. 그 역시 인간 세계에서는 감정이 흐르는 생명체였다. 시방삼세(十方三世)를 관통하는 대지혜를 지니고도 대중(大衆)으로부터 외면받는다면 그 인생길은 얼마나 외로운 가시밭길이 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뇌리를 아프게 파고들었다.
“그러나 이 또한 나의 운명이 아니던가. 그 모든 몰이해를 극복하고 이 세상에서 온갖 병액(病厄)을 몰아내어 후세 만년 인류의 무병건강 행복을 기필코 완성하리라. 내가 태어난 이상 이 지구에 질병으로 고통받는 가련한 중생은 없게 하리라.”
운룡은 하늘 아래 누구보다 자신만만했다. 자신만이 보고 있는 우주의 비밀이라든가, 그것을 바탕으로 이 세상의 어떤 질병이라도 고칠 수 있는 신약의 세계를 펼쳐 보일 수 있는 능력도 따지고 보면 인간으로서의 삶 속에서 비로소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운룡이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 모든 것이 비밀인 채로 영구히 묻혀 있었을 일이요, 그가 인간으로 태어남으로써 그 비밀을 토대로 인류의 병고를 해결할 실마리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운룡 자신이 헤쳐가야 하는 길은 결코 순탄한 길이 아닐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인간세계에 이미 형성되어 있는 갖가지 가치관들이 운룡을 얽어매려 들 것임이 뻔했다. 운룡이 전하고 펼쳐 보이고자 하는 것은 이제껏 그 누구를 통해서도 알려진 적이 없는 새로운 것들이 될 것임에, 기존의 것들에 친숙하고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들은 일단 배척하고 보자는 식의 세상 풍조에 얼마나 많은 시달림을 받아야 할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까짓(?) 세상사에서의 어려움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되었다. 능히 헤치고 이겨 나갈 수 있으리란 생래적 자신감이 운룡에게는 있었다. 생각해 보면 자신이 인간으로 태어난 것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자신이 구제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과 동일한 육신을 가지고 생로병사의 고해를 함께 항해하며, 아프고 시원하고 답답하고 괴롭고 상쾌하고 가뜬하고 무지근하고 가렵고 따끔따끔하고 몽롱하고 어지럽고 열나고 오한 들고 저리고 구역질나는 그 모든 느낌들을 직접 느낄 줄 아는 가운데 각종 질병에 적합한 치료약을 찾아낼 수 있는 것도 자신이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운명적으로 이미 당대에 세상으로부터의 인정을 받기는 불가능하다. 내 죽는 날까지 병들어 고통 받는 이들을 치료하는 적덕(積德)에 간단(間斷)이 없도록 할 것이로되, 내가 밝힌 치료법이 세상에 널리 퍼져 온 인류를 병액에서 구제하게 되는 일은 후세에나 있을 일이로다. 생생불멸(生生不滅)의 장구(長久)한 세월을 거쳐 금생(今生)에 이르기까지 나는 도(道)만 닦았지 음덕을 쌓지 않은 고로 금생의 노력만으로 온 세상이 신약의 위대함을 인식하게 하기에는 음덕이 짧고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하노라. 하기에 나는 온 정신과 지혜를 다하여 오로지 세상의 질병 구제에 진력할 것이며, 단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더 건져 말로 다할 수 없는 신약의 세계를 알리는 밑거름이 되게 하리라.’
운룡은 기회가 닿는 대로 신약의 효능에 대한 실증 체험을 쌓는 가운데 중단 없는 활인구세(活人救世)의 행보를 해나갔다. 깊고 깊은 오지의 촌사람들이 사는 마을마다 병인은 있었고 운룡은 가는 곳마다 인명을 구했다. 산속의 어느 촌가에는 심한 위궤양으로 피를 토하며 죽도 못 넘기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남자가 있어 손에 아무 약초도 없어 급한대로 가족을 시켜 이웃에 가서 계란을 구해오게 하여 냄비에 불을 달궈 노른자와 소금을 넣고 숟가락으로 노른자를 꼭 눌러 노른자기름과 소금을 먹게 하여 회복시켰다.
어느 지역에서는 심한 관절염으로 관절이 뒤틀려 걷지도 못하는 여인이 있어 그 집 가장과 함께 토종 소나무를 찾아 나섰다. 운룡은 땅을 보고 황토인지 아닌지 관찰하고 황토에 서 있는 소나무가 10년 정도 자란 것인지 살펴보고 그 중에서 동쪽으로 뻗은 뿌리만 골라 캐게 했다. 황토밭에 자란 동쪽으로 뻗은 솔뿌리만 지게로 한 가득 캐다가 가마솥에 푹 삶아 엿질금으로 단술을 만들게 해 날마다 퍼먹게 해 치료해주었다.
운룡은 깊은 산속에서 솔뿌리의 약성을 관찰했던 것이다. 황토가 습기를 머금고 있다가 토종소나무 줄기가 밤새 황토의 수분을 퍼올리며 잎으로 이슬을 내뿜는 것을 관찰했다. 밤만 되면 좋은 약성분이 땅으로부터 공간으로부터 스며나와 공기를 정화시켜 더없이 맑고 상쾌하고 향기로와지는 것을 관찰했고 새벽에 동쪽으로부터 해가 떠오르면서 공기 중의 약성분자가 동쪽 소나무 잎의 이슬에 몰려와 합성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동쪽 해가 비치면서 약성분자를 머금은 이슬이 동쪽 땅으로 먼저 떨어지면서 땅속의 뿌리가 그것을 흡수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동쪽뿌리의 약성분은 다시 동쪽잎사귀로 올라가 이슬이 되어 맺히고 다시 공기 중의 약성분이 이슬에 스며들고 이 이슬이 다시 동쪽뿌리쪽에 떨어져 흡수되고 이렇게 반복되면서 신비로운 영약이 동쪽 솔뿌리에 합성되는 과정을 지켜 보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