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바이든 대통령 “올브라이트는 자신의 선례를 따르도록 영감을 줬다”

김정일과 올브라이트

미국 제64대 국무장관이자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인 매들린 올브라이트(Madeleine Albright) 박사가 지난 3월 23일 향년 84세의 나이로 지병인 암(cancer)으로 별세했다. 유가족은 고인의 암 발생부위는 밝히지 않았다. 유가족이 발표한 내용(일부)은 다음과 같다.

“Statement from the family of Madeleine Korbel Albright: We are heartbroken to announce that Dr. Madeleine Korbel Albright, the 64th U.S. Secretary of State and the first woman to hold that position, passed away earlier today. The cause was cancer. …”

올브라이트는 체코(Czech Republic)에서 11세 때 공산 정권을 피해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부모는 모두 유대인이며, 부친인 요셉 코르벨은 외교관이었다. 1937년 5월 15일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태어났으며, 본래 이름은 ‘마리아 야나 코르벨’이다. 올브라이트는 1959년 언론 재벌 올브라이트 가문의 조셉 메딜 패터슨 올브라이트와 결혼했으며, 1982년 이혼했다. ‘올브라이트’는 전 남편의 성이다.

클린턴 대통령과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올브라이트는 보스턴 인근 명문 여자대학인 웰즐리대학(Wellesley College)에서 정치학을 전공하여 1959년 학사학위를 받았다. 결혼 후 한동안 가정주부로 생활한 올브라이트는 존스홉킨스대와 컬럼비아대 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으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조지타운대학에서 국제정치학 교수로 재임했다. 2012년 미국 대통령 자유훈장을 받았다.

올브라이트는 조지타운대 교수로 재직하던 1988년 민주당 대선 후보 마이클 듀커키스의 외교 고문직을 맡았다. 1992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유엔 주재 미국 대사로 발탁했으며, 재선에 성공한 클린턴 행정부 2기(1997-2001) 때는 외교 정책을 총괄하는 국무장관 자리에 올랐다.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이다. 올브라이트가 2001년 국무장관직에서 퇴임한 이후 하벨 체코 대통령은 자신의 후임으로 영입하고 싶다고 제안했지만 이를 거절했다.

올브라이트는 남성이 절대 다수로 주류였던 미국 외교계에서 첫 여성 국무장관을 지내며 미국의 강성 외교를 이끈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재임 중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확장을 적극 추진했다. 옛 공산권 폴란드와 헝가리, 체코가 1999년 그의 주도로 나토에 신규 가입했다.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이 2000년 러시아 대통령이 됐을 때 미국 고위 관료로서 그를 처음 만난 이도 올브라이트였다. 올브라이트는 러시아의 우르라이나 침공 직전인 지난 2월 23일 미 뉴욕타임스(NYT) 기고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공격을 감행한다면 역사적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올브라이트는 포용적인 대북 정책을 추진하며 북한의 비핵화 문제에도 깊이 관여했다. 그는 미 국무장관으로서는 최초로 평양을 방문했다. 1999년 미국은 이른바 대북 포용을 기조로 한 ‘페리 프로세스’를 발표했으며, 2000년 10월에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특사로 방미한 조명록과 논의 끝에 적대관계 종식 등의 내용을 담은 공동코뮈니케 발표를 이끌어 냈다.

왼쪽부터 힐러리 클린턴, 콜린 파월, 올브라이트, 키신저 전 국무장관

국무장관 시절 올브라이트의 ‘브로치 정치’가 화제가 됐다. 성조기나 독수리 브로치로 미국의 강인함을 과시했고, 비둘기 브로치로 평화에 대한 염원을 표현했다. 조 바이든(Joe Biden) 미국 대통령은 성명을 내고 “전 세계의 수많은 여성 지도자들을 포함한 다음 세대의 공무원들에게 자신의 선례를 따르도록 영감을 줬다”고 애도(哀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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