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일동 명창의 렌즈 판소리] “나도 혹여 사이비가 아닌지”
사이비(似而非)
사이비란 겉으로는 비슷하나 속은 완전히 다른 것을 일컫는다. 사이비란 말은 옛 문학이론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한다. 옛 화론(?論)에서도 사이비론을 말한다. 화가가 표현하는 작품과 그 이면의 정신세계가 같아야(似) 일품으로 쳐주었다. 말하자면 형신론(形神論)이다.
실체의 그림으로 드러난 것을 형(形)이라 했고, 그 그림이 드러나기 전에 내적 세계의 정신이나 심미나 철학 같은 것을 신(神)이라고 구분했다. 밖으로 드러난 형이 실물과 영락없이 맞아떨어진 것을 보고 형사(形似)라 했고, 내면의 정신세계와 심미가 한결로 드러난 것을 보고 신사(神似)라고 했다.
그래서 신사와 형사가 한결로 돋보이면 최고의 작품으로 쳐주었고, 형과 신이 어긋나면 사이비(似而非)라고 했다. 한의학에서는 형과 신이 어긋나면 병이난다고 했다.
“물은 속성이 흐르고 움직이는 것이어서 언제나 물결을 일으키며, 나무는 그 몸체가 충실하면 거기에서 꽃을 피우게 된다. 이는, 형식이란 내용에 따르는 것임을 보여준다. 호랑이나 표범의 가죽에 무늬가 없다면 그것은 개나 고양이의 가죽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夫水性虛結, 實花 夢振, 文附質也, 虎豹無文, 則同大羊;犀兒有皮”
윗글은 유협(劉?)이 쓴 <문심조룡>(文心雕龍)에 나온 글이다. 여기서 유협은 글은 솔직한 심경의 내용을 글이라는 형식을 통해 그대로 드러내어 형과 신이 일미가 되도록 글을 써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야 사이비가 안 된다는 것이다.
속담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다. 그만큼 사람의 마음을 측량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나도 혹여 사이비가 아닌지 가만이 헤아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