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전축’을 기억하시는지요?

‘장 전축’이라고 기억하시는가? 축음기시대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손으로 태엽을 감던 것이 전기의 힘으로 돌리며 분당 33회전으로 LP음반을 돌리는 전축은 대단히 획기적인 혁신이었다.

SP는 분당 78회전이니 금방 끝나버리는데 LP는 한결 느릿느릿 돌아가고 그 음반 한쪽 면에 노래 7곡 정도가 들어가니 여유를 가진 느긋한 음악감상이 가능했다.

늘 휴대하고 다니는 전축도 있었지만 집안의 멋진 가구처럼 비치해두고 틈만 나면 음향을 즐기는 장 전축이 1950년대부터 특별한 인기를 얻었다. 미국산 빅터, 독일산 텔레풍켄, 영국산 매그너복스의 선호도가 높았다.

기기묘묘한 장인의 솜씨까지 더불어 곁들여진 장 전축도 지금은 시대의 퇴물로 전락했지만 여전히 복고풍 음향기기를 즐기는 이는 그 추억의 물건을 선호하고 있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친구네 집에서 본 초록등이 들어오는 장 전축이 기억난다. 보통 장 전축의 크기는 1.5~2.5m나 되어 거실이나 안방 벽에 설치해두고 늘 아끼며 즐기는 매니어들의 보물이었다. 그 기묘한 매력에 나도 빠져들게 되었는데그것은 순전히 임용묵 교수의 인도 덕분이다.

그는 1980년대 내가 청주에 살 때 충북대 영문과에 재직하던 동료교수였다. 영시 전공으로 고려대 대학원에서 시인 김종길 교수의 제자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형은 시조시인 임선묵 교수였고 충남 공주 출생이다. 기질과 취미가 같아서 자주 어울려 놀았다.

그는 클래식 음악에 심취한 매니어였으며 이른바 명기로 알려진 음항기기들, 특히 앰프, 파워, 턴테이블, 스피커 등 온갖 것에 심취하여 수시로 팔고 사고 이런 일들로 즐겁고 바쁘게 살아가는 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잘 가동이 안 되는 음향기기 수리와 설치 세팅까지도 잘 해서 가히 전문가적 수준이라 할 만했다.

하루는 그 임 교수가 긴한 부탁이 있다며 긴장된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자기가 서울 종로구 황학동 벼룩시장에서 멋진 장 전축 하나를 사왔는데 차마 집에 갖고 갈 용기가 안 나서 내 연구실에 임시보관을 좀 해두자는 것이다. 이는 부인의 잔소리가 두려워 하는 짓이다.

쾌히 수락하고 그 물건을 들였다. 오래도록 가져가지 않아서 점차 호기심을 갖다가 어느 날부터 그걸 가동시켜보았는데 옛스런 소리가 아주 은은하고 매력적 분위기였다. 단숨에 어린 시절로 나를 데려갔다.

나는 임 교수를 조르고 설득해서 결국 그 장 전축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 이로부터 장 전축과 오디오의 세계에 입문했다. 그 모든 경로가 임 교수 덕분이다. 나는 그를  사부(師傅)라 호칭하며 도움도 받았다. 우리 둘은 서로의 집을 왕래하며 함께 음악을 듣고 오디오 세계를 즐기는 동지였다.

내가 청주를 떠나온 뒤 그리움이 많이 쌓여서 임 교수는 여러 차례 나를 만나러 대구를 다녀갔다. 지금은 연락이 끊어졌지만 늘 그립고 다시 보고싶은 옛 친구다.

 
임용묵 교수가 이동순 시인에게

이 동 순 선생님

쌍용주유소 하나 생긴 것 말고 특별히 변한 것 없는 개신동 동사무소 길 그냥 지나치는 날 한 번도 없는데 동순과 그 악단의 옛 노래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나이 들수록 옛사람 그리워지는 것도 병인 듯합니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 떠난 것도 아닌데 얼굴 한번 보기 왜 이리 힘든지요?

사모님 안녕하시고, 응이와 대를 이을 시인 단비도 잘 있지요? 이렇게 옛노래 들으며 지나간 개신동 시절 이야기로 집사람과 열 올렸지요. 소식은 윗동서한테 간간이 들었는데 눈으로 확인이 안 되니 더욱 궁금할 뿐입니다.

지난 겨울 장 선생님과 계획적으로 급습할 스케줄도 마련했었는데 그날 따라 눈이 많이도 내려 무기한 연기했지요. 우리는 아직 막내놈 조금 더 커야 자유로울 듯하지만 또 한편 큰 녀석 소희 시집살이에 먼길 떠나기 옛날 같지 않습니다.

윗동서가 영국에서 돌아왔으니 일부러라도 한번 다녀와야 될 듯합니다. 이 나이에 컴퓨터 배우겠다고 망녕 떨고 있습니다. 이 글이 첫 작품입니다.

프린터는 오늘 들어왔습니다. 악필인 나에게 조금은 위로가 됩니다. 동순과 그 악단의 오디오는 잘 돌아가겠지요? 새로운 레파토리도 많을 텐데 혼자만 즐기지 말고 같이 즐기십시다. 이곳 악단도 다 잘 있습니다. 전형준 악단도 새로 가입했지요. 아주 열심입니다.

장성중 악단은 여전히 흐느끼는 바이얼린을 강조하구요. 그러나 이동순 악단이 없는 이곳은 서구중심에서 못 벗어나는 듯합니다. 한번 모여 완전한 오케스트라를 구성해야 할 듯합니다.

오늘 컴퓨터 연습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건강하시고 올해도 문운이 왕성하시길 기원합니다.

1993년 3월 23일

청주에서 임 용 묵

임용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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