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朴 正 萬’ 정호승
내 무덤 위로
푸른 하늘이 잠시 머무르게 해다오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고
내 무덤이 평평해질 때까지
누가 제비붓꽃 한 송이 피어나게 해다오
내 무덤 앞으로 난
길도 없는 길을 걷다가
뜻밖에 저녁 노을이 질 때
누가 잠시 발길을 돌려
작은 나무십자가 하나를 세워다오
밤바람이 흘러가는 곳으로
새벽별들이 스러지면
또 누구 한 사람 발길을 멈추고
촛불 하나 켜주고는 돌아가주오
-시집 <별들은 따뜻하다> 창비, 1990
박정만(1946~1988)은 전주고-경희대 국문과를 나와 196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詩 ‘겨울 속의 봄 이야기’ 당선. 1981년 5월 고려원 근무 시 작가 한수산 필화사건에 연루되어 곤욕을 치룸. 이후 결혼생활도 파괴되고 병마에 시달리는 등 개인적 슬픔을 겪음. 간경화로 사망. 1989년 현대문학상, 1991년 제3회 정지용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