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대선 길목 D-31] 정권과 운명 같이한 정당사···자유당·공화당·민자당·신한국당·열린우리당 등등

민자당으로 3당합당 당시 김영삼 노태우 김종필(왼쪽부터)

한국정치사의 특성 가운데 하나가 정당이 권력을 창출하는 경우보다 권력이 정당을 만드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입니다. 대통령 직선제와 대통령 단임제가 확립된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 이전에는 정치권 밖의 힘이 권력을 창출했고 정당은 혼란의 책임을 지고 역사의 무대 밖으로 사라지곤 했습니다.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린 건 시민과 학생이 항거한 4.19혁명이었습니다. 이승만 정권의 여당인 자유당은 4.19 이후 치러진 7.29 제5대 민의원 선거에서 2명 당선(총득표율 2.8%)의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습니다. 이 대통령이 1951년 만든 자유당은 12년 만인 1963년에 해산했습니다. 자유당 출신들은 성향에 따라 민주공화당과 신민당으로 옮겨갔습니다.

5.16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는 1963년 민주공화당을 만들었습니다. 박정희 독재를 뒷받침했던 공화당은 10.26으로 유신체제가 무너질 때까지 집권여당이었습니다. 공화당은 12.12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신군부에 의해 1980년 강제해산되었습니다. 17년 동안 존속했던 공화당은 가장 오래 존속한 최장수정당입니다.

12.12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하고 광주민중항쟁을 총칼로 짓밟은 전두환 중심의 신군부가 만든 정당이 민주정의당입니다. TK(대구 경북) 세력과 군부세력이 중심이었던 민정당은 처음부터 끝까지 집권여당으로 전두환 독재를 뒷받침했습니다. 6월항쟁 이후 민주화 흐름에 밀리던 민정당은 야당(통일민주당과 신민주공화당)과 손잡고 민주자유당으로 탈바꿈합니다.

밀실야합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받는 3당 합당의 산물 민자당 역시 정권이 만든 정당입니다. 거스를 수 없는 민주화의 물결과 사상 초유의 여소야대 상황에서 상왕을 꿈꾸는 전두환과의 세력다툼도 버거웠던 노태우 대통령은 민자당을 만듦으로써 여소야대를 여대야소로 바꾸었습니다. 민자당은 김영삼 대통령을 당선시킴으로써 권력유지에 성공했습니다.

최초의 문민정부임을 내세운 김영삼 대통령은 제5공화국의 흔적을 지우고자 당 이름을 신한국당으로 바꾸었습니다. 당 이름은 자신의 국정슬로건인 ’신한국 창조‘에서 따온 겁니다. ‘역사 바로세우기’를 통해 전두환·노태우를 단죄하면서 민자당의 주축이던 민정계를 위축시키고, ’유신본당‘을 자처하던 김종필이 이끄는 공화계를 내쫓았습니다.

당 이름을 바꾼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신한국당 역시 권력이 만든 정당이었습니다. 집권여당 사상 처음으로 경선으로 대통령 후보를 선출한 신한국당은 그 후보에 의해 간판을 내리게 됩니다. 제15대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이회창 후보와 조순 통합민주당 후보가 후보단일화를 함으로써 통합민주당과 합당해 한나라당이 창당되었습니다.

정당이 권력과 운명을 같이 하는 건 여야간 평화적 정권교체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새정치국민회의를 새천년민주당으로 바꾸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됨으로써 민주당은 정권연장에 성공했습니다. 대선 과정에서 후보사퇴와 단일화 압박 등 당내 갈등에 시달렸던 노 대통령은 민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을 창당했습니다.

탄핵바람에 힘입어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과반 의석을 확보해 기세를 올렸던 열린우리당은 불과 2, 3년 만에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창당 4년도 안 되어 열린우리당은 대통합민주신당으로 합쳐졌고, 끝내 정권창출에 실패했습니다. 창당 이후 줄곧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2007년 제17대 대통령선거에서 이겨 집권여당이 되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실정으로 한나라당은 위기에 놓였고, 2013년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당 이름을 새누리당으로 바꾸었습니다. 새누리당은 제18대 대선에서 집권을 했지만 그 뒤 여러 차례 이름이 바뀌었고 지금은 국민의힘이 되었습니다. 정권과 운명을 같이 하는 정당이라는 후진적 정치행태가 이번 대선 이후에는 되풀이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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