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내 별과 수백만명 목숨 바꾼 것은 보람” 싱글러브 장군과 ‘한미동맹’

싱글러브 소장

[아시아엔=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 공군정책발전자문위원장, 합참자문위원] 지미 카터가 1977년 제39대 미국대통령으로 취임하자 청와대는 긴장국면으로 바뀌었다. 공화당의 포드 후보와 맞붙은 민주당 카터 후보는 정치신인이었다.

미국의 월남전 패배와 워터게이트사건으로 미국인의 자존심이 실추한 상황에서 카터는 도덕, 인권, 주한미군 철수를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되었다. 실제로 그는 안보문제에는 별다른 경험도 지식도 없는 문외한이었다. 그는 김일성정권을 선의로 대하면 군사적 긴장이 줄어들 것으로 생각하였다. 조지아사단으로 불리우던 핵심참모 중에는 북한을 3년간 다녀와서 친북성향의 책을 쓴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당시 남북한 군사력으로 볼 때 주한미군의 일방적 감축이나 철수는 우리의 국방역량을 크게 약화시킬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군사안보적 측면 뿐만 아니라 컨트리리스크 증가로 인해 경제적 충격도 적지않을 심각한 상황이었다. 더구나 북한은 배후에 중국과 소련이 버티고 있었고 이들은 한반도 공산화라는 공동의 전략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주한미군 감축을 우려하고 있던 차에 카터 대통령이 취임한 것이다.

한미정상간의 갈등은 그의 방한으로 정점까지 치솟았다. 1979년 6월29일부터 7월 1일까지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동안 전방 미군부대를 시찰하고 주한미군 철수 의지를 거듭 밝혔다. 뿐만 아니라 국회연설에서 한국의 인권문제를 강력하게 비난하여 박정희 대통령을 분노케 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카터 대통령에게 한반도 정세를 설명하며 주한미군 감축을 강력히 반대하였다. 평생 군인으로 살아왔던 그는 해군대위 출신 신인 정치인을 스승이 학생에게 대하듯 하였다. 여기에 카터 대통령은 분노하여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카터는 설득되기는커녕 더 강경한 자세로 나왔다.

카터 대통령 취임초기부터 주한미군철수 문제가 한미양국의 뜨거운 현안이었다. 이때 주한미군 참모장이었던 싱글러브 소장이 <성조지(Stars and Stripes)>에 주한미군철수를 반대하는 인터뷰를 하였고 이게 국내외 언론에 크게 보도되며 큰 파장이 일었다. 카터 대통령은 즉시 싱글러브 소장을 해임하고 그후 예편시켰다. 또한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 사령관인 존 베시 대장을 백악관으로 호출하였다. 카터는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으로서 현지 사령관인 베시 대장을 질책하는 동시에 당근을 제시하였다. 주한미군 철수를 찬성하면 미 육군참모총장으로 발탁하고 반대하면 예편시키겠다는 것이었다.

베시 한미연합사 사령관, 김동호 한미연합사 초대 정보참모부장, 윤은기 부관(오른쪽부터)

창설 당시 한미연합사령부(ROK-US Combined Forces Command: CFC)는 사령관 존 베시 주니어 대장, 부사령관 류병현 대장(후에 주미대사 역임), 참모장은 권영각 중장이었다. 필자는 초대 정보참모부장(김동호장군, 공사 2기)의 부관으로 근무하면서 청년장교 시절 여러 역사적 격동 상황을 생생하게 목격하였다. 베시 사령관이 백악관에 호출되자 연합사 분위기는 아주 침통하였고 특히 한국군 장성들은 사령관이 어떤 답변을 하고 돌아올지 몰라 전전긍긍하였다. 청와대도 초긴장 상황이었다. 존 베시 사령관이 카터 대통령의 설득을 받아들인다면 주한미군 철수는 계속될 것이고 한반도는 위기의 안보상황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귀국한 존 베시 대장은 연합사 장군들을 모아놓고 카터 대통령에게 한 말을 이렇게 전했다.

“대통령각하 저는 군인입니다. 주한미군 철수는 한반도 안정을 해치고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것입니다. 이는 미국과 한국에 심각한 손실을 초래합니다. 저는 주한미군 철수를 지지할 수 없습니다”

주한미군사령관 베시 대장

이런 소식이 전해지자 한편으로는 안도하였고 한편으로는 침통해 하였다. 당장 주한미군 철수는 일정기간 피할 수 있지만 친한파인 존 베시 사령관의 예편이 기정사실화되었기 때문이다. 얼마 후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존 베시 대장이 미 육군참모차장으로 발령이 난 것이다. 참모총장은 마이어 대장이 임명되었는데 그는 존 베시 대장보다 훨씬 나이가 어리고 과거 존 베시 대장의 직속부하로 근무한 적이 있는 인물이다.

서열을 중시하는 군에서 이런 인사는 군복을 벗으라는 거나 마찬가지다. 화가 머리 끝까지난 카터 대통령의 보복성 인사였다. 우리는 또한번 놀랐다. 군복을 벗을 줄 알았던 베시 대장은 국가에 충성할 기회를 준 대통령에게 감사한다는 이임사를 하고 연합사를 떠나 미 육군참모차장직을 받아 들인 것이다.

그후 들리는 소식은 한참 후배였던 마이어 총장을 잘 보좌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파동을 거치는 사이 카터 대통령은 여러 참모들의 조언과 의회의 권고를 수렴하여 주한미군 철수계획을 중단하였다. 한반도 상공을 덮고있던 먹구름이 해소되기까지 싱글러브 소장과 존 베시 대장의 군인정신과 헌신이 있었다.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하고 또한번의 반전이 있었다. 최고위급 군인사를 하면서 존 베시 육군참모차장을 합참의장으로 전격 발탁하였다. 육군참모총장을 거치지않고 참모차장이 합참의장이 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레이건 대통령은 베시 장군을 ‘군인 중의 군인’이라고 격찬하였다. 그의 군인정신과 헌신적 자세를 높이 산 것이다. 베시 장군은 합참의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친한파로서 한미동맹 강화에 큰 기여를 하였다.

싱글러브 장군이 서거했다는 소식이다. 올해 100세다. 그는 참다운 군인이었다. 정치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군인정신과 자세를 지키며 자기희생을 감수하였다. 당시 주한미군 참모장 직책은 중요한 자리였고 싱글러브 소장은 중장, 대장으로 승진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소신을 지키다 군복을 벗고 말았다. 그후 인터뷰에서 더 승진하지 못한데 대한 아쉬움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런 말을 하였다. “내 별 몇개와 수백만명의 목숨을 바꾼 것은 보람있는 일이다”

존 베시 대장 그리고 싱글러브 장군은 군인의 길을 걸었고 그 덕분에 우리는 더 튼튼한 안보태세를 갖출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은 자기들의 조국을 위해 일했고 소신을 지켰다. 그들의 군인정신과 소신 덕분에 우리도 더 강한 안보태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한미동맹은 그때나 지금이나 대한민국 국방안보의 초석이며 핵심동력이다. 한미동맹을 위해 노력한 수많은 한미장병들의 헌신을 잊어서는 안된다. 싱글러브 장군의 명복을 기원한다.

공군 중위 시절 윤은기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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