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란?···”원불교를 벗어났기에 진정 원불교 이룩해 내”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


이 글은 4월 28일 원불교 대각개교절을 맞아 도올 김용옥 선생이 지난 4월 16일 <원불교신문>에 ‘원불교란 무엇인가?’에 대해 기고한 글을 재구성했습니다. 필자는 “원불교도가 아닌 학자가 제3자의 눈으로 본 원불교로 이해하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편집자>

“원불교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법성포를 서북방으로 바라보는 구수산(九岫山) 아래 길룡리에서 태어나서 그곳을 떠나지 않고 자라난 한 청년의 대각(大覺)으로 시작된 종교운동”이라고 답할 수 있겠다. 박중빈 소태산 부처가 득도했을 때가 1916년 4월 28일, 그의 나이 25세 채 되기 전이다.

원불교에 대해 이런 질문을 떠올려본다. “요즈음 원불교 잘 돌아갑니까? 앞날은 어떨까요? 원불교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그 미래방향을 예견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현재 원불교 사람들이 소태산 박중빈의 대각의 외침에 부응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따져보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을 따져보려면 우선 소태산의 깨달음의 내용이 무엇인지 살펴보면 된다. 25세의 시골청년은 과연 무엇을 깨달았는가? 옛날 영광 백수면 길룡리는 매우 궁벽한 곳이어서 제대로 된 서당도 없었다.

박중빈은 7세 때부터 화창한 하늘의 푸르름과 불어오는 바람과 흐르는 구름에 의문이 일었다. 또 삼라만상에 대한 경외감과 함께 그 실상에 대해 회의가 일었다. 하지만 그는 스승을 구하고자 해도 구할 길 없고, 산신령이나 도사를 만나려 해도 만날 길이 없었다.

그는 학식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요, 시서(詩書)를 독파할 여유가 있었던 사람도 아니었다. 회의와 갈망과 절망 속에 그의 우주론적·인간론적 질문은 깊어만 갔다. 그러던 중 1916년 음력 3월 26일 이른 새벽, 홀연히 정신이 쇄락하여 대각의 경지에 이른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만유가 한 체성(體性)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홀로 깨달았다는 것은 영광 산천의 흙내음이 빚어낸 단독자의 포효(咆哮)로서 박중빈의 대각에는 명백한 특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지식의 도움을 크게 받지 않았다는 것과 홀로 깨달았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원불교를 불교의 변양(變樣)으로 생각하거나, 생활화된 현대불교의 일종”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원불교는 불교가 아니다. 박중빈은 스스로 “내가 스승의 지도 없이 도를 얻었으나, 득도의 경로를 돌아본다면 과거 부처님의 행적과 말씀에 부합되는 바 많다. 그러므로 나의 연원(淵源)을 부처님께 정하노라”라고 언명했다. 그렇다고 해서 원불교가 불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불교는 불(佛)의 가르침일 뿐이요, 이때 불이란 ‘깨우침’의 별명(別名)일 뿐이다.

박중빈은 어떠한 종교단체를 개창하기 위하여 깨달은 것이 아니다. 그는 그의 존재 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의문 때문에 견딜 수 없어, 우주와 인간을 포함하는 삼라만상의 실상을 알고파서 몸부림쳤을 뿐이다.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에도 그는 그의 깨우침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승가(僧伽)를 조직하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종교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중빈의 각(覺)이 도달한 곳은 주변 마을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있었다. 그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써 그의 각(覺)을 보여주었다. 박중빈은 고향에서 깨달았고 고향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삶의 운동을 펼쳤다. 그것은 종단이 아닌 생활조합이었고, 바다를 막아 3만여평의 농토를 만드는 방언(防堰) 공사였다. 이러한 개척공사를 무에서 창출해낼 수 있는 정신적 기초가 바로 그의 각(覺)이었다.

원불교전서

박중빈은 복음서를 스스로 썼는데, 1943년 열반에 들기 석 달 전에 <정전>(正典, 당시 <불교정전>)을 친감하고 발행까지 완수한다. 원불교의 핵은 바로 이 <정전>에 다 들어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박중빈은 등상불(等相佛) 숭배를 불성(佛性) 일원상(一圓相)으로 바꿔야 하는 당위성을 농가에서 참새를 못 오게 하기 위해 세워 놓는 인형 허수아비에 비유한다. 참새들이 며칠은 오지 않을지 모르나 그것이 허수아비임을 깨닫고 올라앉아 똥을 싸며 유희를 일삼는다는 것이다. 무식한 새도 허수아비를 알아보는데, 최고로 영특한 인간이 인형(人形) 등상불을 2천년 동안이나 모셔왔으니, 이게 도대체 말이 되냐는 것이다.

흔히 원불교를 ‘진리의 종교’ ‘사실의 종교’라 말하고, 일원상의 진리를 들어 그것을 설명하곤 한다. 그런데 일원상의 레토릭만을 들으면 공허할 뿐이다. 박중빈의 대각의 핵심이 일원상에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지만, 박중빈의 언어의 핵심은 그가 인간을 바라보는 눈에 있다.

그 시각(視覺)이 바로 사은(四恩)이다. 사은은 인간을 ‘은(恩)의 존재’로 규정한다. 은은 관계를 의미한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관계 속에서 은혜를 입었다는 사태를 입증한다는 것이다. 그 은의 근원으로서 천지, 부모, 동포, 법률 4항목을 제시한다. 천지는 곧 부모이며, 부모는 곧 천지이다. 천과 지간의 교합에 의하여 생성되는 모든 존재가 나의 동포이다. 그리고 이 동포들이 살아가는 문명의 방식이 법률이다.

천지가 없이 나는 태어날 수 없었다. 부모가 없이 나는 태어날 수 없었고 성장할 수 없었다. 동포가 없이 나는 생존할 수 없었다. 법률이 없이 나는 생활의 질서와 이상적 미래를 꿈꿀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미 천지 은으로 규정된 나는 천지에 보은을 해야만 한다.

부모, 동포, 법률에 대한 보은도 마찬가지다. 원불교가 진정으로 사은을 자각한다면 보은의 행동을 취해야만 한다. 그것은 곧 원불교는 원불교 교리 자체 내에 머물지 않는다. 소태산-정산-대산 3대에 걸친 눈부신 축적이 위대했던 것은 그들이 교리를 정교하게 만들어서가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흐름을 선도하는 비전을 제시했고 사회적 울림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원불교는 원불교를 벗어났기 때문에 진정 원불교를 이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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