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로 차량부품 제조 차우수 회장 “정부기록도 한지에···”
<인터뷰> 한지 전도사 차우수 한지산업기술발전진흥회 회장
세계 최고의 종이 ‘한지’의 재발견?
첨단산업 도약 준비 갖춰···표준화 시급?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도 일반용지에 담고 있어 오래 보관할 수가 없어요. 기록문화유산이라면 한지에 기록돼 보관돼야 합니다.”
5월30일 만난 차우수 (사)한지산업기술발전진흥회 회장은 국가의 중요기록물을 100~200년 지나면 부서져버리는 일반용지에 기록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답답해?했다. 디지털 파일과 마이크로 필름으로도 보관되기 때문에 그럴 수 있지 않냐는 물음에 “기록물은 원본의 중요성이 크고 종이로 보관될 때 위변조 가능성이 적다”고 말했다.
“대전 국가기록원에 간 적이 있어요. 관계자에게 어떤 종이를 사용하는지 물었더니 수입한 중성지를 쓰고 있다는 겁니다. 왜 전통 한지를 두고 수입 중성지를 사용하느냐고 물었더니 앞서 정부에서 기록용지로 한지를 쓴 전례도 없고 표준화가 안돼서 사용할 수가 없답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동의보감 등 한지에 기록된 우리의 문화유산이 그 가치를 입증해주고 있는데 전례가 없어서, 표준화가 안돼서 쓰지 못한다는 말에 당장 기술표준원을 찾아갔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실망스러웠다.
“한지를 수작업으로 생산하는 업체가 많다보니 표준화가 힘들다는 거예요. 한지의 특성에 맞춰 기준을 조금 넓게 주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도 어렵다는 말 뿐이었어요.”
차 회장의 문제제기 후 기술표준원도 필요성을 느껴 한지의 표준화를 위해 프로젝트를 가동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한지산업기술발전진흥회를 사단법인화 하는데도 도움을 줬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도 한지의 표준화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한지를 생산하는 업체가 계속해서 줄고 있는 것도 표준화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차 회장은 “2010년 조사한 결과 전국에 한지업체가 26개였는데 지금은 10여 개로 줄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지의 활용도를 기록지, 공예 재료 등으로 좁게만 생각하는 것도 문제다. 5년내 국가 산업으로 키우지 못하면 국내 한지 생산업체는 모두 사라지고 중국에서 전량을 수입해야 할지도 모른다.
첨단산업의 보물창고 한지…자동차 부품, 섬유 재료로
차 회장이 말하는 한지는 첨단산업의 보물창고다. 고급 섬유재, 자동차 내장재 및 부품소재, 건축자재 등 그 쓰임새가 무궁무진하다. 내구성이 강하고, 원적외선 방출, 탁월한 통풍성 및 탈취성 등의 특징 때문이다.
최근 부산모터쇼에 선보인 기아 콘셉트카인 네모의 헤드라이너에 전통 한지가 사용됐다. 자동차 스피커에도 한지가 사용돼 그랜저HG, 아반떼 등에 한지스피커가 장착됐다. 스피커 진동판을 한지로 만들어 음감을 높였다는 평가다. 섬유재료로도 활용돼 기능성 옷감이 생산되고 있다. 아토피, 알레르기 등을 일으키는 기존 건축자재의 대체재로도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경쟁 재료에 비해 단가가 비싸다는 것이다.
차 회장은 “그래서 어느 정도 경쟁력이 확보될 때까지는 정부의 꾸준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키워준다면 지자체 두 곳은 먹여살릴 수 있는 효자산업이 한지업입니다. 현재 한지의 원료인 닥나무를 재배하는 곳은 전주, 원주, 괴산, 안동 등입니다. 닥나무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봄에 심어 가을에 수학할 수 있어 공간 활용성도 높습니다. 한국 토양에서 자란 닥나무의 질이 중국, 일본보다 우수해 경쟁력도 갖췄고요.”
전통산업을 첨단산업과 연결시킨다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원료가공부터 마케팅까지 우리가 전부 다 할 수 있는 산업이 한지 산업이다. 한지가 소재산업으로 가는 기술력은 전부 갖췄다. 자본만 유입되면 10년 안에 포스코, 삼성 매출액을 능가하는 산업이 될 거라는 게 차 회장의 생각이다.
“지자체 두 곳 먹여 살릴 수 있는 전통산업”?
차 회장이 한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8년 전 전통한지를 생산하는 충북 괴산군의 ‘신풍한지’를 방문하면서다. 2004년 해외로 이민하게 된 지인이 우리나라의 모습을 담아가고 싶어 해 같이 고민하다가 ‘한지’를 가져가기로 의견을 모은 것.
“전통방식 그대로 한지를 만들고 있던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전율이 느껴짐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한지는 너무 훌륭한데 그 자랑스러운 한지를 만들고 있는 공장은 언제 무너질지 모를 정도로 낡았고 장인들의 초라한 모습은 마음을 더 아프게 했죠. 지켜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기더군요.”
그때부터 시작된 한지 사랑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일본계 회사의 중역을 맡고 있는 그는 조만간 강화도에 전통방식으로 한지를 만드는 공방을 세울 계획이다.
차우수 회장은 한지산업기술발전진흥회 외에도 한브랜드 전략연구소장, 한류문화산업포럼 산업분과위원장을 맡아 한류 전파에도 큰 힘을 쏟고 있다.
드라마, K-POP, 음식 다음으로 한류를 이어갈 분야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손꼽는 그는 “한지가 한류를 이어갈 대표 전통문화 산업으로 성장할 날을 기대한다”며?함께 응원해 줄 것을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