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묵상] 한탄과 눈물로 지샌 선지자 ‘예레미야’
[아시아엔=석문섭 베이직교회 목사]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렘 33:1, ㅇ통독 예레미야 31-36장)
예레미야는 맘 편하게 두 다리 쭉 뻗고 잠을 청해본 적이 있기나 했을까요? 항상 기뻐하기는커녕 그는 일생의 대부분을 한탄과 눈물 속에서 보냈습니다.
오해와 무시는 기본이고 감금과 폭행, 살해위협 속에서 지냈습니다. 이것이 당시 하나님 앞에서 가장 신실했던 한 사람의 인생이었습니다.
인생 역전도 없었습니다. 그는 그냥 그렇게 살았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
많이들 좋아하는 예레미야의 구절입니다.
“그 심령은 물 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렘 31:12)
“너의 장래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렘 31:17)
오늘 읽은 통독 본문에만 희망적 메시지가 여러번 나옵니 다. 정작 그 말씀을 전하는 예레미야의 삶의 모습은 어떤가요?
어쩌면 그 당시에 많은 이들이 예레미야를 비웃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안과 소망이 필요한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예레미야, 바로 당신 아니냐며 반문하지 않았을까요?
예레미야는 자신이 전혀 알지도 못하는 평안과 소망을 그저 앵무새처럼 전했던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평안과 소망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을 통해 평안과 소망을 전하셨겠습니까?
예레미야를 통독하며 평안과 소망의 정의와 기준을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내가 바라는 평안은 무엇이고 하나님이 주시겠다는 평안은
무엇일까 질문해 봅니다.
예레미야가 전하는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듣는 성공한 신앙인들의 간증과는 거리감이 있습니다.
이 시대에 예레미야가 살았다면 그를 강사로 초청하는 교회가 있기나 했을까 의문입니다.
하긴, 당시에도 아무도 듣지 않아 인기가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