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패배 일본군 장성들은 어떻게 목숨 건졌나?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영화 <타이강의 다리>는 버마 방면군의 고초를 그렸는데 잔혹했던 사령관 무다구치 렌야를 포로수용소장을 빌어 그리고 있다. 영화는 영국군, 미국군, 일본군의 특징을 잘 그려내고 있다.
영국의 대표적 명배우 알렉 기네스가 나온다. 버마 방면군은 3개 사단이었는데 방면군사령관과 작전개념이 다른 사단장이 교체되는 등 혼란을 겪는다. 일본군 역사에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
무다구치는 실패했다. 전사가로 유명한 이토(伊藤政德)의 <제국 육군의 최후>에는 이 과정이 상세히 그려져 있다. 그는 전범재판에서 사형 당했다. 인도네시아에 진공한 이마무라 히토시는 완화된 점령통치로 살아남았다. 일본은 이마무라 덕분에 오히려 전후 인도네시아에 활발히 진출한다.
싱가포르에서 영국군 사령관 퍼시발을 강박한 혼마는 죽었다. 필리핀에서 야마시타 도모유키는 미군 포로에 ‘죽음의 행진’을 시켜 사형당했다.
2차대전의 독일 장군이 모두 처형되지는 않았듯이 많은 일본군 장성도 패전 후에 살아남았다. 만주사변의 원흉 이시와라 간지도 살아남았다. 도조 히데키(東條英機)에 의해 일찍 예편당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참모본부 마지막 작전과장(服部度四郞)을 중심으로 <大東亞戰爭 全史>를 통해 초기의 일본군 진공에 대해 상술하고 있다. 미국의 태평양전쟁사와 함께 읽으면 대동아전쟁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대동아전쟁 초기에 일본군은 프랑스를 일거에 굴복시킨 독일군과 더불어 세계적 강군이었다. 육군사관학교는 황족도 입교했으며 제국대학과 같이 최고의 수재들이 실전위주의 강인한 훈련을 받았다. 미국의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와 같이 대학교육을 시키는 것은 낯선 것이었다. 육군대학은 독일을 본떠 최고의 군사학 교육과 연구를 했다. 일본군은 청일전쟁, 러일전쟁, 세계 1차대전, 만주사변, 중일전쟁 등으로 줄곧 이어진 전쟁을 통해 단련되었다.
태국은 태평양전쟁에서 일찍이 일본에 편들었다. 그러면서도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지 않았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독립을 유지했던 비결이다. 태국은 왕실과 군부, 불교가 하나로 되어 국가 적통을 유지하는 강인한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