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D-209일 ‘연륜과 경륜’ 갖춘 원로들 지혜 구할 때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대통령선거가 200일 남짓 남았다. 여야 정치인과 네티즌들의 막말이 줄지 않고 있다. “화는 입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말을 뱉기 전에 연륜과 경륜을 구할 원로들이 우리 사회에는 정녕 없다는 말인가?

20대 대선 일정 <그래픽 연합뉴스>

살아가면서 연륜과 경륜은 늘 필요하다. 연륜과 경륜이 쌓여 진정한 지혜가 생긴다. 연륜은 무엇이고 경륜을 무엇일까? 연륜은 여러 해 동안 노력이나 경험으로 이룩된 숙련의 정도 또는 그러한 노력이나 경험이 진행된 세월을 말한다.

경륜은 큰 포부를 가지고 어떤 일을 조직적으로 계획하는 능력을 말한다. 또 그러한 계획이나 포부 혹은 세상을 다스리는데 필요한 경험이나 능력을 일컫는다.

고려장(高麗葬) 풍습이 있었다. 고려장은 고려인이 효도심이 없어서 있었던 일일까?

고려장 풍습이 있던 때 박 정승은 노모를 지게에 지고 산으로 올라갔다. 그가 눈물로 절을 올리자 노모는 “네가 길을 잃을까봐 나뭇가지를 꺾어 표시를 해두었다”고 말한다. 박 정승은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을 생각하는 노모를 차마 버리지 못하고 몰래 국법을 어기고 노모를 모셔와 봉양을 했다.

그 무렵 중국 수(隋)나라 사신이 똑같이 생긴 말 두 마리를 끌고 와 어느 쪽이 어미이고 어느 쪽이 새끼인지를 알아내라는 문제를 낸다. 못 맞히면 조공을 받겠다는 것이었다. 이 문제로 고민하는 박 정승에게 노모가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말을 굶긴 다음 여물을 주렴. 먼저 먹는 놈이 새끼란다.”

고구려가 이 문제를 풀자 중국은 또 다시 두 번째 문제를 냈다. 그건 네모난 나무토막의 위아래를 가려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노모가 말했다. “나무란 물을 밑에서부터 빨아올린다. 그러므로 물에 뜨는 쪽이 위쪽이란다.”

고구려가 기어이 이 문제를 풀자 약이 오를 대로 오른 수나라는 또 어려운 문제를 제시했다.

그건 재(灰)로 새끼를 한 다발을 꼬아 바치라는 것이었다. 당시 나라에서 아무도 이 문제를 풀지 못했다. 또다시 박 정승 노모가 하는 말이 “얘야, 그것도 모르느냐? 새끼 한 다발을 꼬아 불에 태우면 그게 재로 꼬아 만든 새끼가 아니냐?”

중국에서는 모두 고구려가 이 어려운 문제들을 풀자 “고구려는 동방의 지혜 있는 민족”이라며 다시는 깔보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수나라 황제 문제(文帝)는 “고구려를 침범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런데도 이 말을 어기고 아들인 양제(煬帝)가 두 번이나 침범해와 113만명이 넘는 대군으로도 고구려의 을지문덕 장군에게 대패하고는 나라가 망해 버렸다.

그 다음에 들어선 나라가 당(唐)이다. 당도 고구려를 침범해 온다. 그러다가 안시성 싸움에서 깨지고 당시 황제인 태종(太宗)은 화살을 눈에 맞고 애꾸가 된 채로 죽는다.

노모의 현명함이 세 번이나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고 왕을 감동시켜 이후 고려장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그리스의 격언에 “집안에 노인이 없거든 빌리라”는 말이 있다. 삶의 경륜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잘 보여 주는 말이 아닌가?

국가나 사회에도 지혜로운 원로가 필요하다. 물론 노인이 되면 기억력도 떨어지고, 남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고, 자신의 경험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연륜은 기억력을 빼앗은 자리에 통찰력이 자리잡는다,

노인의 지혜와 경험을 활용하는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국가는 발전할 수 있다. 하지만 조직에서 원로들이 늙었다는 이유로 소외당하기 십상이다. 원로들도 젊은이들에게 사양과 양보를 하고 뒷전에 조용히 살펴보는 경향이 있다. 늙으면 기억력이 쇠퇴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혜나 경륜마저 늙는 것은 아니다. 천재가 경륜을 이기지 못하고, 경륜이 연륜을 이기지 못하는 법이다.

<전당서> (全唐書) 설시(舌詩)에 다음과 같은 풍도(馮道)의 글이 실려 있다. “입은 곧 재앙의 문이요, 혀는 곧 몸을 자르는 칼이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처신하는 곳마다 몸이 편하다.”(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 閉口深藏舌 安身處處牢) ‘구화지문’이란 말은 여기서 나왔다.

풍도는 당 말기에 태어났으나 당나라가 망한 뒤의 후당(後唐) 때에 재상을 지냈다. 후당 이래 후진(後晉), 후한(後漢), 후주(後周) 등 여러 왕조에서 벼슬을 한 사람으로, 그 동란의 시기에 73세의 장수를 누리는 동안 처신에 많은 경륜을 쌓은 사람으로 위와 같은 처세관을 남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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