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운하우스의 나라’ 베트남

베트남 호치민시 주택밀집구역

[아시아엔=서덕수 한동대 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20세기를 ‘집의 시대’라 규정할 정도로 주택은 우리의 역사, 문화, 기후, 관습, 경제 등을 고루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주택 정책에 이념을 투영해서 권력을 쟁취하고, 건축가들은 창의적인 주택 디자인으로 주거문화를 선도하며, 투자자들은 주택 사업을 통해 거대한 부를 축적한다. 주택이 갖는 이런 복합적인 특징 때문에 국제교류에서도 그 나라의 주택을 다각적이고 심층적으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세안 경제협력국인 베트남의 보편적인 주택 유형을 살펴보자. 한국은 인구 절반 이상인 약 1천만 가구 이상이 아파트에 거주하고 고층·고밀의 아파트 주택 유형이 대부분의 도시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아파트공화국’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동안 국내 많은 주택개발사들이 아파트 위주의 개발 비지니스 플랜을 들고 신흥성장국 베트남으로 날아갔다. 결과는 어떠했을까?

성공신화는 거의 들리지 않고 실패한 포토폴리오가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한국만큼 아파트를 잘 짓는 나라가 있을까? 세계 어디에도 아파트 평면을 이렇게 잘 뽑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K-아파트 프로젝트가 주저앉았을까? 혹시 베트남의 선호 주택유형이 아파트가 아니라면?

그래서 베트남의 거주 주택 비율을 들여다보았다. 아파트 거주 비율은 전국 기준 1%, 1천만 최대도시 호치민도 고작 5%다.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필자는 경제 수도 호치민시에 살면서 뜨거운 주택개발 붐을 생생히 실감했는데 한번은 호치민시의 최대 투자 개발지인 뚜띠엠 도시개발 지역에 들렀다. 한창 홍보 마케팅에 열 올리던 Sala타운 분양사무실을 방문해서 주택 상품 현황 및 시세를 물었다. 아파트, 타운하우스, 빌라 등 다양한 주거 상품을 홍보하고 있었는데 최고 인기상품을 물으니 의외의 답이 나왔다. 조기 분양 완료된 히트상품은 타운하우스였다.

베트남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유형으로 가로를 따라 좁은 필지에 빽빽하게 들어선 4-5층 규모의 중층고밀형 주택이다. 분양 단가도 아파트, 빌라를 제치고 최고점을 찍었다. 제곱미터(m2) 당 약 6000달러, 4-5층 연면적 400m2라보면 한 채 당 약 25억원이다. 그런데 이런 초고가에도 불구하고 조기 분양 완료되어 물량이 없다. 아파트 분양 단가는 그 절반수준인 약 3000달러로 100m2기준 약 3억원이다. 매물이 아직 30% 남았단다. 한국인들에게는 낯선 풍경이다. 베트남에서 바로 타운하우스에 열광하고 있었다.

이유는 무엇일까? 베트남의 도시 경관 발전 과정과 이면에 숨겨진 재미있는 요소를 살펴보자.

뚜띠엠 Sala 타운내 신규 타운하우스(전면) 및 빌라(후면

베트남 타운하우스 주택 유형은 환경이나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불린다. 주거 필지 형태에 따라 Row House 혹은 Parcel House(Nh?l?), 건축방식에 따라 Self-built House(Nh? d?nt?x?y), 공간구성에 따라 특히 전통지구에서는 Tube House(Nh? ?ng), 가로에 직접 면해있어 Street House(Nh? ph?), 1층 용도에 따라 Shop House(Nh? ph? th??ng m?i) 등 다채롭다. 타운하우스의 이런 다양한 호칭에는 베트남의 시대적·사회적·환경적 변화가 담겨있다.

타운하우스는 17세기 하노이 36번가와 호치민의Cho lon 지역에서 등장한 전통주거 원형에서 발전했다. 전통 양식은 현대 타운하우스보다 낮고 앞뒤 주거동으로 둘러싸인 중정 공간을 보유한 전통가옥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그 건축양식이 지역에 따라 조금씩 진화하다 1986년 베트남의 도이모이(Doi Moi) 경제개혁 이후 하노이와 호치민 중심으로 큰 변화를 가져온다.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시골 인구가 도시로 대거 유입되면서 가용주택이 매우 부족해졌다.

1989년 이후 도시인구는 20년 동안 1250만명에서 2500만명으로 두배 이상 증가했고 2040년에는 도시인구가 약 5000만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추세에 비해 도시의 주택공급량은 턱없이 부족해 여기저기 슬럼이 난립하기 시작했다. 도시화 및 도시근교 산업단지 개발로인해 가난율은 3%대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주거(Permanent housing)에 거주하는 인구는 약 30%(호치민 기준)에 불과하다. 70%가 임시주택이나 반영구주택에서 살아간다. 따라서 치솟는 주택수요를 위해서 보다 콤팩트한 필지 분할이 불가피했고 전통적 공간구성 센터인 중정은 사라졌다.

대신 가로에 면해서 하부 상업와 상부 주거기능 복합이 최적화 된 오늘날의 직사각형 박스형의 타운하우스가 도시 구석구석 들어선다. 이런 도시발전과 함께 진화한 타운하우스가 베트남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타운하우스 공간의 탄력적 사용에 베트남은 열광한다. 아파트 및 빌라와는 달리 타운하우스 소유주는 모든 층을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어 매력이다. 특히 가로에 면한 1층은 식당, 커피숍, 리테일 등 다양한 개인 비지니스 공간으로 집주인이 직접 활용하거나 상업적 임대를 준다. 수요는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오토바이 이동 문화인 베트남에서 흥미롭게 관찰되는 현상이다. 버스 및 지하철 중심의 한국의 대중교통 문화에선 역세권 중심으로 상권이 발달하지만 door-to-door 통행 이동에 최적화된 오토바이 문화에서는 가로 전구간이 상권이라고 보면 된다. 오토바이를 보도 위에 빽빽이 세워놓고 커피를 마시고 쌀국수를 먹는 경관은 베트남에서 매우 흔한 일상이다.

이에 따라 가로변 타운하우스의 1층공간의 상업적 이용 수요는 끊이지 않는다. 지방도시로 가면 1층 용도가 보다 다양하다. 비지니스뿐 아니라 일반 거실로 이용되거나 심지어 자동차 및 오토바이 주차장인 경우도 허다하다. 게다가 타운하우스의 1층 상부층은 대개 주택 소유주가 주거공간으로 사용하거나 주거용/업무용으로 임대를 주는 경우가 흔하다. 층마다 임차인이 다른 경우도 발견된다. 1층은 상업용, 2층은 업무용, 3층은 주거용 등 다양한 구성을 가능케 하는 것은 내부 벽구조의 탄력적 변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가로세로 각각 4m, 20m의 길쭉한 필지 위에 공간이 구성되고 내부 공간을 구성하는 벽은 구조 기능이 없어 원하는 공간 수요에 맞게 자유롭게 변형이 가능한 것이다. 아파트와는 달리 타운하우스에서만 가질수 있는 유연한 용도 변경에 베트남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이다.

둘째는 대도시 중심으로 해마다 급증하는 임대수요에 대응하는 적정한 모델이기 때문이다. 심각한 대도시 주거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임대용 사회주택아파트 공급을 권장하고 있으나 사업성이 없어 민간시장에서의 공급은 미비한 실정이다. 그 수요를 대부분 허름한 타운하우스가 채우고 있다. 베트남 전체의 15%(약 330만 세대)가 임대 거주민이고 대도시 호치민으로 가면 26%로 증가한다. 또한 호치민과 하노이로 가는 이주민 비율로 보면 전체의 64%로 더 올라간다. 갈수록 증가하는 대도시이주 비율을 감안하면 아파트나 빌라에 비해 보다 다양한 공간구성이 가능하고 수직적 분리를 통해 다양한 임대수요를 채울 수 있다.

필자가 강의했던 호치민 통둑탕대학 학생들을 예를 들면 학급 전체 50여명 중 10명 내외가 호치민 출신이고 나머지 40여명은 타지에서 유학 온 학생들이다. 이들 중 90% 이상이 타운하우스 방 하나를 임대해서 살고 있고 다른 주거 유형에 비해 공간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다른 사례로 최근 호치민에 진출한 한인 사업가는 새로 조성된 타운하우스 한 채 전체를 임대해서 1층은 업무용 사무실, 2-3층은 직원 기숙사용 임대, 4층은 사업가 가족거주용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공간의 차별성, 독립성, 연결성 관점에서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한다.

셋째는 타운하우스로 인한 토지 확보의 안정성이 큰 매력이다. 일반 공산품은 쓰면 쓸수록 감가상각이 발생하는 반면 주택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가 일반적으로 상승한다. 분명 주택의 구조, 마감이 노후화되어 가치가 떨어져야 정상인데 그렇지 않다. 주택이 세워진 토지의 영구적 가치 때문이다. 토지는 역세권, 상권, 인프라 등 주변 개발 여부에 따라 그 가치가 변하는 매우 탄력적 자산이다. 아파트와는 달리 타운하우스를 구매한다는 것은 베트남에서 ‘토지+주택’이라는 패키지 상품 구매로 인식된다.

NHO 타운하우스 프로젝트, 하롱 드래론힐시티 타운하우스

토지에 대한 애착은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베트남 사람들에겐 유별나다. 사회주의 국가로 토지 소유는 공식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영구임대라는 명목으로 우회적으로 소유권을 인정하는 터라 더 그런지 모른다. 안정적인 토지 소유에 대한 갈망이 타운하우스 보유로 이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도시를 벗어난 호치민 근교 중소도시에 아파트를 개발해보면 아무리 저렴해도 시행사는 미분양 리스크를 안아야 한다. 한 채당 약 5만달러 이하 사회주택용 아파트에도 사람들은 주저한다. 5만달러면 주변에 살 수 있는 토지가 여기저기 널려 있기 때문이다. 그 가격이면 토지를 구매해 허름하게라도 자조주택(Self-built) 타운하우스를 짓는 선택이 더 합리적이라 판단한다.

베트남 내 타운하우스 중심의 주택공급 현상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전통이자 문화이며 주요 투자상품이기 때문이다. 전문적 주택건설보다는 세세한 토지 소유주들이 영세한 로컬 건설업자와 함께 스스로 허름한 타운하우스를 짓는 자조주택비율이 월등히 높은 것도 이런 이유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1994년 그 비율이 전체 주택공급량의 95%에 육박했고 경제개혁 이후 주택 및 토지시장이 형성되어 민간기업 중심의 전문적 주거개발 사례가 증가했다. 하지만 2014년 기준 불과 15%에 그치고 75%는 여전히 자조주택 타운하우스를 짓고 있다. 베트남 도시인구의 지속적 증가와 주택부족 현상, 오토바이 중심의 이동 문화와 활발한 가로형 상업환경, 주택의 복합적 이용 및 임대수요 증가, 토지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등이 계속 되고 있어 신규 프로젝트에서도 타운하우스 분양에 대한 열기는 여전히 뜨겁다.

베트남에 주택 사업을 구상하는 한국인 투자자들은 아파트 중심의 한국식 사고를 버리고 베트남식 개발 포토폴리오를 짜야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 문화적·공간적 국제협력을 구상하는 전문가들도 타운하우스의 나라 베트남을 공부하고 가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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