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감사하다’? ?정호승
태풍이 지나간
이른 아침에
길을 걸었다
아름드리
프라타너스나
왕벚나무들이
곳곳에 쓰러져
처참했다
그대로 밑동이 부러지거나
뿌리를 하늘로
드러내고 몸부림치는
나무들의 몸에서
짐승 같은 울음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키 작은 나무들은
쓰러지지 않았다
쥐똥나무는 몇 알
쥐똥만 떨어드리고 고요했다
심지어 길가의
길가의 풀잎도
지붕 위의 호박넝쿨도
쓰러지지 않고
햇볕에 젖은 몸을
말리고 있었다
내가 굳이 풀잎같이
작은 인간으로
만들어진 까닭을
그제서야 알고
감사하며 길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