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프롬나드 인 러시아’···문학·예술의 보물창고 ‘러시아박물관’으로의 초대

톨스토이박물관

[아시아엔=김원일 <모스크바프레스> 발행인, 전 모스크바한인회장] 2020년은 한러수교 30년이 되는 해. 때 맞춰 러시아와 관련해 주목을 끌만한 책이 나왔다. 러시아문학과 러시아 문화에 관한 에세이를 담은 <프롬나드 인 러시아>가 바로 그것이다. <프롬나드 인 러시아>는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받아 발간됐다.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은 한동안 예술인들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였다가 2018년 지원사업이 부활하면서 저자가 그 혜택을 입게 된 것이다.

이 책은 푸시킨과 톨스토이 박물관, 체호프와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영지 등 모스크바 근교의 6개 박물관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인 청주대 김은희 학술연구교수는 “매년 수천만 명의 방문객 수를 자랑하는 모스크바 박물관들을 살펴보는 것은 러시아 문학, 러시아 예술, 러시아인 나아가 러시아와 소통하는 또 하나의 길”이라며 “이를 통해 마침내 인간 본성에 접근해가는 중요한 방법이 되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책은 요컨대 러시아인과 러시아 문화에 대한 이해와 소통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이 땅에 나오게 된 셈이다.

프롬나드 인 러시아

2016년 기준으로 러시아의 박물관은 모두 2742곳, 박물관 방문객 수는 1억2360만명에 이른다. 러시아 문화성 자료에 근거한 수치로 국립박물관만 계수한 것이다. 국립박물관이 아닌 시립이나 기관 소속, 사설 또는 사회재단 박물관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엄청날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정확한 수치는 산출된 적이 없다고 한다. 몇몇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만도 400곳이 넘는 국립 및 사립 박물관과 그 분관들이 있는데, 447곳 또는 445곳으로 추산된다. 모스크바에는 국립박물관만 65개, 모스크바주(州)에는 35개가 넘는 저택-박물관, 보존지역-박물관 등이 있다. 가히 박물관의 나라, 박물관의 도시라고 불릴 만하다.

이같은 러시아 박물관의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하며, 저자 김은희 교수는 서문에서 ‘완전한 우연으로부터 중대한 발견이나 발명이 이루어지는 것’을 뜻하는 세렌디피티(serendipity)란 단어를 원용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책을 펼쳐 저자와 함께 러시아를 산책하러 나선 독자들도 ‘모스크바와 모스크바 근교, 러시아인의 일상’을 걸으면서 그 길의 끝에서 혹시 얻게 될 지도 모를 어떤 결과에 주목하지 않기를 바란다. 저자와 함께, 때로는 독자 혼자 오롯이 그 길을 산책하면서 결국은 누구보다 소중한 자신을 마주하고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을 온전히 들여다보길 감히 바라본다. 결국 남을 통해 자신을 돌아볼 수밖에 없기에 저자가 소개하는 러시아 산책길과 그 길에서 만나게 될 여러 사연들이 결코 먼 나라 타인들의 이야기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톨스토이 박물관

서문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것이 200년이 훌쩍 넘은 푸시킨의 결투와 작품 이야기든, 지금도 우리가 그의 글들을 읽으면 나의 고민, 나의 현재로 느끼게 되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 체호프의 이야기이든, 21세기 러시아인이 살아가는 이야기든, 우리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일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며 오히려 앞서 소개한 ‘세렌디피티’란 말처럼 러시아를 만나가는 우연들이 결국은 자신이라는 중대한 발견에 도움을 줄 것이라 믿는다.”

김은희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박경리문학상’을 수상한 러시아 작가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의 작품 <소네치카>를 소개한다. 저자는 읽기 중독자였던 작품의 주인공 소네치카의 일화를 들면서 “모스크바와 그 근교의 여러 작가 박물관과 예술 박물관들을 돌아보면서 ‘왜 이들은 이토록 창작 활동에 매달렸는가, 왜 또 우리는 이토록 글을 읽고 그들의 작품들에 목말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고 말한다.

그는 “박물관으로 남은 작가들은 그래도 당대의 평가를 뛰어넘고 시대를 지나 살아남은, ‘위대한’이란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창작자들”이라며 “하지만 시대의 평가를 뛰어넘지 못하고 이름도 없이 사그라진 작가들도 허다하다”고 했다. 저자는 “우리는 읽고 또 쓴다. 누군가의 말처럼 ‘자신을 위해’ 누군가는 읽고 누군가는 쓴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러면 왜 읽고 또 쓰는 것일까? “그 목적은 같다. 가고 가다 보면 그 길 끝에서 결국 자신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어지는 저자의 말이다. “다만 우리가 무엇이 되고자, 또는 무엇을 이루고자 책을 읽거나 쓰는 것이 아니라면 구원은 그 안에 있다.”

이 말은 그대로 이 책의 집필 의도인 셈이다. 저자 말대로 이 책 <프롬나드 인 러시아> 안의 러시아 박물관들을 산책하는 시간은 러시아인과 러시아 문화, 러시아문학에 가까워지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뿐인가. 저 먼 나라 러시아, 저 먼 곳 모스크바와 모스크바 근교박물관으로의 이동은 자기 자신과 더 내밀해질 수 있는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확신도 든다.

저자 김은희는 한국외국어대 노어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모스크바국립대에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아다. 월간 <한국산문>으로 수필가로 등단하였으며, 한국문인협회, 한국산문작가협회, 한국노어노문학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청주대 학술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러시아 명화 속 문학을 말하다>, <그림으로 읽는 러시아>, 역서로 <현대 러시아문학과 포스트모더니즘 1, 2>, <겨울 떡갈나무>, <유리 나기빈 단편집>, <금발의 장모>, <부랴트인 이야기>, <에스키모인 이야기>, <야쿠트인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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