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대로 알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후쿠시마 기타카타 라멘’

후쿠시마 기타카타 라멘

[아시아엔=심형철 <아시아엔> 자문위원] 1958년 8월 25일은 세계 최초 인스턴트 라면인 ‘닛신 치킨라멘’이 발매된 날이다. 봉지라면인데 특이하게도 끓이지 않아도 되고, 스프가루도 따로 들어 있지 않았다. 이 라면은 면을 그릇에 담고 정량의 뜨거운 물만 부어 뚜껑을 덮고 3분 정도만 기다리면 완성이다. 컵라면 같은데, 스프를 넣어 국물 맛을 내는 게 아니라 면에 이미 조미가 되어 있어서 면을 익히면서 국물맛을 내는 방식이다. 봉지 겉면을 보면 라면 위에 달걀과 파가 올라가 있는데 실제로 면 위에 달걀을 올리기 편하도록 가운데가 오목하게 움푹 들어가 있다.

일본 라멘(ラーメン)은 중국식 면인 중화면 위에 돼지고기 국물(돈코츠)이나 된장 국물(미소), 간장 국물(쇼유) 등을 부은 다음 토핑으로 챠슈·달걀·김·파 등을 얹은 요리다. 역사적으로는 1488년 승려들이 지금의 라멘과 비슷한 형태인 게타이멘(径帯麺)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1697년에는 미토번(水戸藩)의 번주 도쿠가와 미츠쿠니(徳川光圀, 유학자로 <대일본사> 편찬)가 명나라의 실학자였던 주순쉐이(朱瞬水)와 교류하면서 먹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당시 라멘은 일반인들이 먹는 음식이라기보다 일부 계층만 접할 수 있는 귀한 음식에 가까웠다. 실제로 일본에 라멘이 유행하기 시작한 건 1859년 이후다.

개항 후 중국인이 대거 일본에 들어오면서 요코하마에는 차이나타운이 형성되었다. 1870년에는 일본 최초의 중화요리점이 이곳에 등장했다. 당시에는 라멘 대신 ‘난킹소바’로 불렸다. 1884년 항구도시인 하코다테(函館)의 요와켄(養和軒)이라는 중국요리점에서 낸 신문광고를 보면 ‘난킹소바 15전’(현재 가치로는 2000~3000엔) 이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이를 계기로 난킹소바라는 이름이 회자됐다.

1899년에는 규슈의 작은 항구도시 나가사키의 시카이로(四海楼)라는 중국음식점에서 ‘짬뽕’이라는 이름을 가진 음식이 등장한다. 라멘과 비슷한 면요리지만, 라면이 육수를 면 위에 붓고 각종 고명을 올린다면 짬뽕은 해산물·고기·야채 같은 재료를 먼저 볶은 후 육수와 면을 넣고 함께 끓였다. 맛은 우리가 중국음식점에서 흔히 먹는 얼큰하고 매콤한 짬뽕과 달리 전혀 맵지 않은 흰 짬뽕에 가깝다. 게다가 면 굵기도 한국의 짬뽕보다 얇고 구불구불해서 식감이 전혀 다르다. 일본어로는 ‘ちゃんぽん’(챰뽕)이라고 쓰는데 “한데 섞여 있다”는 의미를 지닌다. 다양한 식재료를 섞은 음식이라는 뜻이다.

1906년에는 일본 최초의 라멘전문점까지 생긴다. 도쿄 아사쿠사(浅草)에 있는 라이라이켄(来々軒)이라는 곳이다. 라멘 한 그릇이 6전(현재 가치로 300엔)으로 저렴해 연일 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고 한다. 이때는 라멘이 아니라 시나소바(시나=차이나)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지금도 영업 중인 라멘 전문점 중에 도쿄에서 가장 오래된 곳은 1914년 창업한 도쿄 니혼바시 카야바쵸의 타이쇼켄(新川大勝軒飯店)이라는 식당이다.

한편 라멘이라는 명칭은 언제 처음 사용됐을까? 1923년 삿포로에 다케이에쇼쿠도(竹家食堂)라는 중국요리점이 등장하는데 이곳의 주력 메뉴인 로스면(肉絲麺)이 바로 일본 3대 라면인 삿포로 라멘의 기원이다. 물론 맛은 지금과는 꽤나 달랐다. 주방장이던 광동성 출신 중국인 왕원차이(王文彩)는 손님으로 오는 중국인 유학생들을 의식해 다른 이름 즉 ‘라멘’을 고안해냈다고 한다.

라멘 전문점이 생기면서 라멘 인기도 높아졌으나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에는 많은 식당들이 잠시 문을 닫았다가 노점 형태로 다시 대거 등장했다. 값도 싸고, 간편하며 빠르게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음식인 까닭에 전쟁 후 팍팍한 삶의 일본인에게 너무나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라멘 인기는 계속되고, 마침내 가정집에서도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라멘이 고안됐다. 이전까지 주로 츄카(중화 中華) 소바라고 불리던 것이 전국에 라멘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가 바로 인스턴트 라면인 ‘닛신 치킨라멘’의 등장이다.

일본에 가면 꼭 맛봐야 할 일본 3대 라멘을 살펴보자.

1. 홋카이도 삿포로 라멘
‘삿포로 라멘’이라고 하면 보통 ‘미소라멘’을 떠올릴 정도로 미소라멘 인기가 좋다. 하지만 사실 쇼유(醤油, 간장), 미소(味噌, 된장), 시오(塩, 소금) 라멘 모두 각각의 매력이 있다. 삿포로 라멘은 추운 겨울에 국물이 빨리 식지 않도록 국물 표면에 기름막을 만드는 걸로 유명하다. 돼지사골로 육수를 내고 고명으로 챠슈(チャシュウ, 얇게 썬 돼지고기), 파, 죽순을 올리는 것은 다른 지역의 라멘과 같지만, 볶은 야채를 올리고 미소라멘에 챠슈 대신 다진고기 고명을 올리는 특징이 있다. 삿포로에는 아지노 산페이(味の三平)라는 유명한 라멘 전문점이 있는데 이곳의 미소라멘이 바로 삿포로 라멘의 전형이다.

2. 후쿠오카 하카타 라멘
후쿠오카는 라멘의 성지로 꼽힌다. “라멘 먹으러 일본 갔다 온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국에서 먹을 수 있는 일본 라멘은 후쿠오카 라멘을 재현한 경우가 많다. 바로 걸쭉한 돼지사골 국물로 유명한 돈코츠(豚骨)라멘이 하카타 라멘의 대표메뉴다. 다른 지역의 라멘과 다른 점 중 하나는 면이 매우 가늘고, 꼬불꼬불하지 않다는 것이다. 면이 가늘어서 국물이 잘 배어들기는 하지만 금세 풀어져
다른 지역에 비해 1인분이 조금 적은 편이다. 먹다가 부족하면 ‘카에다마’(替え玉, 면 추가)라고 외쳐 보자. 참고로 후쿠오카에 가서 라멘을 주문할 때는 이것저것 선택해야 할 게 많다. 맛의 진한 정도나 매운 정도, 면의 익힘 정도는 물론 마늘·파·챠슈·김·계란 등을 넣을지 말지 결정할 수 있다.

3. 후쿠시마 기타카타 라멘
기타카타 라멘은 삿포로 라멘이나 하카타 라멘과 달리 맑은 국물과 깔끔한 맛이 일품이다. 돼지사골 육수와 멸치육수를 섞은 쇼유(간장) 국물이 기타카타 라멘의 매력이다. 일본 라멘의 특징은 지역에 따라 국물에 잘 어울리는 면을 쓴다는 점이다. 기타카타는 다른 지역에 비해 약간 두껍지만 부드럽고 수분 함량이 높은 쫄깃한 숙성면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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