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산책] 베스트작가 고정욱의 ‘장애, 너는 누구니?’


한살 때 소아마비로 1급 장애인이 된 고정욱은 “밖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없었던 어린 시절, 동화책을 많이 읽었던 것이 작가가 되는 데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가 장애를 다룬 동화를 많이 쓴 것은, 우리 사회가 아직까지도 장애에 대해 너무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고정욱이 최근 도서출판 산하에서 윤정주의 그림 도움을 받아 <장애, 너는 누구니?>를 냈다. 그는 “함께 사랑하고 배려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라고 했다.

작가는 고백한다. “처음에는 조금 무거운 마음으로 장애를 다룬 동화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많은 독자들이 저의 작품들을 사랑해 주고, 열린 가슴으로 장애 문제를 자신의 고민으로 받아 주어 작가로서 커다란 보람을 느낍니다.”

이 책은 장애인복지법에서 정한 장애유형에 충실하되 시대와 사회 여건에 따라 변화하는 점을 반영했다. 따라서 이 책에서 다루는 장애는 안면, 지체, 시각, 청각 및 언어, 뇌병변, 지적, 발달 및 학습, 신장, 심장장애 등이다. 삽화와 그래픽 등으로 꼼꼼히 보충설명하고 있어 얼핏 보면 어린이용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른들이 꼭 읽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아이들보다 장애인이 될 확률과 장애를 갖게 될 가족을 돌보게 될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사례와 예화를 적절히 버무린 몇 대목을 소개한다.

“윈스턴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을 끝내기 위한 회담을 하러 얄타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거친 숨을 쉬며 산소호흡기 신세를 졌습니다. 몸이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졌기 때문입니다. 난청과 결막염과 폐렴, 그리고 탈장까지 그를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를 쓰러뜨린 건 바로 뇌졸중이었습니다. 처칠이 처음 뇌졸중을 겪은 것은 1941년이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의사가 적절한 조처를 취해 무사했습니다. 두 번째 뇌졸중은 1952년에 일어났습니다. 머리가 멍해지고, 혀가 꼬부라지며, 언어 장애가 왔습니다. 기억력도 떨어지고 날짜도 알지 못할 정도가 되어 업무를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도 처칠은 계속되는 발작과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일어나길 반복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장애인으로 서서히 쇠약해지다가, 1965년 9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는 처칠을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 강한 의지로 영국을 구한 수상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110~111쪽)


다음은 수화에 대해 설명한 대목.

“어떠한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할 때 청각 장애인은 건청인(청각장애인이 아닌 사람)과 방법이 다릅니다. 손짓, 몸짓, 얼굴 표정 등을 사용합니다. 따라서 수화는 청각 장애인들의 의사소통에서 매우 중요한 수단이라 할 수 있지요. 수화는 인류가 이 지구상에 태어났을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역사가 참 길지요? 이때의 수화는 자연 발생적인 손짓, 몸짓이었습니다. 그러다 18세기 프랑스 파리에서 수화식 학교가 시작되면서 문법적 수화가 태어났습니다. 이전에는 교육 현장에서 수화가 언어 습득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금지시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흐르고 청각 장애인들의 정확한 의사소통을 위해 수화의 필요성이 강조되어 이제는 하나의 언어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수화의 원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의미를 전달할 때 우리는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당신만 사랑합니다’, ‘나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어요’ 등등. 하지만 수화로는 이렇게 다양하게 표현할 수 없습니다. ‘나’를 뜻하는 동작과 ‘당신’을 뜻하는 동작, 또 ‘사랑’을 뜻하는 동작을 이어서 함으로써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핵심적인 의미만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수화는 이처럼 다양한 표현을 하기는 힘들지만, 청각·언어 장애인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참 아름다운 언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96~97쪽)

저자는 장애인에 대한 명칭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일러준다. 차별 대신 평등과 애정을 담은 걸로 말이다. 병신, 벙어리, 귀머거리, 정박아, 바보, 난쟁이, 절름발이, 소경 등은 나쁜 명칭이며 장애인, 언어 장애인, 청각 장애인, 지적 장애인, 저신장 장애인, 지체 장애인, 시각장애인 등으로 불러야 한다.

<장애, 너는 누구니?>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장애를 대표적인 유형으로 가른 다음, 각 꼭지마다 동화를 달고 지식과 정보를 풍성하고 다양하게 붙였다. 작가 자신이 지체장애인이기에 장애 때문에 아프고 시린 사람들의 마음을 섬세하게 읽고 이들의 생활을 객관적이고 진실하게 정리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장애인들의 상황과 심리를 서정성 높은 그림으로 해석하고, 경쾌한 감각으로 표현한 화가 윤정주의 그림도 눈길을 끈다. 마침 4월은 ‘장애의 달’이고, 4월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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