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보리피리’ 김시천 “그건 옛날 얘기일 뿐이라고 말들 하지만”

보리피리

어릴 적엔 벌거숭이로
놀아도 좋았지
맨발이어도 좋고
배가 고파도 좋았지

보리피리 꺾어 불며
종일 혼자라도 좋았지
보리밭 푸른 바다 한가운데를
헤엄치며 놀았지

누이가 걸어준 감꽃 목걸이
배고프면 하나 둘
따먹으며 놀았지

감자 서너 개 으깬 보리밥에
고추장 싹싹 비벼 먹고
멍석 깔고 누우면
무서운 옛날얘기
밤 깊은 줄 몰랐지…

돌담 아래 호박꽃 속에
숨어 있는
벌과 숨바꼭질하다가
아차, 그만 벌에 쏘여
온 집안을 홀딱 뒤집어 놓았지

아, 그 된장 !
어디든 갖다 바르면
척척 약이 되던
벌 쏘인 손가락에
어머니께서 발라주시던
그 된장 !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고 말하지만

그건 옛날 얘기일 뿐이라고
말들 하지만
어쩌랴 내 가슴은
아직 보리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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