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한반도 통일과 인류 평화를 위한 몽골 정부의 역할

김정은 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

[아시아엔=테르비시다브바 덴데브 몽골 국회의원, 전 경제부총리] “시간을 시간대로 머물지 않고 홍채풀은 항상 푸르게만 있지 않다”는 몽골 속담이 있다. 모든 것은 시간을 따라 변한다는 뜻이다.

정권이 바뀌는 것이 어미양이 새끼를 낳는 것보다 쉽다는 말도 있다. 인간의 정신이 나쁘게 변하여 썩어남을 수 있지만 모든 게 고인물처럼 항상 조용히 있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이 생각이 나의 마음에 자리 잡힐 무렵에 평창동계올림픽 이후로 조선반도(한반도) 정세가 매우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마른 하늘에 번개 치듯이 매우 뜻밖의 일들이 일어나고 세계를 들썩이게 하는 장면을 우리

1962년 10월 16일부터 10월 28일까지 13일 동안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두 체제와 당시 세계의 두 강적이던 미국과 소련 사이에 핵전쟁이 오늘 내일 일어날 것이라며 전세계는 이에 이목을 집중한 바 있다. 당시 미국 통수권자로 취임한 젊은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과 소련의 나이많은 지도자 흐루시초프가 어떤 의견일치를 볼 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핵보유를 통해 자국을 이끈 것처럼 바로 그것을 통해 핵위협에서 세계의 위기를 구할 수 있었다. 소련은 쿠바에서 핵 미사일을 철수하였고, 미국은 쿠바를 다시는 공격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 터키에 배치했던 미사일들을 비밀리에 철수했다. 이로써 세계는 핵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케네디와 후루시초프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1963년 핵무기 실험중지 조약에 서명을 하였다.

당시 후르시초프 나이는 69살, 케네디는 46살이었다. 역사는 다시 되풀이 되고 있다.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 국가와 서방국가 사이의 관계가 악화돼 세계 3차대전이 일어난다고 걱정하고 있던 1985년 소련의 고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 사에에 역사적인 만남이 일어난 것이다. 말 안장의 앞뒤처럼 양쪽 반대편으로만 상상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제네바에서의 두 정상의 상봉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레이건 대통령 각하, 우리 뒤에는 지구가 있습니다”라는 유명한 발언을 하면서 ‘핵전쟁 방지에 관한 선언문’에 서명함으로써 동서냉전을 종식시킬 수 있었다. 그때 로날드 레이건 나이는 74살, 미하일 고르바초프 나이는 54살이었다.

물과 불처럼 수화상극(水火相剋)이던 한민족이 무력으로 싸우는 게 아니라 평화의 힘으로 만나는 것과 같은 갑작스러운 변화가 빛의 속도로 지금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다.

유엔기 아래 모인 63개국을 일방(一方)으로 하고, 소련과 중국 등 소수 사회주의 국가가 타방으로 지원하여 3년 1개월 2일간, 총 1129일 동안 서로 죽기살기로 싸워 양쪽에서 수백만의 군인과 일반인이 목숨을 잃은 것이 바로 ‘조선전쟁’(한국전쟁)이었다.

1953년 7월 27일, 38선을 기준으로 조선반도는 다시 둘로 갈라지고 무장 병력을 빈틈없이 배치하고 군견들이 감시하며 몇층 높이의 철조망으로 둘러막고 어디가 어딘지 모를 국경선으로 둘러싸인 한반도. 그곳에 하나의 민족이 형제와 친척들이 서로 갈라진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아무런 연계도 없고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쏘아 도발할지 모르는 두 나라 사이에 정상회담과 고위급 방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친형제처럼 만나 정상회담의 생생한 현장을 전세계에 보여주었다.

세계에서 고립돼 혼자 남아 있는 것 같았던 젊은 지도자가 이웃나라를 방문하고 대표단을 각국에 보내기 시작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고려항공편으로 중국을 두 번이나 방문해 중국 시진핑 주석과 회담을 했다. 이에 대해 외신들은 “중국은 한반도 문제를 소홀히 여기지 않고 있다”고 긴급 타전했다. 북한의 젊은 김정은 위원장이 한때 트럼프를 정신 나간 미치광이라고 말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을 “키 작고 뚱뚱한 자가 나를 미친놈이라고 했다”면서 북한과는 대화가 전혀 안 될 것 같다고 언론에 토로했다. <뉴욕타임스>는 “호전적인 두 나라의 지도자가 서로를 원수로 여기며 보복의 발언을 이어가면서 전쟁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미치광이라는 말은 1980년부터 38년간 우리 신문에서 10번 정도 사용됐던 단어”라고 덧붙였다. 서방언론들은 트럼프와 김정은의 대화를 1면에 대대적으로 보도하곤 했다.

하지만 무력을 동원할 것처럼 서로 으르렁대던 두 나라 지도자들은 언제 그랬던가 싶게 두 차례 회담을 했다. 몽골사람들은 이런 말을 종종 한다. “사람은 대화로 이해를 하면서 나이 차이를 극복하며, 서로 상반되는 사상의 벽을 무너뜨리고 발전지향적인 불씨를 지핀다.” 국가와 국민 앞에 지닌 사명을 끝까지 인식할 때 자신을 둘러싸고있던 차이의 벽을 허물고 진심으로 대화를 한다면 역사적인 결정이 나올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지도자들 사이의 역사적 회담에서 세계는 한반도가 핵 없는 지역이 되기를 바란다. 또 그와 동시에 장벽으로 갈라져 사는 북남(남북) 형제들이 통일을 바라고 있다. 정세가 이렇듯 빠르고 상상 외로 평화로운 가운데 진척되고 있는 것과 동시에 우리 나라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는 노인들이 말하는 ‘입안에 들어온 버터’와 비교할 수 있다.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두 지도자의 차기 정상회담을 우리 몽골에서 하길 제안한다.

800년전 징키스칸 대왕은 전세계를 하나의 깃발 아래 통합하여 통치할 때 종교와 사상면에서 어떠한 차별도 하지 않았다. 이러한 몽골의 정치이념은 오랜 동안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

한반도 문제해결에 주요 역할을 하는 나라들처럼 몽골도 남북한 양국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며 물심양면으로 상호 도움을 주고 받는 사실은 전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70년전인 1948년 10월 15일 몽골은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오늘까지 친선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의 조부인 김일성 주석은 1956년과 1988년 몽골을 공식 방문했다. 몽골-북한 양국이 얼마나 가까운 관계인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전쟁 당시 몽골은 북한에 가축 22만6000마리와 식료품과 물자를 보냈다. 또한 전쟁고아 200여명을 교사들과 함께 우리나라에 데려와 1952년부터 1959년까지 7년간 돌보고 키워서 보낸 아름다운 역사도 있습니다. 북한사람들이 수년전부터 우리나라에서 노동계약을 맺고 몽골의 건설 인력으로 활약하고 있다.

북한은 1966년 몽골이 홍수 피해를 입었을 때 많은 건설자재와 장비를 보내주었다. 또 수도 울란바타르 등에 있는 김일성·김정일·김정숙 등의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는 유치원에 물질적 지원을 하고 있다. 몽골의 이들 유치원 원장들은 북한의 초청으로 평양 등을 방문하고 있다.

몽골은 1990년 한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30년 가까이 다방면에서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몽골은 러시아의 T-134 외에 항공기가 부족할 때 한국에서 보잉기종을 기증받아 세계로 향해 비행을 할 수 있었다. 1994년의 일이다. 오늘 한국은 우리나라에 무상원조를 하는 10개국 중 하나로 매년 2000만달러를 지원하고 있다. 현재 수만명의 몽골 사람들이 한국에서 일하며 선진기술을 배우고 있다. 한국은 천연자원이 많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광석 및 광업분야에서 협력관계를 깊이 하고 있다.

미국은 1990년대에 몽골이 민주주의 체제를 선택한 때로부터 친선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미국도 우리나라를 중앙아시아 중심의 ‘민주주의 부유국가’로 보고 있다. 몽골 정치가들 중 일부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모델로 삼아 국가의 발전방향으로 내다보고 있다. 두 나라의 고위급 인사들이 상호방문을 하면서 여러 차례의 후원을 해주고있다. 최근에는 미국 정부가 몽골인들에게 ‘H2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게 조치했다. 이는 두 나라 관계가 성공적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몽골의 한반도 문제에 어떤 입장을 갖고 대응해나갈 것인가? 한민족이 둘로 갈라져서 형제와 친척이 동서로 혹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로 나뉘어 28년간 不動의 냉전의 상징이 됐던 베를린장벽을 허물던 그해 나는 그 광경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바로 동독대사로 있던 시절이다. 병사들이 하나가 돼 장벽을 허물고 이에 흥분한 일부 사람들은 장벽 위에 올라가 노래를 부르며 경축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이 장면은 나의 저서 <장벽>에 그대로 담겨 있다. 두 독일이 하나의 깃발 아래 모여 하나의 국가가 된후에도 나는 그 나라에서 몽골을 대표하는 대사로 일하였다. 사상의 대립과 제도의 차이로 인하여 세워졌던 그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은 독일인들은 보다 강력하고 단합해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을 목격한 내 마음은 몹시 기쁘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정치인들은 국민의 믿음을 받고서도 이를 저버린 채 일하고 있다.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그 어떤 차이도 없고 장벽도 없고 친선적이고 단결해야 할 남북한 지도자들의 회담이 이뤄진 것이 너무도 부러웠다. 나는 기쁨을 금치 못하였다. 한반도에 정치적 화해의 기운이 돌고, 화목한 형제와 가족·친척끼리 대결을 중지하여 7천만 남북한 국민이 오랜 통일의 꿈을 실현하는데 몽골이 역사적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몽골은 미국과 남북한 정상들 사이의 회담과 남북한 당국자들의 회담을 우리 몽골에서 진행할 것을 목표로 하여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있다.

개인의 이익을 넘어 사회와 국가 나아가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우리 정부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요즘 내가 자주 몰두하는 화두다.

Terbishdavga Dendev is a four term elected parliamentarian of Mongolia. He served as Acting Prime Minister in 2014. Prior to that, he was the Deputy Minister for Food and Agriculture from 2000 to 2002, and the Minister from 2004 to 2007, and the ambassador of Mongolia to Germany from 2002 to 2004. Before entering politics, he was a businessman, founder and CEO of TBD Anduud, and engineer. His memoir, Threshold, topped the 2017 list of best- selling books in Mongolia. Read more at his web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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