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출신 알파고 기자의 ‘창립 50주년 한국야쿠르트’ 추억

코코에 탑승한 야쿠르트 판매원들 <사진=야쿠르트 홍보실>

[아시아엔=알파고 시나씨 기자] 터키에서 한국에 맨 처음 왔을 때 나는 한글을 읽을 줄 몰라 길거리 돌아다니는 것이 ‘살짝’ 불안했었다. 왜냐하면, 여기저기 붙어 있는 간판들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 간판들 속을 걸어가는 것이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일 먼저 배운 것이 한글이었다. 한글을 배우다 보니 그 불안한 감정이 싹 없어졌다.

나는 한글 배우고 나서 모든 간판을 읽으려고 애썼다. 그중에서 의미를 모르면 사전을 찾아보고, 이미 의미를 알고 있는 것들은 피식 웃고 그랬다. 그 와중에 신기한 브랜드의 간판을 읽게 되었다.

‘야쿠르트’였다. 설마 우리의 요구르트 아닌가 했다. 그걸 계기로 나는 알게 되었다. 요구르트라는 전세계적으로 통용된 단어는 원래 “응고하다” 또는 “걸쭉해지다”라는 뜻을 가진 터키어 단어 동사인 “요우르마크”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래서 눈치를 챘다. 이 ‘야쿠르트’는 요구르트와 관련된 회사일 것이라고. 그러나 이상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요구르트 병이었다. 터키에서 보통 요구르트 병은 엄청 큰 편이다. 그런데 ‘야쿠르트’의 병은 너무 작았다. ‘원샷 사이즈’였다.

한국에 온 지 불과 5일째였는데, 당시 대전에 살던 나는 경기도 이천에 놀러 가려고 터미널로 갔다. 버스 타기 전, 이천에 같이 갈 친구가 야쿠르트 10여개를 사 들고 왔다. 그는 내게 “이거 같이 먹자”고 했다. 나는 말 그대로 첫 병을 원샷으로 마셔 버렸다. 터키에는 ‘플레인 요구르트’에 소금 약간 뿌려 만드는 ‘아이란’이라는 음료가 있다. 한국에서 처음 마신 야쿠르트 맛은 바로 ‘터키 아이란’의 ‘한국판 달콤한 버전’이었다.

원래 이천 갈 때까지 조금씩 조금씩 마시려고 했는데, 친구도 나도 버스가 출발한 지 몇 십분만에 야쿠르트를 모두 마셔버렸다.

이천 여행으로 처음 알게 된 야쿠르트와 나의 인연은 그후 17년간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맛난 분식집에 가서 계산하고 나가려고 하면 식당 사장님은 야쿠르트를 하나씩 주곤 했다. 그럴 때마다 사장님이 “분식은 안 그래도 많이 먹으면 몸에 안 좋으니 건강도 지킬 겸 야쿠르트 디저트를 꼭 드세요”라고 했다. 특히 과외를 가르치러 학생 집에 갈 때마다 과외 끝나고 나서 학생 어머니는 “아이고 선생님, 수고 많으셨어요”라며 또 야쿠르트를 주셨다.

여기서 문제가 무엇이냐면, 야쿠르트로 한병으로 사람들이 어떻게 만족하겠는가? 분명히 야쿠르트 본사는 성장 시기에 있는 아이들을 생각해서 이렇게 작게 만드신 건데, 우리 어른들은 기본적으로 3병은 마셔야 되지 않을까 싶다.

필자는 6년차 유부남으로, 2년차 아이 아빠이다. 얼마 전에 아내에게 물어봤다. “우리 아이에게 야쿠르트 안 먹이느냐?”고. 아내는 “어린이집에서 이미 충분히 나누워 먹히고 있다”고 답했다. 나는 무척 고맙고 안심이 됐다.

집사람과 나는 대화를 나누며 야쿠르트 추억을 함께 공유했다. 야쿠르트를 언제부터 알고 있냐고 내가 물어보니, 아내는 정확한 시기가 없다고 했다. 첫 번째 밥 먹은 걸 기억 못 하듯이, 첫 야쿠르트 경험도 기억 못 한다고 말했다. 집사람 말로는 “야쿠르트 추억이 기억과 함께 시작했다고 봐야 된다”고 했다.

대화가 좀 길어지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나왔다. 와이프 초등학교 시절에 학교 끝나고 집에 오자마자 제일 먼저 한 것이 냉장고를 열고 자기 야쿠르트를 먹는 것이었다고 한다. 왜 두세 병이 아니고 한 병만 먹었는지를 물었더니, 야쿠르트 아줌마가 매일 집에 배달해주는 야쿠르트 숫자가 뻔하니까 하루에 먹을 수 있는 야쿠르트가 정해져 있었다는 것이다.

동네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야쿠르트 판매원 <사진=야쿠르트 홍보실>

‘야쿠르트 아줌마’라는 단어를 들으니 나의 대학교 시절이 생각 났다. 대학 시절에 돈이 없어서 대전 둔산동에서 충남대학교까지 걸어가면서 다녔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출발하다 보니, 골목에는 활달한 두 집단이 있었다. 신호등 앞에서 횡단을 돌봐주는 녹색어머니중앙회 회원 아줌마들 그리고 야쿠르트 아줌마들. 그러다가 가끔 가다가 등교하러 간 초등학생들이 부르는 그 노래도 생각이 났다.

“야쿠르트 아줌마, 야쿠르트 주세요, 야쿠르트 없으면 요구르트 주세요”

여기서 또 다른 신기한 점은 이 노래는 요크르트 본사가 광고용으로 만든 노래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이 노래가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서 정확한 출처가 아직도 없다는 것이다. 

예전에 무거운 가방을 매고 야쿠르트 배급에 헌신한 이 아줌마들이 자신이 담당하는 지역이 친근한 동네인지 아닌지를 증명한 인증서 같은 역할을 해왔다. 한 동네에서 야쿠르트 아줌마가 야쿠르트 배급에 바빠서 여기저기 다니고 있었다면, 왠지 그 동네가 우리 기억 속에 좋은 이미지로 남고 있다.

야쿠르트 아줌마들을 통해 높은 수익구조를 만든 야쿠르트의 이같은 마케팅 모델은 충분히 나의 고향인 중동에도 수출을 할 만하다. 왜냐하면 여성들에게 자유로운 시간에 근무할 기회를 제공하다 보니, 가정주부들에게 집안 일을 소홀히 하지 않고서도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든다. 왠지 이 회사는 야쿠르트 판매보다 가정주부들의 경제활동이 더 먼저가 아닌가 싶어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최근에 와서 ‘코코’라는 카트를 끌고 21세기에 알맞게 활동하는 ‘야쿠르트 아줌마’들이 동네의 홀로 사시는 어르신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이 회사가 일반기업이라기 보다 사회적 기업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어느 기업을 가지고 이렇게 칭찬이 많은 기사를 쓰는 것은 사실은 기자정신에 그렇게 맞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야쿠르트 기업 창립 50주년을 가지고 의미 있는 글을 남기고 싶었다.

한국 부모들은 이 야쿠르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잘 알고 있으니 두려움 없이 자기 자식들에게 주고 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야쿠르트가 한국사회 전체에서 너무나 좋은 이미지와 기억을 남긴 브랜드라는 점이다. 앞으로 50년 더, 100년 더 야쿠르트가 살아남고, 이렇게 좋은 추억들을 생산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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