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 교수 “우리 모두 쭈그러진 심장, 쫙 펴자”
우선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알아야 한다.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의 낭만적 명제가 아니다. 나를 아는 것이 모든 위대함을 실현하는 근본이기에 중요하다. 돈키호테는 산초가 섬을 다스리러 갈 때 세 가지 가르침을 준다. “첫째, 지혜롭게 행동해야 한다. 둘째, 네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셋째, 관대해야 한다.”
모든 도덕적-윤리적 결단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여럿 중의 하나로 존재하는 한 우리는 지적 창의도 예술적 모험도 불가능하다. 내가 누구인지부터 알라는 말은 현실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나의 근본을 바로잡아 현실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힘을 기르라는 의미다.
심장은 왜 쭈그러질까? 내 눈으로 나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믿지 않고,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맞춰 나를 비교하며 살아가려고 한다. 내가 기준이 되어야 삶의 만족도도 높아지고 현실에서의 성취도 커진다. 외부의 것과 비교하거나 외부의 것을 추종하며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으려고 한다면 우리는 주머니 속 체스 말에 불과하다. 그건 곧 죽은 거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볼 때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알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알 수 있다. 그러면 쭈그러진 심장도 쫙 펼 수 있다.
돈키호테의 미친 정신을 망가뜨린 사람이 누군가? 카라스코 학사다. 그는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다. 공부를 많이 했다는 건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되는 것을 더 많이 했다는 의미다. 바라는 것보다 해야 되는 것을 더 많이 했다는 의미다. 바라는 것보다 바람직한 것을 더 많이 알고, 좋아하는 것보다 좋은 것을 더 많이 아는 사람이다.
나는 세르반테스가 의도를 가지고 학사를 배치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정해진 윤리, 정해진 논리, 정해진 가치 규범으로 돈키호테를 다시 고향으로 끌고 들어왔다. 돈키호테가 자기 자신일 때는 전부 미쳤다고 하더니 다수의 가치관을 따르자 다들 정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돈키호테는 어떻게 됐나? 죽었다. 나로 살다가 우리가 되는 순간 죽어버렸다. 나로 미쳐서는 생기발랄한 모험을 멈추지 않았는데, 끌려와 다시 우리 안에 집어넣어진 순간 그는 죽었다. 돌아온 돈키호테를 보며 주위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돈키호테가 자신에게 박수를 친 게 아니다. 우리 모두 돈키호테처럼 죽지 않도록 “쭈그러진 심장을 쫙 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