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선] 흰 그림자 “땅거미 옮겨지는 발자취 소리”

흰 그림자

황혼이 짙어지는 길모금에서
하루 종일 시들은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땅거미 옮겨지는 발자취소리

발자취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던가요.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던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 고장으로 돌려보내면
거리모퉁이 어둠 속으로
소리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흰 그림자들
연연히 사랑하던 흰 그림자들

내 모든 것을 돌려보낸 뒤
허전히 뒷골목을 돌아
황혼처럼 물드는 내 방으로 돌아오면

신념이 깊은 의젓한 양처럼
하루 종일 시름없이 풀포기나 뜯자.

 

白影

在苍茫夜色逼近的街口
竖起疲惫不堪的听觉
似乎探听到了夜之跫音
但我还是深深质疑
过往里的未聪未明

时至如今方能初醒
无疑是我之愚与昧
但我已断然决意
要把心烦意乱中的无数个我
永远驱逐到遥远之地

今之夜色分外苍茫
落自我之身心的无数个白影
仓皇逃至昏暗的街角
好似恋恋不舍般频频回首
但我只感到心境轻松自如

拒绝了过往之一切
孤身回到空荡的陋巷
默然进入黑暗小屋内
我像一只道骨傲然的羊
开始无忧无虑地啃食青青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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