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형법·형사소송법, 그동안 피해자를 너무 경시해왔다”

그동안 형법과 형사소송법이 피해자 보호보다 피의자 인권보호에 너무 치우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아시아엔=김중겸 치안발전포럼 이사장, 전 경찰청 수사국장] 아메리카라고 덜 때려? 좀 차이 있나? 다르긴 뭐가 다른가. 마찬가지다. 페미사이드(femicide) 즉 여성이 살해당하는 사건의 경우 부인이 피해자의 45%나 차지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화장 언제 바꿨냐? 왜 나 몰래 저쪽 가서 전화 하냐? 낮에 어디 갔다 왔냐? 의심암귀(疑心暗鬼) 와 소유욕 즉 통제욕구다.
남편 입에서 나오는 가장 흔한 말 “암캐”(bitch)다. 입에 거품 물고 마침내 죽인다.
힘의 불균형. 체력과 경제력이라는 파워 언밸런스가 야기하는 범죄다. 사고(accident)가 아니라 범죄(crime)다. 그래서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는 당하기만 하는 피해자의 부족한 힘을 보완하는 쪽으로 법이 가야 한다. 제도가 안전을 확보해주어야 한다.
어디 가서 죽기나 하지
부인과 아이들은 가장의 퇴근시간이 두렵다. 날마다 전전긍긍한다. 폭력이 폭발하면 즐겁고 편안해야 할 집안이 지옥 된다. 행패가 너무 심하다. “어느 귀신이 좀 데려가기나 하지, 저 웬수!” 오죽하면 죽기를 바랄까.
가해자가 죽기를 원했던 사람은? 일본의 작년 조사결과로는 평균 20%에 이른다.
아동학대와 겹친다
일본 총리실에서 가정폭력 피해여성 224명에게 물었다. “내가 맞는 것을 아이들이 봤다”(40%), “아이들도 같이 맞았다”(50%)였다. 부부간의 폭력이 아이들에게는 양친 사이의 폭력과 살인으로 되고 만다.
지난 2월 17일 일요일 오전 11시 30분 경 일어난 사건이다. 침실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자지러지는 비명. 열네살 아들이 황급히 뛰어 갔다. 어머니 목에 나이프가 꽂혀 있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쇠망치(hammer)로 어머니 머리를 내려치고 있었다. 사람이나 침대나 방바닥이나 온통 피범벅. 아들은 토하면서 도망쳐 나왔다. 이웃집에서 아버지가 온몸에 피 뒤집어 쓴 채 급히 나가는 것을 봤다.
무슨 일인가? 동네사람들 불러 그 집에 같이 들어갔다. 아들은 강아지 껴안은 채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입은 얼어붙어 단 한 마디도 못했다.
핏자국 따라 들어간 침실. 허겁지겁 되돌아 나오고, 토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아들은 아직도 말을 못한다. “우~ 우~ 우~” 한다. 벌벌 떤다.
사각지대는 또 있다
일본인 남성과 결혼한 외국인 여성. 결혼소개소 통해 결혼했다. 남편은 알선료 주었다고 아내를 돈 주고 산 물건 취급한다.
“너! 내 말 안 들으면 이혼한다. 그러면 넌 불법체류자야. 추방당한다구.” 일할 생각 안한다. “니가 벌어와!” 정식으로 결혼했어도 고통 속에 산다.
위장결혼을 한 여성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협박과 폭행에 시달린다. 몸에 칼자국 낸다. 담뱃불로 지진다. 돈 벌어 고스란히 바쳐야 한다.
동남아와 남미에서 온 여인들은 언어장벽에 갇힌다. 대화가 서툴다. 사정을 제대로 얘기하지 못한다. 친밀한 사이에서 벌어지는 폭력사태. 믿고 의지하는 이가 그러다니. 배신감에 젖는다. 창피스럽다. 내 처지가 비참하다. 어디 얘기할 곳도 없고.
혼자구나. 고립감. 나는 쓸모없구나. 무가치(無價値)를 느낀다. 이어서 무력감에 절망한다. 죽는 길 밖에 없구나. 죽음을 염원한다.
피해자를 너무 경시해왔다
형법이나 형사소송법은 최근까지 가해자 즉 범인 인권만 보살펴 왔다. 살인범의 손에 죽어간 넋들은 누가 챙겼나.
최초의 피해자학 책 <The Victim and his Criminal>이 1968년에야 겨우 나왔다. 당하는 사람의 처지도 생각해보자는 반성이다. 피해자 중에서도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피해자가 제일 비참하다. 우선 폭력을 피하여 갈 곳이 마땅치 않다. 머물 곳이 별로 없다.
돈은 더 더구나 없고. 애들 데리고 어디 가서 어떻게 살 건가. 행정이 진지하게 피해자 생활유지 보장을 행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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