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반’과 ‘동지’ 그리고 나훈아의 ‘난 그냥 네가 좋아’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우리말에 ‘그냥’이라는 말이 있다. 그냥은 어떠한 작용을 가하지 않거나 상태의 변화 없이 있는 그대로라는 뜻이다. 사람이 사는 뜻이 ‘사람과의 만남’에 있다는 것을, 나이를 먹어가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하게 된다. ‘그냥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어떤 것보다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냥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일은 단순히 행운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수백, 수천 생의 인연(因緣)의 결과임을 깨닫게 된다.
그냥 좋은 사람, 그 중에도 한평생 서로를 높여주고, 서로에게 디딤돌이 되기도 하고, 버팀목이 되어주기도 하는 사람이라면 일생의 도반(道伴)이고 동지(同志)일 것이다.
사람이 서로 사귐에 있어 가장 바람직한 사이는 어떤 것일까? 아마 그것은 도반과 동지의 관계라고 나는 생각한다.
도반이란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으로서, 도(道)로써 사귄 친구라는 뜻이다. 여기서 불도란 깨달음을 의미하는 구도의 길로서 즉, 도반은 깨달음을 목적으로 같은 도를 수행하는 동지를 가리킨다. “좋은 도반을 만났다는 것은 공부의 모든 것을 이룬 것과 같다”는 부처님의 말씀처럼 수행하는 이에게 도반은 더없이 소중하다.
그리고 동지(同志)는 파란고해(波瀾苦海)가 끊일 새 없이 일어나는 속세에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동지는 굳은 신념과 함께 목적을 이룰 때까지 모든 잡스런 생각이 없어야 하고 배신이나 탐욕과 같은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정신세계에서는 도반이 필요하고 속세에서는 동지가 반드시 있어야 삶의 활력을 되찾게 된다.
도반과 동지가 되려면 서로 지키는 바가 있어야 한다.
첫째, 몰래 험담하지 않는다. 험담하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관계는 끝장난다. 험담은 소문을 낳고 삽시간에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법이다.
둘째, 무의미한 논쟁은 하지 않는다. 진실한 도반과 동지는 어떤 주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있는 그대로 그 의견을 존중하려고 노력한다.
셋째, 말을 끊지 않는다. 도반과 동지들 하고 대화할 때 유독 말을 끊는 사람들이 있다. 편한 마음에 무심코 튀어나오는 행동일지 몰라도 당하는 상대방은 상당히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넷째, 난처한 상황에 처하도록 두지 않는다. 진실한 도반과 동지는 서로 난처한 상황에 처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아주 오래전 망년회 석상에서 음치인 필자더러 노래를 부르라고 해 한곡 부르다가 골목을 잊어버렸다. 당황하고 있는 순간 한 도반이 튀어나와 거들어주어 위기를 모면한 생각이 난다.
다섯째, 성공을 질투하지 않는다. 진실한 도반과 동지는 성공을 질투하는 것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얼마나 쓸모없는 짓인지 잘 알고 있다.
여섯째, 판단을 수정하려 하지 않는다. 도반과 동지는 어떤 점을 ‘고치려고’ 하는 일이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지 알고 있다. 단점이 없는 사람은 없다.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면서 더욱 나은 삶을 찾아가는 것이다.
일곱째, 바라는 바가 없어야 한다. 관계는 어려움을 겪을 때 확연히 드러난다. 힘들 시기일수록 등 돌리지 않고, 할 수 있는 한 성의껏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며, 결코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
이 일곱 가지만 잘 지켜도 최소한 도반과 동지 사이에는 그냥 좋은 사이가 된다. 도반과 동지 사이에 그 사람을 가까이 하면 사라지던 공부심도 일어나고, 없던 사업심도 생겨나며, 의혹이나 원망심도 사라지게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러한 사람은 곧 그 마음이 살아 있는 사람이고 그냥 좋은 사람인 것이다.
나훈아의 노래 중에 ‘난 그냥 네가 좋아’라는 곡이 있다.
“난 그냥 네가 왠지 좋아/ 이유도 없이 그냥 좋아/ 난 너를 사랑하고 싶어/ 사랑에 빠지고 싶어/ 사랑은 이런 건가봐/ 가슴이 저려 오네요./ 그리움이 이런 건가봐/ 자꾸만 눈물이 나요.”(하략)
그냥이라는 말은 어떠한 목적도 없고 무엇을 위해서라는 까닭도 없다. 때로는 즉흥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여유롭기도 하다. 그리고 허물없고 단순하기까지 하며 따뜻하고 정이 흐른다.